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지난 6월 15일은 2024년 검도에 입문 후 첫 번째 심사를 받는 날이었다. 사실 검도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당시 이용하던 헬스장이 리모델링 공사로 한 달간 이용이 어려워져서 다른 운동을 찾아봤는데, 그때 검도가 신체단련뿐만 아니라 마음단련에도 좋은 운동이라는 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활동지원사를 통해 집에서 가까운 검도관을 알아봐달라고 했고, 활동지원사에게 전화로 입관 문의를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활동지원사가 연락을 취했던 검도관들은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눈이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는데 어떻게 검도를 하냐는 취지였다. 위험하다고도 했다. 한 검도관에서는 한 번 와서 검우들이 하는 걸 보고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니까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활동지원사를 통하지 않고 기자가 직접 검색을 통해 검도관을 알아봤다. 활동지원사는 ‘02’로 시작하는 검도장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던 반면, 기자는 ‘010’으로 시작해서 전화가 아닌 문자로 직접 문의할 수 있는 검도관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발견한 검도관이 강서구 마곡지구에 있는 ‘마곡선검도관(관장 선강원)’이다.
선강원 관장님은 문자로 연락이 가능한 번호를 마곡선검도관 블로그에 게재해두었고, 기자는 문자로 입관 문의를 했다. 사실 그때 문자로 연락할 때는 상대방이 관장님인지 모르고(매니저일 수도 있으니까), 그냥 사무적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관장님은 기자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어렵다’, ‘힘들다’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우선 한 번 방문해서 상담을 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해서 5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참 많은 걸 배웠다. 도장에 가서 그냥 죽도를 휘두르고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심신을 단련하고 예를 갖추며 지도자와 제자 간의 신뢰를 형성해 가는 그 과정, 만들어가는 과정이 참 매력적인 운동이 바로 검도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사실 죽도로 머리, 손목, 허리의 각 부위를 정확하게 치기 위해 기본적인 자세를 잡는 게 쉽지 않다. 죽도가 정확한 위치로 ‘치기’ 동작이 되었는지 잘 보이지 않고, 관장님이나 사범님이 취해 주시는 동작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기자가 그들의 몸을 만져서 어떤 자세인지 촉감으로 확인한 뒤 다시 자세를 잡아보곤 한다. 그래도 자세가 부자연스럽거나 어디가 바르지 않으면 관장님과 사범님이 바로잡아 주신다.
그렇게 검도를 배우면서 관장님이 한 번씩 ‘심사’ 이야기를 했지만, 솔직히 그리 귀담아듣지 않았다. 정말이지 심사만큼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검도 유단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싶지만, 그동안 검도를 배우면서 기자가 가진 시청각장애로 도전하기란 한계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가 생각하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준 게 선강원 관장님이다. 심사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모의심사는 물론 심사에서 어떻게 소통을 하면 좋을지 같이 의논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참 좋았다. 그 과정에서 관장님의 진심과 믿음이 그대로 전달되어서 기자도 최선을 다해 심사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심사하는 날. 지금까지 첼로 독주회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도 하며 ‘무대 울렁증’은 없다고 자부해온 기자였지만 이날만큼은 정말 긴장했다. 저녁 8시 심사인데 7시부터 가서 연습했지만, 검도를 시작한 뒤 가장 몸이 굳었던 컨디션이었다. 그런 기자의 긴장을 풀어준 것도 다름아닌 관장님이었다.
심사 시작까지 30분 정도 남았을 때, 관장님은 기자를 평소 이론수업을 진행하던 곳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커피를 한 잔 내려주셨다. 관장님은 검도장을 열기 전 카페를 운영하셨다는 ‘이색 경력(?)’이 있는데, 커피 맛이 아주 기가 막힌다. 그래서 잠시 긴장을 잊은 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데, 관장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관장님이 내려주신 커피의 맛에 잠시 빠져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 기자는 관장님의 질문에 아주 많이 긴장하고 있다 대답했다. 관장님은 본인이 첫 심사를 받을 때 이야기와, 이번에 혹시 합격하면 호구도 착용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기자의 긴장을 풀어 주셨다.
8시가 되어 관장님과 함께 도장으로 내려갔다. 심사를 받는 관원들이 모두 질서있게 자리한 뒤, 관장님이 기자의 핸드폰에 연결된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셨다. 그 무선 마이크는 기자의 핸드폰에 있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에 연결되어 있어서, 관장님이 말씀하시는 게 실시간으로 핸드폰 화면에 글자로 나온다. 관장님은 시작하기 전에 기자의 위치로 와서 제대로 인식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잊지 않으셨다. 이 무선 마이크 녀석은 가끔 제대로 인식이 안 될 때가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는데, 이날만큼은 진짜 인식이 잘 되어 심사가 잘 진행될 수 있게 해주었다.
심사는 사전에 안내받은 대로 기자가 마지막 순서였다. 그래서 도장 한쪽에 서서 심사를 받는 관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다른 관원들이 심사받는 걸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되어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심사에 임하는 관원들이 내는 기합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아갈 때 힘차게 내딛는 발구름, 그리고 죽도와 죽도가 부딪칠 때마다 기합을 같이 넣는 건지 도장의 바닥을 통해 강렬한 분위기와 진동이 기자의 맨발로부터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심사받는 관원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관장님으로 보이는 키가 큰 분이 기자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사실은 관장님이 맞지만, 심사받던 날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기자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길, 기자 차례가 아직은 아니길, 관장님이 아니길 하는 마음으로 애써 관원들 쪽을 보려고 했는데, 언제 퇴장했는지 관원들은 다 기자의 옆으로 와서 나란히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코앞에 다가온 관장님이 이제 기자 차례라고 하시며 도장 중앙으로 이끄셨다. 기자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려 애를 쓰며 관장님의 지시에 따라 도장의 한가운데에 죽도를 들고 차렷 자세를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심사를 받는 동안 기자의 앞에는 심사위원만 서 있어야 하고, 다른 관원들은 기자가 서 있던 곳, 그러니까 심사위원의 맞은편에 서 있어야 하는데, 모든 관원들이 다 심사위원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섰던 것이다. 즉 당시 검도관에 있던 사람들이 다 기자의 심사를 지켜보는 각도가 되었다.
양손으로 죽도를 잡고 심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핸드폰이 없어서 관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심사가 끝난 후 관장님이 알려 주셨다. 기자가 장애를 가지고 있고 첫 번째 심사를 받게 되었다는 소개를 관원들에게 해주신 거다. 기자는 관장님이 관원들에게 기자에 대한 소개를 해준 것보다 관원들이 앞으로 나온 게 인상적이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연설을 할 때는 무대에 대통령 외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보수적 고정관념이 강하다. 그래서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도 대통령 옆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권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접근이지만, 연설하는 대통령 바로 옆에서 수어통역사가 수어로 통역하면 수어를 의사소통 방법으로 사용하는 국민들에게는 정보접근과 알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중대한 일(심사)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앞으로 나온 관원들을 보고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장님은 기자와 같이 연습했던 대로 머리, 손목, 허리, 좌우머리에서 해야 하는 동작을 기자의 몸에 터치하며 신호를 보냈다. 예를 들어 2동작을 심사할 때는 기자의 얼굴 가까이 손가락 두 개를 펴서 보여줬고, 기자의 머리와 손목을 각각 터치했다. 그런 뒤 기자의 앞으로 가서 기자가 관장님께 가르쳐 드렸던 수어를 하나씩 보여주셨다. “준비됐나요?”라고 수어로 하시길래 고개를 끄덕이니까 다음 수어는 “시작!”이었다. 그럼 기자는 머리와 손목치기를 2동작으로 각각 10회씩 했다.
그렇게 2동작부터 심사를 받다가 심사에서 기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빠른머리치기 50회 차례가 되었다. 시작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가 관장님의 다음 사인을 받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순간 기자의 눈을 의심했다. 심사받는 기자의 앞에 일렬로 서 있던 관원들이 핸드폰에서 손전등을 켜서 기자에게 불빛을 보내주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기자는 무슨 상황인지 관장님께 묻는 표정을 지었지만, 관장님은 애써 기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심한 척 빠른 머리치기 준비를 시키셨다.
빠른 머리치기를 시작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데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왔다. 지난 5월 출간한 기자의 에세이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북콘서트에 와주셨던 관장님이 기자에게 응원을 보내주기 위해 준비하신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어쩌면 심사라는 무겁고 엄하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런 공적인 자리임에도 권위적이지 않고 긴장하지 않으며, 서로를 신뢰하고 예를 갖추는 일련의 과정들이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첫 번째 심사를 위해 준비과정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고민하고 생각했을 관장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동안 늘 일대일로 검도를 배워서 한번도 관원들과 대면하는 자리를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 심사 후 진행된 정기 회식에 꼭 참여하고 싶었지만, 다음날 오전에 강연이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그런 아쉬움을 아시는 관장님이 심사를 마치고 관원들에게 소감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고, 다음엔 우리 도장에서 첼로 연주도 해달라고 하셨다. 그것도 공짜로. 물론 공짜로 연주할 생각이다. 이렇게 섬세하고 로맨틱한 관장님이 요청하시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시청각장애를 가진 검우는 전 세계에서 기자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검도라는 스포츠가 가진 매력을 즐기며 열심히 수련할 뿐이지만, 관장님과 함께 방법을 찾아가며 검도를 배워가는 과정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첫 번째 심사를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열심히 수련해야겠다.
[더 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박관찬의 기자노트]출퇴근길에 고개 들기 세류역에서 서울로 가는 1호선은 광운대행, 구로행, 청량리행이 있다. 목적지인 영등포역까지 한번에 가기 위해서는 광운대행이나 청량리행을 타야 한다.](https://theindigo.co.kr/wp-content/uploads/2025/06/image-4-218x150.jpg)


![[안승준의 다름알기] 진실은 다른 곳에! ▲말 뒤에 숨겨진 진심/ 이미지=챗지피티](https://theindigo.co.kr/wp-content/uploads/2026/05/ChatGPT01-150x150.jpg)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