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마음 한편에 깊이 박혀있는 ‘말’이 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뒷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소란스럽게 놀지 않았는데 친인척 한 분이 나에게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며 ‘병신, 집안에 재수 없는 핏줄’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너무 깊이 박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찌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 가시를 잡고 세차게 흔들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가 2023년 12월 16일 지지자 수천 명이 모인 뉴햄프셔주 선거 유세장에서 이민자가 “우리나라(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라고 발언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도 미국으로 대거 유입된다며 “그들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온다.”라며 확인사살까지 했다. 그가 ‘피, 오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23년 9월 우파 성향 웹사이트 ‘내셔널 펄스’와 인터뷰에서도 이민자를 향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에 대해 미국 예일대 제이슨 스탠리 교수는 아돌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독일인의 피가 유대인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라고 한 것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교수는 “위험한 발언이 반복되면 그것이 정상 취급된다.”라면서 “미국 내 이민자의 안전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 선거 캠프 아마르 무사 대변인도 “도널드 트럼프는 아돌프 히틀러를 흉내 내고, 김정은을 찬양하고, 블라디미르 푸틴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본보기를 보여줬다”라며 “독재자가 되겠다는 공약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혐오 발언 자체도 문제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혐오를 행동으로 실천하며 국가 정책과 연결 지으려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참모들에게 ‘불법 이민’을 차단하기 위해 “국경에 참호를 파서 뱀이나 악어를 풀어놓고 국경 장벽에 전기를 흐르도록 하고 사람을 관통할 수 있을 만큼 뾰족한 탑을 설치하는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 탓인지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장난감까지 등장했다. ‘멕시코 국경 장벽’을 본뜬 ‘블록 쌓기 모형 장난감’이다. 아이들이 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배울 수 있는 것은 ‘편견’ 뿐일 것이다.
편견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는 태도를 뜻하는 데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동반한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 수집과 처리가 없는 평가로 집단과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혐오를 부추긴다. 편견이 실체적 ‘차별행위’를 작동케 하는 첫 단추이다. 증오·극단주의연구소 브라이언 레빈 소장은 혐오를 <1단계-편견>, <2단계-혐오표현>, <3단계-차별행위>, <4단계-증오범죄>, <5단계-집단학살> 5단계로 나눈 ‘혐오의 피라미드Pyramid of Hate’로 정의했다. 개인의 단순한 편견으로부터 시작한 혐오 표현이 집단학살까지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홀로코스트(Holocaust) 사건이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약 1,100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이다. 사망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던 것이 유대인인데, 약 6백만 명에 달한다.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는 9백만 명의 유대인 중 약 2/3에 해당하는 수이다.
히틀러는 독일 총리가 되자마자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대인 폭행, 유대 상점 불매 운동, 유대 상점 약탈 등을 고의로 저질렀다. 다음으로 ‘뉘른베르크 법’을 제정하여 독일인과 유대인을 분리했다. 이 법을 통해 유대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하고 유대인과 독일인의 성관계와 결혼을 금지하고, 공무 담임권을 박탈했다. 나중에는 집시, 흑인 그리고 그들의 아이까지 포함했다.
법률을 통해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한 뒤 물리적으로 수용하고 배제하기 시작했다. 유대인 주거지 ‘게토ghetto’를 만들어 강제 이주시켰다. 이후 ‘”유대인에 대한 문제의 최종 해결책”(Endlösung der Judenfrage)’이라는 것을 통해 조직적으로 유대인,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을 대량 학살했는데, 대다수가 이 기간에 학살당했다. 주로 대규모 총살과 독가스 질식이라는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우선 대규모 총살은 동유럽 전역 1,500개 이상의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마을에 진입하여 독일 부대원들은 유대인들을 외곽지로 데려가 강제로 구덩이를 파게 한 뒤 총살하고 그곳에 묻었다. 나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총살했다. 대낮에 주민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서도 거리낌 없이 벌어졌다.
대량 학살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학살 수용소”(Killing center) 또는 “죽음의 수용소(Death camp)”라고 불리는 절명수용소 5개를 건설했다. 이 수용소에서 사용한 중요 수단이 밀폐된 곳에 많은 사람을 가둔 뒤 독가스를 살포하는 것이다. 효과적 이송을 위해 열차를 타면 수용소에 바로 도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음식, 물, 욕실, 의료 등을 제공하지 않았고, 몇 날 며칠 짐칸에 빼곡히 서서 이동해야 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이송 중 사망하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문제는 이러한 대량 학살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악의적인 편견과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총리가 되기 전부터 편협한 인종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각종 연설과 저술에서 “아리아인”(Aryan)이 가장 위대하고 순수하며 다른 민족과 존재는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대인을 가장 열등하고 위험한 인종이라고 낙인찍었는데,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을 다른 인종에 “기생하면서” 그들을 허약하게 만드는 암적인 “인종”에 불과하다고 봤다. 그렇기에 독일 사회에서 박멸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박멸되지 않는다면 독일인의 피를 더럽히고 영구적으로 부패시키고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편견은 유대인에 그치지 않고,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까지 확대되었다.
살아있는 역사가 편견이 존재에 대한 차별과 분리를 행동화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편견과 혐오 표현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새겨진 주홍글씨를 선명히 드러나고 누군가에게 주홍글씨를 새길 때 홀로코스트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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