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윤, “북한이주민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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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주민 정서윤 씨의 사진
북한이주민 청년 22년차인 정서윤 씨는 우리 사회의 다문화와 다양성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서윤
  • 기자가 만난 사람들-북한이주민 청년 정서윤 씨
  • 한국사회는 다문화·다양성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
  • 북한이주민 22년 차 청년의 담담한 이야기를 담은 책 “어떤 불시착” 출간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대한민국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 등 어떤 법에서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기본권으로 강조한다. 피부색이나 인종, 장애, 성적 지향, 성별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우받으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 누군가를 향해 여전히 차별과 혐오, 몰지각한 인식으로 잘못된 시선을 낳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북한이주민이다. ‘북한’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좋지 않은 프레임을 씌우고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북한이주민에 대해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이주민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본 사람이 바로 북한이주민이다. 그것도 ‘북한이주민 22년차 청년’인 정서윤 씨다.

북한이탈주민보다는 북한이주민

현재 북한이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북한이주민법)이 있다. 이 법의 존재로 인해 사람들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올해 정서윤 씨가 출간한 책 <어떤 불시착>에서는 본인을 ‘북한이탈주민’이 아닌 ‘북한이주민’이라고 표현했다.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 것 같아 정서윤 씨에게 처음 던진 질문이 어떤 표현이 맞는지였다.

“북한이탈이라는 용어에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싫어서 탈출을 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그건 북한을 공격하는 거죠. 북한이 얼마나 못 살고 얼마나 별로인지, 얼마나 살기 힘든지, 그리고 사람들을 탄압을 하면 북한을 탈출하냐고 생각하죠. 그렇게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이라 우리가 이들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북한이탈주민법이 생긴 거예요. 그럼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통일부에서는 ‘통일의 미래’, ‘먼저 온 통일’ 이렇게 얘기하고 나중에 남북한이 교류할 때 그 사람들이 중간 역할을 하기가 힘들죠.”

북한 입장에서는 이들이 자기(북한)가 싫어서 도망친 사람들인데 도망친 사람들이랑 다시 손잡고 뭔가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북한에서는 북한이탈주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부정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현재 북한이탈주민에 해당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바꾸고 싶어한단다. ‘북향민(북한이 고향인 사람)’이나 ‘북한이주민’이 하나의 대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이주민에서 ‘이주’는 이동을 한다는 뜻이죠. 북한이 나쁘다거나 싫다는 뜻이 담겨져 있지 않고 그냥 북한에서 나와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중립적인 뜻만 있는 거죠. 그래서 책에서도 ‘북한이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그래야만 북한이주민들이 앞으로 남과 북을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북한이주민이 간첩이라고?

남한 사람들이 북한이주민들을 보면서 가지는 선입견 중 하나가 ‘간첩’이다.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연구원, 민주평통 사무처 공무원, 남북 청년의 교류를 위해 직접 설립한 NGO 단체 ‘유니피벗’ 대표 등 어디에 내놔도 결코 밀리지 않는 경력을 갖춘 정서윤 씨 역시 그런 선입견을 피해가지 못했다고 한다.

“제가 남한에서 20년 넘게 살아도 여전히 간첩으로 의심받을 때가 있거든요. 아마 30년, 40년을 살아도 지금과 똑같이 계속 조금의 의심을 받으면서 살 거 같아요. 특히 그냥 친구하는 건 괜찮을 수 있는데, 결혼하려고 할 때 우리 또래는 편견이 없을 수 있어도 어르신들은 아닌 경우가 있잖아요. 예전에 제 남자친구가 외무고시 합격해서 외교관이 될 사람이었는데,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그랬대요. 서윤이랑 결혼하면 나중에 승진할 때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겠냐고. 남자친구가 눈치없이 그 말을 저에게 다 전달했어요. 그리고 그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한국사회에서 살아온 지 22년 차가 되었고, 공무원과 연구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정서윤 씨는 여전히 ‘북한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간첩 의심을 받는다고 한다. 이는 앞으로 30년, 4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정서윤

북한이주민 청년과 결혼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역시 문제가 생긴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또래 아이들이 ‘쟤네 부모님이 북한에서 왔으니까 같이 놀면 안 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래서 많은 북한이주민들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긴다. 하지만 숨기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밝혀야만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취업할 때가 그렇죠. 이력서에 출신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적잖아요.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북한에서 다녔던 경우에는 여기 와서 다시 학교를 안 다니면 이력서에 북한에서 다닌 학교를 적어야 되잖아요. 그럼 그 학교들은 남한에는 없는 학교니까 당연히 북한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죠. 그래서 취업이 제한될 때도 있는데, 특히 보안 관련 업무가 그래요. 제 아는 언니는 공항에서 일하고 싶어했는데, 다섯 번 지원해서 다 서류전형을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대요. 다섯 번째 면접 후 거기서 알려줬어요. 북한 출신이라 보안 업무에 제한이 있어서 뽑기 어렵다고요.”

그래서 북한이주민들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많이 하는 시도가 북한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가능한 빨리 바꾸려는 것이다. 같은 언어라도 부산 사투리를 들으면 금방 부산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듯이, 북한 사람의 언어도 들어보면 그게 북한 언어라는 걸 분명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향의 언어를 숨겨야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정말 슬픈 일이다. 정서윤 씨도 비슷한 생각일까?

“정부에서도 북한이주민에게 언어를 바꾸는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요. 그렇지만 저는 이게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니라고 봐요. 부산 사람이 서울에 오면 서울말 쓰라고, 서울말 교육시켜준다고 하지 않잖아요. 북한사람이라는 게 언어로 인해 드러나는 거니까 차별을 받는 거고, 관계와 취업이 어려워지는 것이지 북한에서 왔다는 정체성을 한국사회에서 수용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북한 언어가 남한과 너무 달라서 소통이 안 되는 문제는 없거든요.”

북한이주민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어떤 불시착

정서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 흔한 장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뿐만 아니라 북한이주민, 성소수자, 난민, 한부모가정, 외국인노동자 등 소수라는 범주에 해당한다고 생각될 법한 이들에게는 선입견과 편견어 담긴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서윤 씨가 북한이주민 청년 22년차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 책 “어떤 불시착” ©정서윤
정서윤 씨가 북한이주민 청년 22년차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 책 “어떤 불시착” ©정서윤

“한국사회는 다문화라든지 다양성을 수용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장애인식개선교육처럼 북한이주민을 어떻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로 수용할지에 대한 교육이 남한사람들에게 이뤄져야 하는데, 북한이주민에게 언어를 바꾸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불필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사회과학적으로 봤을 때,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그러한 소수자들을 다수에게 맞추는 문화정책으로 굉장히 폭력적인 문화수용방식인 거죠.”

그래서 최근 정서윤 씨가 출간한 책 “어떤 불시착”은 북한이주민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책이다. 북한이주민이 쓴 책이라고 해서 처절한 북한 탈출기나 남한에서의 고된 적응기 같은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 구성원, 한 청년의 이야기다.

정서윤 씨는 책에서 스스로를 ‘끼인 존재’라고 표현한다. 남과 북의 경계선. 그만큼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주민에 대한 인식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정서윤 씨의 활동과 어디에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북한이주민들의 활동이 우리 사회의 다문화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더 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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