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우리 동네에는 ‘장애’를 아는 의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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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죽음이 억울하지 않겠냐만 버틸 수 있고 견딜 수 있다면 선택은 간명하다. ‘장애’가 죽음의 이유가 되지 않기 위한 제도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장애’가 이유가 되어 죽는 세상에 살고 있다. ⓒ 더인디고 편집
▲어느 죽음이 억울하지 않겠냐만 버틸 수 있고 견딜 수 있다면 선택은 간명하다. ‘장애’가 죽음의 이유가 되지 않기 위한 제도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장애’가 이유가 되어 죽는 세상에 살고 있다. ⓒ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지난달 한 지인의 부고장을 받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지내던 재활원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는 느닷없는 죽음으로 안부를 전해왔다. 그의 안부는 반가웠지만, 마지막 안부가 죽음이었으니 마음 한끝이 무거웠다. 평생을 장애로 인한 불편과 사회의 싸늘한 냉대를 견디며 살아냈을 그의 50여 년이 내 생애와 다르지 않아 두렵기까지 했다.

그의 사인은 암이었다. 그런데 그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기까지의 사연을 듣고 기가 막혔다. 양하지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사용했던 그는 장애 후유로 인해 척추측만증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늘 척추통증을 달고 살았던 그는 어지간한 통증에는 진통제 한 두알로 견뎠다. 그러다 올초 진통제조차 소용없는 격한 통증으로 고생하다 마지못해 실려 간 병원에서 느닷없이 암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암이 이미 온 장기에 전이돼 당최 무슨 암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는 거다. 자신이 겪었던 통증이 암 때문이었는지, 장애 후유 때문인지조차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마실 가듯 찾아가 통증을 상담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의사는 없었을까?

2017년 12월, 우리나라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건강권법)이 시행했다. 방치되다시피 한 이 땅의 장애당사자의 처참한 건강 상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뒤늦은 각성이었다. 국립재활원의 <장애와 건강통계>에 따르면 2016년 당시 장애인의 조사망률은 비장애인의 5배, 평균수명 또한 10년 정도 짧았다. 장애인의 77.2%가 고혈압, 당뇨 등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건강검진 수검률이 비장애인(77.7%)보다 장애인은 67.3%로 약 10% 낮았다. 그럼에도 진료비는 1인당 연간 439만원으로 전체 국민 평균 125만원의 3.5배, 노인 344만원의 1.3배에 달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돌봄 수요와 그에 따른 의료비 증가 등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 사회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 제도 안에 장애인건강권법에서 규정한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를 포함해 제1차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이로써 국가는 비로소 장애인 건강관리를 위한 의료 환경체계를 갖추는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와 건강을 주치의로부터 관리받게 되었다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제1차 시범사업의 초라한 결과가 드러냈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시범사업 1년 동안 등록주치의 268명 중 활동하는 주치의는 고작 48명인 15%이며, 주치의 활동을 하는 48명의 의사들이 총 302명의 장애인 환자를 관리하고 있어 1인당 평균 6명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내 부실한 시범사업 결과에 대한 비판과 자성이 이어졌고, 이어 제2차 시범사업이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제1차와 별반 차이가 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장애인건강권법은 시행 6년이 되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건강 격차는 여전했다.

올해 국립재활원에서 발표한 2022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고혈압과 당뇨가 2.6배, 심장질환 3.2배, 대뇌혈관 질환은 4.8배, 암도 2배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신과적 질환인데, 우울증이 3배, 불안장애가 2.5배, 치매는 7.6배나 된다. 그러면서도 1인당 연평균 총진료비는 장애인이 632만 4천원으로 비장애인 154만 2천원의 4.1배나 된다. 이렇다 보니 조사망률 역시 5.1배에 달한다.

새로운 정책이 효과성 갖춘 제도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장애인의 건강 개선을 위한 건강주치의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하는 만큼 자리를 잡기 위한 시간도 필요할 것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본사업을 시행조차 하지 못했다면 국가의 의지나 함께 해야 할 의료계의 방임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 논의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두 가지로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과 ‘진료수가’였다. 그나마 접근성은 방문진료와 비대면 진료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지만 낮은 진료수가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은 만만치 않다. 의료계의 요구대로 건강주치의 진료수가를 높이면 본인부담금이 늘어나 결국 장애인의 의료비가 증가해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죽음으로 내게 안부를 전했던 그가,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를 일찌감치 이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한다. 그는 동네에 있는 건강주치의를 찾아가 자신이 겪는 통증이 장애 후유 때문인지 또 다른 병이 원인인지 상담했을 것이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의료적 처지를 받았을 테다. 그렇다면 그는 어쩌면 나와 함께 일상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 역시 우리 동네에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병원도 장애와 건강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주치의도 없다. 모골이 송연하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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