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박관찬 기자] 2016년 법학석사 학위수여식을 앞두고 부모님이 구두를 사 주셨다. 엄마가 ‘색깔이 예쁘다’고 하면서 사주셨던 구두는 갈색이었다. 보통 양복은 검은색으로 입는 편인데, 검은색 양복을 입어도 구두는 갈색 하나뿐이라서 패션이 올블랙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자주 양복을 입는 편이 아니어서 갈색 구두를 10년 가까이 신었다.
2023년 이직을 하게 된 회사가 공공기관이라 출근룩이 중요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구두를 새로 장만했다. 마침 그해 11월에는 기자의 생애 첫 연주회를 앞두고 있기도 했고, 또 강연과 연주를 다니는 횟수도 부쩍 늘어났기 때문에 갈색 외에 올블랙 패션을 위한 검은색 구두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검은색(기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구두를 새로 장만했다. 그리고 작년 첫 독주회를 비롯해서 강연과 연주가 있을 때 기존의 갈색 구두보다 더 즐겨 신게 되었다. 올블랙으로 패션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지난 주 금요일 수원에서 열렸던 “어둠속 음악회”에서도 검은색 정장을 입어 달라고 해서 당연히 검은색 구두를 신고 연주를 했다. 특히 지난 7월 제주도에서의 연주회 때 갈색과 검은색 구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각각 한짝씩 잘못 챙겨 갔던 웃지 못할 경험 덕분에 잘 확인하고 구두를 신고 수원으로 갔다.
그런데 음악회가 끝난 뒤 지인이 내게 검은색 구두가 없냐고 물어봤다. 기자는 당연하게도 지난 수원에서의 연주 때 신었던 구두가 검은색 구두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연주회에 참석했던 지인은 검은색 구두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기자는 얼른 신발장에서 갈색과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던) 구두를 꺼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두 켤레의 구두를 밖에 가지고 나가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서 재차 사진을 찍어서 색깔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1년 가까이 기자가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던 구두는 진갈색이었다.
작년에 구두를 살 때 분명히 ‘검은색 구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검은색 구두가 아니었다. 부모님과 함께 구두를 사러 갔었는데, 색깔보다는 디자인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부모님도, 신발 매장의 직원도 정확히 어떤 색깔인지 기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덕분(?)에, 기자는 검은색 구두가 필요했고, 그래서 구입했던 구두도 검은색처럼 보였던 것이다.
기자가 저시력으로 시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진갈색을 검은색처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시각장애가 있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색깔이나 형체로 보고 싶은 어떤 착각으로 인해 그것을 본래와 다르게, 즉 원하는 색깔이나 형체로만 착각해서 볼 수도 있다. 기자가 1년 가까이 그랬던 것이다.
기자가 색깔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겪는 에피소드는 요즘 들어 자주 일어났다. 평소 베이지색이라고 생각하며 입었던 옷이 핑크색으로 드러난 적도 있고, 무지개색이 디자인되어 있는데도 다른 색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검은색이 아닌 진갈색 구두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서 올해 말에 예정된 기자의 두 번째 연주회에서만큼은 진짜 올블랙 패션을 위한 검은색 구두를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진짜 검은색 구두만 살펴볼 예정이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기자의 주변에 있는 물건이 어떤 색인지 확실하게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기자도, 주변 사람들도 정확히 무슨 색인지 알려주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을 테니까. 연주회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중요하니까.
그렇기에 색깔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