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가서 첼로 연주를 하게 되면 항상 혼자 연주한다. 주제가 장애인식개선이니만큼 시청각장애를 가진 기자가 악보도 제대로 읽기 어렵고 본인이 연주하는 소리도 못 듣는데 첼로를 연주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두고 연주했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연주는 부족함 투성이지만, 그래도 첼로 연주가 끝나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일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물론 기자는 그 박수소리도 듣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에 맺힌 눈물도 보지 못한다.
그렇게 강연과 연주활동을 해오던 중 처음으로 피아노 반주가 있는 연주를 하게 되었다. 피아노 반주가 있어도 기자는 피아노 반주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 기자가 연주하던대로 첼로 연주를 하면 된다. 단, 피아노 반주가 기자의 연주에 정확하게 맞춰서 반주를 할 수 있도록 혼자 연주할 때보다 박자를 잘 맞춰서 연주해야만 한다.
그 경험을 시작으로 이젠 피아노 반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물론 기자가 피아노 반주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미를 두긴 어렵지만, 연주 경력이 늘어날수록 느끼고 깨닫게 된 것이다. 비록 피아노 반주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혼자 연주할 때보다 피아노 반주가 함께 할 때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피아노 반주는 온전히 ‘피아노 반주’ 그 자체다. 어떤 곡을 연주하더라도 기자가 멜로디를 첼로로 연주하고, 피아노 반주는 첼로의 멜로디에 맞게 반주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주의 시작도 첼로가 먼저 하고, 끝도 첼로가 끝나면 연주가 끝난다. 말 그대로 첼로 연주에 피아노 반주가 맞춰주고, 첼로 연주에 피아노 반주가 따라가는 형식인 것이다.
그렇게 온전히 기자의 연주에만 초점이 맞춰진 연주를 하다가, 최근에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올해 연주회에서 연주할 곡 중 하나인 “자이츠 협주곡 제5번 1악장”의 피아노 반주가 함께 있는 전체 악보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다.
실제 피아노 반주가 있는 오리지널 곡은 첼로가 멜로디를 연주하기 전에 피아노 반주가 악보 한 페이지 분량을 먼저 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피아노 반주가 악보 한 페이지 분량을 먼저 연주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첼로가 들어오면서 첼로와 피아노가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악보를 보는 순간, 이 악보대로 연주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쉽지 않은 미션이다. 이 악보대로 연주를 한다면 피아노 반주가 먼저 연주를 시작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시점’을 정확하게 알아야 될 뿐만 아니라, 악보 한 페이지 분량을 피아노가 반주한 뒤에 첼로 연주가 시작해야 하는 시점도 정확하게 알고 ‘치고 들어가기’를 해야 한다.
피아노 반주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연주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고, 첼로 연주를 위해 앉아 있는 자리에서 피아노 반주자가 앉아 있는 곳까지의 거리도 있어서 반주자가 보내는 신호도 저시력으로 인해 보기 어렵다. 어떻게든 피아노 반주의 시작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때부터 첼로 연주가 시작해야 하는 부분까지 마음속으로 정확하게 박자를 세기도 쉽지 않다. 악보 한 페이지 분량이니까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청각장애인이 첼로를 연주한다는 건, 어쩌면 그냥 멜로디를 첼로가 연주하고 거기에 피아노 반주가 맞춰 주는 것보다 이번에 강렬하게 생긴 욕구야말로 훨씬 큰 임팩트와 성취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방법이든 찾아서 피아노 반주가 시작하는 것을 알고, 악보 한 페이지 분량을 피아노가 반주한 뒤 그 흐름을 깨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첼로 연주가 들어갈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첼로 연주가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그 연주를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시도도 해보지 못했지만 그 무대를 상상만 해도 괜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지금까지 해본 그 어떤 무대보다 큰 도전과 성취감을 가져다 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을 찾아냈을 때 바로 도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하고 실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