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열세 번째 이야기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꽤 오래전에 두 가지 질문을 던졌었다. ‘자폐인 대다수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왜 지금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현재의 장애등록 제도에 대해서, 둘째로 해외의 대다수 자폐인이 자신을 다른 장애인과 다르게 여길 수밖에 없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썼는데, 그사이에 한 가지를 더 추가(즉 대한민국 자폐성장애인의 전환기 실패)하고 여기에 답하다 보니 지금까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 길어져 버렸다. 맨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무리한 방식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못하여 이야기를 약 3년 동안 제대로 쓰지 못했다.
지난 3년 동안 어티스틱 엑스포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본인의 더인디고 졸고를 잘 읽었다며 인사하는 분들도 있었고, 졸고를 계기로 강연 등의 요청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오랫동안 이 글의 재연재를 기다려 오셨던 분들이 있다는 점 또한 알고 있는바, 우선 그동안에 기고가 뜸해졌던 데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의 논점을 짚어보는 의미에서 최근 발견했던 놀라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쿨재팬 정책으로 유명한 일본 경제산업성의 경제사회정책실은 2022년 3월에 ‘혁신창출 가속을 위한 디지털 분야에서의 신경다양성의 대처 가능성을 위한 조사’라는 보고서를 작성, 공표했다. ADHD나 자폐인 중 디지털 기술의 대처에 빠른 사람들의 능력을 활용해 디지털산업 노동자로 활용하고, 이들을 통해 창조 인력의 다양성을 다양화한다는 놀라온 취지의 보고다.
비슷한 시기에 찾게 된 곳이 카이엔(Kaien)이라는 곳이다. 일본에서 자폐 부모에 의해 2009년에 만들어진 이 회사는 자폐인의 가능성에 주목해, ‘발달장애인’의 십 대 때부터 직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대학생 때는 ‘동료 만들기’를 지원해 주고, 자립 훈련을 통해 취업을 이행하는 것을 도와준다.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금까지 2,000명의 자폐인이 취업, 86%가 정착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발달장애인의 권리 측면에서 상당히 후진국으로 지목당했던 일본이 어느새 우리나라를 다시 따라잡아, 자폐인이 살기 좋은 나라를 목표로 ‘중증’만이 아닌 ‘경증’, 아니 모든 자폐인의 권리를 향한 궁리를 시작해 가고 있다.
그 이외에도 저자가 영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었던 너무나 귀중한 경험도 소개하고자 한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자폐인들의 연례 수련회인 어트스케이프(Autscape)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처음으로 행사에 참여해 자폐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2023년 한국연구재단 및 용혜인, 김예지 의원님 등의 도움을 받아 어트스케이프 등에서 만난 분들과 국제 인사 여러분들을 초청해 진행한 2023년 신경다양성 포럼은 자폐와 관련된 최근 몇 년 간의 행사들보다도 가장 선진적인 행사였다고 자부한다. 더 나아가 2023년에는 지원을 받아 직접 행사장에 참여해 인터넷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역시 가길 잘했다,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해외의 상황을 보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자폐와 관련된 주변의 모습, 아니 미디어 보도만 살펴보면 한숨이 나온다. 똑같은 자폐인인데 한국 언론은 최근 주호민 작가 아들의 사건을 계기로 자폐인의 무능력만을 강조하고 24시간 돌봄 등의 서비스만 강조한다. 우영우 이야기는 환상으로 치부되고, 한국에서도 자폐인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묻어버린다. ‘왜 우리나라만 이런 걸까?’라는 질문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커리어는 그냥 기적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아예 자폐인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스코틀랜드로 이주해야 하나 고민이 들 지경이다.
이렇게 정리해 본 지금까지의 논의가 자폐인이 다른 사람에게 죄송한 삶을 살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며 일종의 현실을 바라보는데 머물렀다면 이제부터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그 근본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답을 찾다가, 앞으로 세 권의 책을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탐색해 보기로 하였다.
첫 번째 책인 《패턴 시커》(사이먼 바론코헨, 2020[2024], 디플롯)은 최근 번역 출간되었으나, 그동안 응용행동분석(Applied Behaviour Analysis)과 함께 전통적 자폐 이해의 주축을 차지했던 마음이론(Theory of Mind)의 핵심을 다루는 동시에, 이러한 논의를 신경다양성이라는 자폐인의 언어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이 책이 말하는 것과 이 책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나가면서 한때 나의 자폐 스승이었던 바론코헨과 그가 주도하는 옥스퍼드대 자폐연구센터(Autism Research Center)의 논의의 실과 허를 확인하고, 최근 바론코헨이 시도하고 있는 신경다양성 의미 뒤집기의 위험성을 찬찬히 따져보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폐인이 비-인간이 된 것이 정말 자폐인을 위한 것인지 살펴보고, 이러한 기존의 자폐 규정이 자폐인을 ‘죄송한 존재’로 만드는 요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책인 《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고윤주, 2020, 궁리)는 자폐를 치료주의에 한정해 읽으려는 시도이다. 이 책에 따르면 모든 자폐-인간의 모임은 자조모임이 아닌 치료모임이 되어야 하며, 자폐인은 의젓해질 수 있을 뿐 자폐스러움에 따른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은 한국 사회가 우영우를 ‘신화’로 만들며 숨기고자 하는 미인식자폐인의 존재를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다시 비평적으로 읽어나가며 한국의 자폐인들이 현재의 중재 시스템 상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동시에 그럼에도 가지고 있는 희망을 동시에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폐인이 해외에 비해 자립 가능성을 거부당하고 돌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위해 《장애학의 도전》(김도현, 2019, 오월의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은 장애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장애학을 접해야 하는 당위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사자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상호 돌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의미 체계가 ‘발달장애인 이데올로기’ 상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신경다양성이나 자폐 권리 패러다임 상에서 자폐인의 목표나 선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논점을 다시 한번 다루면서 자폐인을 이야기할 때 권리보다 돌봄을 우선시하는 이러한 관점들이 과연 자폐인의 권리를 증진하는 데 더 효율적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