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정말 크지만, 냉정하게 고백하면 기자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시청각장애는 여러 가지로 한계로 다가올 때가 있다. 어쩌면 그래서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리는 기자’는 전 세계에서 본인뿐일지도 모른다. 정말 맞다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지인들이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기자가 하는 취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물 인터뷰, 두 번째는 기자회견이나 세미나와 같은 현장 취재다. 이 두 가지는 시청각장애의 특성에서 접근하면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자통역을 받으면서 진행해야 하는 인물 인터뷰는 ‘분위기’를 항상 아쉽게 생각한다. 기자는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으로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질문을 던진 뒤 답변을 문자통역으로 확인하느라 말하는 이의 얼굴표정, 말투 등 분위기를 파악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신입기자 시절에는 말하는 이가 울고 있는지도 모르고 웃으면서 노트북 화면을 계속 쳐다본 적도 있고, 어떤 분위기인지도 알지 못한 체 전혀 분위기에 맞지 않는 발언을 꺼냈다가 민망해진 적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한 기자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 문자통역을 하는 속기사가 상대방이 하는 ‘말’만 문자로 통역하지 않고, 가능한 현장의 분위기도 전달해 주려 노력하고 있다. 가령 인터뷰 중 전화가 온다거나, 주변이 시끄럽다거나, 말하는 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등 소소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충분히 참고할 만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도 함께 문자로 통역해 주고 있다.
또한 기자도 연차가 거듭되면서 문자통역에 임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질문을 던진 뒤 답변을 문자통역 받으면서 노트북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는다. 저시력인 기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노트북 가득히 큰 글씨로 통역되는 문자들을 보면서, 기자가 던졌던 질문에 대한 핵심 답변이나 다음 질문을 던지기에 적합한 답변이 나올 때 특히 집중해서 본다. 그 외에는 조금 여유있게 노트북을 보다가 노트북 화면에서 잠시 얼굴을 들고 말하는 이의 표정을 살피며 나름대로 인터뷰의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기자가 시청각장애인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게 화제가 되어 다른 언론사의 기자로부터 인터뷰를 받은 적이 있는데, 비장애인 기자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다. 기자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는데, 말을 할 때마다 중요한 부분은 노트북에 타이핑을 쳐서 기록하기도 하고, 기자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던 것이다.
기자는 문자통역을 받는 중에 메모를 하기가 쉽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기도 쉽지 않다. 문자통역을 받은 내용을 저장했다가 기사를 쓸 때 파일을 열어서 그 장대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으며 기사에 넣을 중요한 내용을 찾아내야만 한다.
기자 생활 초반엔 이 작업이 되게 힘들고 귀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문자통역 받은 파일을 다시 읽으며 인터뷰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 게 기사 작성에 도움이 된다. 또 어릴 때부터 워낙 글 쓰는 것과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덕분에 문자통역 파일을 읽으며 기사에 필요한 내용을 곧잘 찾아냈던 것이다.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기사에 ‘시청각장애’라는 타이틀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기사다운 기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에게 시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인물 인터뷰보다 현장 취재에서 보다 큰 한계에 직면하곤 한다. 현장에서도 문자통역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인물 인터뷰처럼 취재의 대상이 한 사람이 아니라 불특정다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현장 취재의 경우 사진 촬영이 필수다. 현장에 취재를 가면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은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치며 현장의 내용을 기록하다가도 필요하다 싶으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촬영한다. 물론 기자도 그들처럼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데, 이때 양심적으로 문자통역을 하는 속기사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기자에게 문자통역을 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떠나 사진을 촬영하러 간다는 게 왠지 무책임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는 듯하면서도 몸으로 경험한 것들은 참 소중한 노하우가 되고 있다. 잘 안 보이고 잘 안들려서 분명히 놓치는 것은 있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놓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을 찾아내어 기사에 담아낼 수 있는 포인트 또한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언론사의 비장애인 기자가 ‘이런 취재’로 ‘저런 기사’를 쓴다고 해서 기자도 거기에 맞추려고 하진 않는다.
조금 덜 보이고 덜 들리는 상태에서, 아니면 시청각장애인 기자로 취재하고 쓴 기자만의 관점으로 쓰는 기사가 조금은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의 기사에 어떤 독자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흔적을 남겼을 때, 댓글을 남겨 공감을 해주었을 때 기자는 오늘도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더 열정껏 취재를 준비하게 된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