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유모차와 꽃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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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화장실 표지/ 출처=유튜브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화장실 표지/ 출처=유튜브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이웃 동네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데 재활용 수거장 앞에 네댓 분의 어르신들이 웅성거렸다.
“에이, 이거 보행기 아니고 애완견 유모차네, 내가 좀 써 볼까 했는데 아쉽구먼.”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면서 웃는 그 분 곁의 노인들도 함께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요새 것들은 부모보다 개, 고양이를 더 챙기니 우리 신세 참 처량햐.”
“이거 제법 비싸 보이는데 여기 임대 아파트 살면서 돈 많은 것들도 있나 봐.”

한마디씩 거드는 대화 중에 예전의 내 생각과 일치하는 대목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분들이 내가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금 떨어진 화단 옆에서.

20여 년 전 나는 가난했다. 비영리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는데 무급이었다. 약간의 급여를 받는 여성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불만이 많았다. 같은 일을 하면서 저이는 돈을 받고 나는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쭐하면서도 ‘돈 받고 일하는데 왜 저거밖에 못 하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그녀가 내게 미안해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당연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였기 때문에 좀 더 오래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꽃게탕을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식구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어쩌다 요즘 반찬 뭐해 먹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녀의 대답에 내 마음속은 시끄러웠다.
‘뭐지? 사는 형편 어렵다더니 그 비싼 꽃게 사 먹는 정도였어?’

나는 그녀의 한 끼 식사가 김치와 김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꽃게탕이라니,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얼마 후 급여 올려달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실수했다.

“자기네는 꽃게탕 먹을 정도면서 난 무급으로 일하는데 급여 올려 달라고 하고 싶어?”
그녀는 억울해했다.
“그거 내 돈으로 산 거 아니었어요. 주민센터에서 장애인 가족에게 밀키트 보낸 거였는데, 국장님 너무하세요.”

아차 했으나 이미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너무 미안하고 무안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교류가 끊어진 지 꽤 되었어도 가끔 생각이 났다. 몇 해 전 우연히 제과점에서 만났는데 그 미안함이 되살아나서 반가움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케이크 하나를 사 주면서 약간의 보상이 되길 바랐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여자답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살았다. 여자와 남자의 정체성을 정해놓고 성 역할을 기대하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의 표현. ‘…답다’라는 말이 거슬리기 시작한 건 아들이 장애 판정을 받고 난 후였다. 몇 해 동안은 ‘나 힘들어 죽겠어요’를 얼굴에 달고 살았다. 누가 봐도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하도록 내 표정이 암시를 줬다. 하지만 나는 현실을 바로 파악하고 최소한 나의 표정만으로 내 삶을 짐작하는 사람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의 힘이 아니라 아들로 받는 힘듦은 가끔 보여주는 재롱의 힘을 뛰어넘지 못했다. 내 다짐과 관계없이 나는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아들을 통제할 수 있어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나의 존재가 아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고 힘인지를 알면서 어두운 과거 덕분에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행복할 줄 아는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장애아 엄마인데 표정이 참 밝고 좋아요.”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이 말을 들을 때 한두 번은 살포시 웃고 말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세 번 이상이면 식상하듯 점점 짜증이 올라왔다.

“왜요? 장애 엄마는 늘 우거지상 해야 하는 거예요?”

언제부턴가 나는 돌변하여 따지면서 되물었다. 난처해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그런 편견과 선입견은 불쾌하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해버렸다. 세월은 나를 많이 바꿔 놓았다. 그런 말에는 더 느긋한 표정으로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죠, 희로애락에 대응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여유를 부린다.

임대 아파트에 살면 비싼 제품 쓰는 게 욕먹는 세상, 가난하면 꽃게탕 먹으면 안 되는 세상, 장애인 가족은 불행한 표정이어야 보는 이들이 편안한 세상, 이건 누가 만든 이미지인가? 너는 나보다 못 살아야 하는 걸 은근 바라는 세상이면 우리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나름의 방법으로 행복하다면 그냥 그렇게 봐주는 게 서로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부정적 것들로 인해 더 잘 눈에 띄는 상황들이 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그나마 어떤 상황이든 나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으며 질타보다 다독거려주는 나 자신을 위하여 매 순간 깨어있어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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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진솔한 선생님 글 읽으며 간과했을 가슴 저변의 속내를 들킨듯 반성하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무거운 글도 산뜻하고 경쾌하게 풀어내주셔서 톡쏘는 레몬에이드 한잔 하고 갑니데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참 좋은 글입니다. 글 맛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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