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선 ‘故 김순석 씨 호소’… 대법원은 ‘접근권 공개변론’

97
▲대법원 전경 ⓒ더인디고
▲대법원 전경 ⓒ더인디고

  • 최보윤 의원, “40년 전 서울 거리 턱, 지금은?”
  • 모든 건축물 실태조사면적기준 적용 폐지해야
  • 20년 유지한 편의시설 설치 기준… “행정입법부작위국가배상책임 공방

[더인디고]

“40년 전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 달라는 그 절실한 외침을 잊지 않고 앞으로 국가가 장애인의 접근성 개선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 <최보윤 의원>”

온라인 주문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만 하라는 것 <오경미 대법관>”

23일 국회와 대법원에선 무심코 넘어설 수 있는 ‘턱’을 놓고 관심이 뜨거웠다. 그 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23일 종합감사에서 최보윤 의원은 40년 전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고 호소한 고 김순석 씨의 사진 기사를 공개하며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질의를 했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23일 종합감사에서 최보윤 의원은 40년 전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고 호소한 고 김순석 씨의 사진 기사를 공개하며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편의시설 대책을 촉구했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오후, 보건복지부 등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서 (비슷한 시각에) “장애인 접근권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공개변론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조규홍 장관을 향해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등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편의시설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보윤 의원, 복지부 종합감사에서 고 김순석 씨 사건 소환소규모 시설 접근권 대책 제시

최 의원은 질의 과정에서 지난 1984년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호소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 김순석 씨의 기사를 공개한 뒤,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노약자, 유모차를 끄는 영유아 동반자들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높은 턱들이 가득하다”며, “중앙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전국의 건물 1층에 위치한 소규모 공중시설 접근성에 대한 전수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법적 의무가 없는 시설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정책 수립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23년 편의시설 전수조사’ 결과를 통해 2022년 기준 장애인 편의시설 적정 설치율은 79.2%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전수조사는 법적 의무가 있는 약 19만 개의 건축물로 조사된 결과에 불과하다. 전체 건축물 약 735만 개의 97.4%는 편의시설 설치 법적 의무가 없어 전수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최 의원은 또한 “법 시행(1998)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없어 장애인 등을 위한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것과 “현행 면적기준(50㎡) 제한과 편의시설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시설 등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조 장관에게 “면적 제한 폐지나 지자체에서도 시행하는 경사로 지원 등 적극적인 조치 및 계획 등의 여부”를 물었다.

▲23일 종합감사에서 최보윤 의원의 편의시설 대책 질의에 조규홍 장관이 답변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23일 종합감사에서 최보윤 의원의 편의시설 대책 질의에 조규홍 장관이 답변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의무편의시설 대상 제외 시설까지 조사하는 방법 등은 지자체와 협의하겠다”며 “적용 제외 등은 영세 사업자 부담도 고려해야하는 만큼, 협의를 하며 대상 시설 등을 추가할 수 있는지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최 의원이 질의하는 오후 2시경,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지체장애인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소송 등 상고심 사건의 공개 변론을 열었다.

대법원 전합 공개변론, 정부의 입법부작위 지적국가손해배상은 글쎄

쟁점은 ‘국가가 편의점 동 소규모 시설에 대해선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하지 않거나 바닥 면적으로 규정한 시행령 등을 개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행정입법 부작위’로 볼 수 있는지, 그렇다면 ▲이를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다.

앞서 1998년 제정된 기존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소매점의 범위를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 이상의 시설’로 정했다. 시행령 규정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중 97% 이상이 의무에서 면제된다. 해당 시행령은 지난 2022년이 돼서야 ‘바닥 면적 50㎡ 이상’으로 강화돼, 그 이전까지는 20년 이상 그대로 적용을 해왔던 것.

이에 원고들은 국가가 위 시행령 규정을 20년 넘도록 개정하지 않아 장애인등편의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보장한 접근권이 유명무실해졌다고 주장하면서, 그 행정입법부작위가 위법하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을 청구한 내용이다.

관련해, 1심과 항소심은 “국가가 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고의·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해당 시행령은 “장애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1심 판단 이후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22년 바닥 면적 합계 50㎡ 이상의 시설로 개정됐다.

▲23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장애인 접근권 관련 대법원 공개변론이 열리는 대법원 앞에서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국가책임, 대법원 공개변론’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23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장애인 접근권 관련 대법원 공개변론이 열리는 대법원 앞에서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국가책임, 대법원 공개변론’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기자회견에는 원고당사자인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도 참석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공개변론에서 이주언 변호사 등 원고 측은 “바닥면적 300㎡ 이상에 이르는 소매점은 거의 없다. 시행령이 만들어진 98년부터 20여 년간 통계를 보면 0.1%에서 5% 남짓”이라고 전제한 뒤, “쟁점 규정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접근권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며 “모법의 위임범위를 일탈하고, 행정입법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위헌·위법적 규정은 10년 뒤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2007)될 때도 시행령을 개정할 수 있었으나 정부는 개선하지 않았다”며, “정부는 소상공인의 부담을 이야기하지만, 온라인에서 장애인용 경사로는 3만5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피고(정부) 측 대리인인 이산해 변호사 등은 “국가는 이동 보조 등을 위해 활동지원 등 다양한 장애인 복지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이러한 가운데 장애인 접근권 강화 등을 위해 장애인등편의법을 87차례나 개정했다”며 “부족하나마 정부는 장애인 접근권을 포함한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온라인 구매나 대형마트 이용, 활동보조사 통한 구매 등 대체 수단이 있고, 정부로선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도 고려한, 점진적 접근이 필요했다”고 반박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입법 의무 게을리한 것 아니냐”… 대법원판결 주목

이에 대해 대법관들은 정부의 행정입법 부작위를 지적하는 듯한 질문을 이어갔다.

오경미 대법관은 “활동지원인도 있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지만, 이는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만 이용하라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조희대 대법원장은 “바닥면적 300㎡ 이상 시설이 실제로 전국에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원고 측은 “약 3%”, 피고 측은 “5%는 넘는다”고 답했다. 조 대법원장은 “법이 동등한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했는데, 정부 주장대로 해도 5%대 접근성을 두고 시행령으로 우리가 할 바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건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다”며, “이 정도라면 너무나 입법 의무를 게을리한 것이 숫자 자체로 명백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한편, 원고 측 참고인으로 참석한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더인디고와의 통화에서 “변호인들은 법률적 대응에 집중한 반면, 자신은 주어진 5분 동안 당사자로서 카페나 미용실 이용 등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운 현실을 전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전제한 뒤, “행정입법부작위로 인한 당사자의 접근권 침해에 대해 대법관들이 공감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면서도, “다만 손해배상청구권은 의견이 엇갈릴 수 있을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피고 측은 “접근권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인 데다, 가해자가 국가인지 공무원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며 “특히, 침해에 따른 피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신적 피해라는 점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다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배융호 이사에 따르면, 공개변론 과정에서 한 대법관이 ‘손해배상액이 얼마이면 적당한가’라고 물었을 때, 원고 측은 ‘행정입법부작위는 장애인의 접근권 침해의 근본적 원인이므로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접근권 침해에 따른 국가배상 판결 그 자체가 상징성이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법원은 이날 논의 내용과 각계각층에서 제출된 의견을 토대로 최종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판결은 늦어도 4개월 이내에 나올 전망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 관련 기사

편의점 등에 장애인편의시설 설치해야… 법원 “바닥 면적 기준 시행령, 차별”

더인디고는 80대 20이 서로 포용하며 보듬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인터넷 저널입니다. 20%의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쪽빛 바닷속 살피듯 들여다보며 80%의 다수가 편견과 차별 없이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편견의 잣대를 줄여나가겠습니다.
승인
알림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