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탈 때 ‘척’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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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외부 모습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경우 승강장 번호, 호차 번호, 좌석번호만 잘 확인할 수 있다면 지원인력 없이 혼자 기차를 탈 수 있다. ©박관찬 기자
  •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기차 혼자 타기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저시력 시각장애가 있는 기자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탈 땐 예매한 표를 교통약자지원센터에 보여주고 역무원이나 공익근무요원의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무리 기자가 서울역에 일찍 도착해도 지원인력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지원인력이 오더라도 청각장애도 있는 기자는 의사소통 역시 원활하지 않아 지원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지원인력이 본인의 핸드폰으로 기자의 표를 사진까지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좌석에 안내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차 타는 횟수를 거듭하면서 대략 어깨너머로 익히게 된 ‘감’으로 이젠 기자 혼자서 기차를 탄다.

예매한 코레일톡의 표를 보면 기차 출발 15분 전에 몇 번 승강장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 승강장 번호가 뜬다. 서울역 내 대형 스크린에는 15분보다 더 이전에 승강장 번호가 뜨지만, 해당 스크린은 기자의 시력으로 보이지 않아서 코레일톡으로만 승강장 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승강장 번호는 서울역 로비를 나와 여러 승강장으로 갈리는 광장 같은 곳에 가면 있는데, 승강장 번호만큼은 기자의 시력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크게 디자인되어 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숫자가 제법 크게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승강장 번호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승강장 번호를 확인한 후,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으로 내려가서 예매한 기차의 호차를 찾아야 한다. 기차를 많이 타봤기 때문에 승강장을 다 내려온 위치에서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야 기자가 예매한 호차가 있는지 짐작하고 있다. 다만, 호차를 나타내는 숫자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호차를 나타내는 숫자 쪽으로 조금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정확하게 숫자를 확인해야 한다.

호차를 확인한 뒤, 기차에 탑승하면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기자가 예매한 좌석에 앉아야 하는데,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ktx의 경우 1A, 1B와 같은 식으로 좌석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 번호는 정말이지 크기가 작다. 그래서 디자인된 번호에 아주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야만 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이젠 제법 자연스럽게 좌석번호를 확인하는 요령이 생겼다.

가능하면 기차 안에서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콘센트가 있는 좌석을 예매하는데, 주로 선호하는 좌석은 3A나 3D다. 즉 입구에서 세 번째 좌석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문제는 기자가 탑승한 곳을 기준으로 세 번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대쪽에서 탑승한 경우에는 세 번째 좌석이 아니라 쭉 더 이동해야 하는데, 역방향이나 순방향 호차에 따라 그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기자는 기차를 타면 우선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좌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일부러 껐던 핸드폰을 켜서 코레일톡의 좌석 번호를 확인한다. 서울역 로비에서부터 계속 확인한 좌석이니만큼 충분히 외울 법도 한데, 일부러 좌석 번호를 확인하는 ‘척’ 하면서 무심결에 기차 내부에 디자인된 좌석 번호를 확인한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좌석에 들어와 있고, 앉은 게 아니라 서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만큼은 기자의 시력으로 확실하게 번호 확인이 가능하다. 만약 그곳이 1A라면 그 위치에서 세 번째 좌석으로 이동하고, 15A라면 좀 더 걸어가서 반대쪽 위치에서 세 번째 좌석에 앉으면 된다.

이 방법은 서울역이 출발하는 역이라서 가능하지만, 대구나 대전처럼 중간에 타야 하는 기차는 써먹기가 쉽지 않은 방법이다. 중간에서 타기 때문에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이미 승객이 앉아 있으면 좌석번호가 적힌 곳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번호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간에서 기차를 타야 할 때는 승강장 번호부터 호차와 좌석 번호까지를 역무원이나 공익근무요원의 지원을 받아 타고 있다.

그래도 서울역에서만큼은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직접 주문하고, 역에 일찍 도착한 경우 광장에서 사람들이 앉아있는 틈에 끼여 앉아 어느 기차 탑승객 못지않은 여유도 부릴 수 있다. 광장의 계단 어느 중간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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