[이용석의 잡썰] 해방 공간 ‘뒷전’에서 위로받은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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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에서 바버라 리시키를 연기한 루스 메딜레이는 DAN에서 활동하는 열혈 장애당사자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애인 캐릭터도 장애당사자들이 맡아 열연했다. 현재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 BBC 유튜브 예고편 갈무리
▲‘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에서 바버라 리시키를 연기한 루스 메딜레이는 DAN에서 활동하는 열혈 장애당사자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애인 캐릭터도 장애당사자들이 맡아 열연했다. 현재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 BBC 유튜브 예고편 갈무리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 글에는 넷플릭스 영화 ‘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대담하게 가자.”, “동정심에 오줌을 싸.”, “우리가 없으면 우리에 관한 것도 없다.”

지난 2022년 BBC2에서 방영했던 영화 ‘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Then Barbara Met Alan)’는 1990년대 영국 장애당사자들의 권리 투쟁을 무정부적으로 그린 강력한 전기적 드라마다. 60분 남짓 짧은 런닝타임의 이 영화는 계속 흔들리는 카메라 워크와 탁하고 어두운 화면,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지리멸렬하고 엉성하기까지 한 연기는 생경하고 뜨악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오래된 기록 필름을 보는 듯 리얼했다.

1995년 영국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까지의 5년 동안 장애당사자들의 투쟁기, 싸움을 주도했던 바바라 리시키와 앨런 홀즈워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한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1989년 영국의 한 도시의 허름한 카바레에서 코미디언으로 연명하는 휠체어를 탄 바버라를 절단 장애를 가진 앨런이 절뚝이며 쫓으며 추근대는 장면이 처음 등장한다. 추근대는 앨런에게 바버라는 호텔비 40파운드와 섹스를 위한 싸구려 술값 20파운드가 있느냐 비아냥댄다. 그러자 앨런은 되레 바버라에게 60파운드를 빌려줄 수 있는지 되묻는데 이 짧은 두 사람의 대화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인 바버라와 자유분방한 이상주의인 앨런의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상반된 두 사람의 성향은 장애인 권리 투쟁 과정 곳곳에서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갈등과 논쟁의 이유가 된다.

이들의 장애인 권리 투쟁은 당시 관례처럼 방송되던 자선방송 폐지에서 비롯된다. 바버라는 “선의에 가득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불쌍한 우리를 28시간 동안 국민 앞에 매달아 놓았다”고 비판하고, 동료들에게는 “투덜대지 말고 세상에 나가 방송을 중단하라고 외치자”고 촉구한다. 즉 자선방송은 선의라는 가면을 쓴 자선 행위는 한낱 장애당사자를 쓸모없는 약자로, 무력한 인간으로 약화시키는 ‘하드코어 포르노’라는 것.

이들의 방송중지 투쟁은 1992년 대표적인 ITV의 자선방송 프로그램 폐기를 끌어냈다. 이 작은 승리는 장애인 직접 행동 네트워크(Disabled People’s Direct Action Network, DAN) 결성으로 이어지고, DAN은 마침내 대중교통 이동권 투쟁을 전개한다. 영화는 두 사람이 밴드와 함께 밴을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버스를 멈추게 하고, 자신의 몸을 버스에 묶어 가두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 살풍경은 당시 영국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당시의 실제 필름이다. 흥미로웠던 장면은 1995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다. 거리 투쟁을 이어가자는 앨런의 주장을 법제정을 통해 투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득한 바버라는 그런데도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을 경우 차별이 적법하다는 차별금지 해제조항 앞에서는 고민한다.

영화는 대단한 미장센도, 세상과 싸우는 거룩한 명분도 없다. 바버라와 앨런에게도 장애인 권리 운동을 추동한 선구자적 영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영국의 한 도시의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카바레에서 코미디를 하고 노래로 먹고살다 사랑에 빠지고, 불온한 몸으로 섹스하며, 아이를 낳고 양육의 어려움으로 치열하게 싸우다 마침내 헤어지는 그저 그런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남녀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 안에 장애인 권리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을 배치함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곧 투쟁이며, 권리를 위한 지난한 싸움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들은 거칠고 폭압적인 비장애인 중심 세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너나없이 자신들만의 아지트에 모여 마치 투정 부리는 아이들처럼 세상을 조롱하고 욕하고 원망한다. 웃고, 떠들다가도 억울함과 분노에 치받는 낱낱의 표정은 지쳐있으되 결연했으며, 투박하나 의연하다. 그래서 이 장면은 마치 큰 굿을 마친 빈 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남루한 삶을 풀어놓던 ‘뒷전’과 같다.

굿은 죽은 넋을 위로하고 저세상에서의 왕생을 비는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이고 퍼포먼스다. 하지만 뒷전은 굿을 마친 무당과 구경꾼들이 모여 굿에서 챙기지 못한 잡귀나 잡신을 위로하는 자리인데, 그 구성원들은 평생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천덕꾸러기 인생들이었다. 무당들은 권력이나 돈푼 넉넉한 가진 자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큰 굿을 하지만, 굿을 마치면 ‘뒷전’을 열고 구경꾼들을 굿의 주인공으로 초대한다. 남은 떡과 고기를 나눠 먹으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으며 흥겹게 춤추고 서로를 위로한다. 바버라와 앨런, 그리고 함께했던 수많은 장애당사자들은 거리에서의 싸움을 마친 후 어둡고 허름한 카바레를 ‘뒷전’ 삼아 서로를 위로했다. 살고자 하는 싸움은 지리멸렬했고 고통스러웠지만 ‘뒷전’이라는 해방의 공간을 통해 위로 받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우리가 없으면 우리에 관한 것도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면서 서로의 몸에 사슬을 채워 잇고 연대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싸움을 위해 다시 세상에 나서야만 하는 삶이지만, 술 한 잔에 푸념하고 욕하고 게정을 부리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세상과 화해를 위해 ‘뒷전’은 해방구였던 셈이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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