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바라기센터 속기사이면서 장애인 활동지원사인 박혜윤 씨
- “내가 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서 보람 느껴”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요즘 취업 관련 기사를 보면 취업을 포기하거나 그냥 쉬고 있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취업이 어렵고, 하더라도 본인에게 맞는,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신에게 잘 맞는 일,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그것도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속기사이면서 동시에 장애인의 활동지원사이기도 한 박혜윤 씨가 바로 그렇다.
#1. 속기로 법적 증거를 남긴다
박혜윤 씨는 속기사이면서 활동지원사다. 얼핏 보면 속기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활동지원사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을 지원하는 직업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박 씨의 속기사는 ‘문자통역’보다는 ‘속기’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해바라기센터(아래 센터)에서 속기사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우선 센터에서 무슨 속기를 하는지부터 물어봤다.
“센터는 19세 미만 아동, 청소년과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그리고 아동학대의 피해자가 의료, 상담, 법률, 수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속기사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진술을 속기록으로 작성하여 법적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관련 사건이 발생해서 조사가 필요할 때마다 센터에 가서 조사하는 과정을 속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어요.”
박혜윤 씨는 올해로 속기사로 활동한 지 10년차가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우연히 알게 된 속기사 자격증을 딴 뒤 자막방송 속기, 대학에서 청각장애학생을 위한 문자통역과 여러 행사의 속기 등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현재 센터에서 속기사로 근무하고 있단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니까 속기사로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얼핏 생각하면 사람들마다 말하는 속도나 톤 등이 천차만별로 다르니까 저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말을 속기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지 궁금해진다.

“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피해자니까 목소리가 작기도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단어로 말하니까 속기할 때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 이상하게 여름이 되면 평균적으로 범죄가 확 늘어나는지 여름에는 조사가 정말 많이 잡혀요. 그래서 조사도 계속 나가게 되는데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이 잡히면 활동지원사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럼 저 개인적으로 쉬는 시간도 너무 부족해지니까 힘들기도 해요.”
박혜윤 씨의 일정표를 보면 조사에 참여하러 센터에 간 날이 정말 많다. 특히 여름에는 박혜윤 씨의 말처럼 거의 매일 조사를 간 것처럼 센터를 간 날이 빼곡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범죄가 많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지만 피해자들의 진술을 빠짐없이 기록한 기록물로서 수사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속기를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도 해요. 범죄가 일어난 사건이니까 무겁고 안타깝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속기록으로 남겨 놓은 증거가 범죄사건을 잘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2.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한다
박혜윤 씨는 활동지원사로도 5년이나 근무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두 명의 이용자를 활동지원한단다. 속기사로 일하면서 두 명의 이용자를 활동지원하게 되면 일정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금방 하게 된다. 센터에서 언제 조사가 생기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두 명의 이용자에 대한 활동지원시간과 조율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 일들을 유연하게 다 해내는 걸까.
“속기사도 그렇고 활동지원사도 그렇고, 제가 조금 활동적이고 딱딱 정해지지 않은 일상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 다른 일을 다른 곳에서 하니까 재미도 있는 것 같고, 갑자기 조사가 생기더라도 활동지원을 제공하는 두 분의 이용자와 일정을 잘 조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두 분의 이용자도 유연하게 일정을 조율하며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잘 해올 수 있었어요.”
잘 생각해보면 속기사와 활동지원사 모두 ‘사람’을 전제로 하는 직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속기사는 센터에서 진행되는 조사에서 피해자들이 말하는 내용을 실시간 그대로 문자로 입력하고, 활동지원사는 장애가 있는 이용자가 자립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조사는 매번 내용이 달라지게 되고, 두 이용자도 주로 사회활동지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매일 제공되는 지원의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그렇기에 박혜윤 씨가 좋아하는 ‘정해지지 않은’ 것과 잘 맞는 일이다.
“특히 활동지원사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돕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함께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용자가 단순하게 뭔가를 요청하고 활동지원사는 그 일을 하고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이용자의 삶에 개입하게 되고 함께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팀플(팀플레이)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어요. 덕분에 무언가를 하려고 만나서 할 일을 같이 끝마쳤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3. 사회에 필요한 사람
속기사와 활동지원사 모두 5년 이상 일했기 때문에 직업 특성상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스쳤을 것이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좋은 인연이 되어 꾸준히 지속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 대학교에서 어떤 청각장애학생의 강의 문자통역을 한 적이 있어요.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수고하셨다고 서로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 학생이 졸업하면 더 이상 문자통역으로 만날 일이 없잖아요. 그럼에도 4년 동안의 인연 덕분에 그 학생이 졸업 후 전시회를 열게 되거나 하는 등의 소식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연락을 주면서 지금까지도 교류하고 지내고 있어요. 그냥 ‘일’로 시작했던 인연이라도 이렇게 지속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 저한테도 보람이 되면서 좋은 기억으로 저장되면 좋겠습니다.”
박혜윤 씨가 하는 일은 어찌 보면 ‘주도적’인 일이 아닐 수 있어서 크게 주목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박혜윤 씨가 하는 일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박혜윤 씨의 속기 작업과 활동지원 덕분에 수사 과정에 도움이 되고 두 명의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영위해 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며 바쁘게 살아가기 그지없는 요즘 시대에서 어쩌면, 박혜윤 씨야말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지 않을까.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박혜윤 씨는 너무 거창한 표현이라며, 사회에서 필요 없는 일은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처럼 박혜윤 씨도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라고.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삶이 흘러온 것 같다고. 틀린 말은 아니란 걸 인정한다. 그래도 분명히 어떤 직업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기에 지금도 어디에선가 열심히 속기하고, 또 활동지원하고 있을 박혜윤 씨를 응원한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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