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치유 받는 장애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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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에 19~90번의 날개짓을 한다는 벌새 ⓒunsplash
▲1초에 19~90번의 날개짓을 한다는 벌새 ⓒunsplash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나는 희귀난치질환에 속한 듀센 근육병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다. 영유아기부터 신체적 발달이 더뎠고, 근력이나 유연성이 또래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조금만 부딪치거나 밀려서 혹은 이유 없이 넘어져서 다치는 일이 많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오리걸음처럼 뒤뚱거리다가 열 살이 되어선 아주 일어설 수 없어져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근육세포가 서서히 파괴되면서 돌이킬 수 없이 힘을 잃었다. 다리에서 팔로, 골반에서 허리, 목으로 점차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게 돼버렸다. 사십 중반이 된 지금은 앉는 것보다 눕는 시간이 길어졌고, 손끝과 발끝, 목과 어깨를 꿈틀거리는 거 외에는 꼼짝 못 하는 상태다. 더욱이 항상 호흡기에 의지해야 숨을 쉴 수 있어서 활동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장애학에선 장애를 정의하는 변화를 다루면서 장애인 운동의 동력을 설명한다. 개인의 손상과 재활에 초점을 둔 의료적 모델이 비판받아 힘을 점점 잃고, 구조적 차별과 해방을 주장하는 사회적 모델이 주류가 되면서 비로소 당당한 차별 철폐와 시민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강력한 연대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장애의 수용을 넘어 자부심까지 논할 정도로 진전되었다.

활동가들의 용감한 투쟁과 지속적 요구로 법안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시행되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고, 그 덕분에 중증 장애인인 내 삶도 놀랍도록 개선 돼왔다.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빚진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장애인 운동과 학문에 많은 부분을 동의하면서도, 질병으로 인한 장애인으로서 무언가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다.

나는 청소년기에는 학교에 집중했고, 청년부터 중년기 사이엔 병원을 열심히 다녔다. 평등한 교육과 사귐만큼, 적절한 치료와 재활이 삶에서 중요한 가치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사회적 모델을 생각할 때 어딘지 부족한 면이 느껴진다. 다수의 장애인이 의료적 모델과 병원에 대한 깊은 불신을 품고, 의료 권력과 자본에서 벗어나서 주체적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나도 현대의학의 한계를 매번 체감하고, 불쾌한 상황과 사람을 종종 겪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근육병과 호흡에 진심인 교수님을 만났고, 물리치료를 전문적이고 친절한 선생님들께 받았다. 지금껏 건강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게 분명하고, 그 모든 시간을 축복으로 여긴다. 앞으로도 치유를 향한 희망을 붙잡고, 정기적 입원을 이어가며 가능한 치료를 제때 받을 것이다.

투병과 장애의 이중고 가운데서 오랫동안 숙고한 것들이 있다. 그중에 치유에 대해 몇 가지 소신이 생겼다. 우선은 완치를 간절히 바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치료법을 초조하게 찾거나 막연한 기대에 목매는 건 현재를 미래에 담보 잡히는 어리석은 일이니깐. 다음은 치료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감수하기로 했다.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 방법을 비판적으로 듣고, 가족과 충분히 상의한 후에 주체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마지막은 건강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거나 후유증이 덜 생기게 하는 것만도 치료라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내가 가진 근육병은 호전되는 치료법이 사실상 없다. 그럼에도 병원에 다니는 건 호흡기를 내 상태에 맞게 사용하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약해지는 심장과 위장 등의 기능을 돕고 보호하려는 목적이 크다. 그 노력에 힘입어 평소에는 집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면서 나름의 즐겁고 유익한 생활이 가능하다.

담당 교수님은 꼭 필요한 검사와 내게 맞는 치료를 말씀하신다. 수치가 안 좋아 호흡기를 사용하자는 진단에 걱정이 들었지만, 빠르게 동의해서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어느 날엔 충분한 영양 공급을 위해 위루관 시술을 권하셨는데, 고심 끝에 거절했다. 대체로 믿고 따르는 편이지만, 무조건 끌려가지 않고 종합적 판단의 과정을 거치려고 노력한다.

내가 추구하는 장애인의 삶은 몸의 치유와 존재의 해방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시의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안정된 생활 가운데 재능을 발휘하고 행복을 발견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크리스천으로 그밖에 다른 영역에 괜히 욕심내지 않고, 내게 이미 주어지고 곧 허락될 잔잔한 축복과 은혜를 누리면 모든 순간이 기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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