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저는 부모연대에 가입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집회 참석은 올해 초부터 시작한 병아리회원입니다. 그동안 내 자식 돌보는 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집회에 나가나? 그런 생각이 더 컸습니다. 그런 저를 집회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성동의 윤 모 후보가 특수학교가 들어설 자리에 특목고를 유치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내건 사건입니다. 제가 이렇게 흥분하여 집회까지 달려 나오게 된 건 제가 직접 경험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이는 지금 6학년 도움반이 있는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자폐성 장애 아동이기에 사회성도 학습하고 어린이집도 장애통합 어린이집을 잘 다녔기에 일반학교 도움반이 있는 학교로 입학했습니다. 그게 저의 욕심이었는지 저희 아이는 1학년 입학하고부터 바로 실무사 선생님이 1:1로 붙어 등교하면서부터 하교할 때까지 함께 생활해 주셔야 하는 힘든 아동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복은 타고난 아이라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저희 아이를 예뻐하고 잘 대해준다는 겁니다.
그렇게 아이가 주변의 도움을 받고 학교생활을 잘해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저희 아이는 아주 힘들었던 겁니다. 고학년이 되면서 머리에 원형탈모가 여러 개 생겼고 손톱은 물어뜯어서 닿기만 해도 아파할 정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아이가 5학년 겨울, 서진학교에서 내년 6학년에 올라가는 아이 한 명의 전학으로 자리가 생겨 추가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지원했습니다.
지원서를 적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한 자리밖에 없는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엄마는 지원서를 적으면서 우리 아이는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고요. 못하는 것들을 찾아서 적어야 하는 겁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못하는 거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 저희 아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발전해간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남들 눈에는 달라진 것 없이 언어도 안 되고 학습도 안 되고 문제 행동이 있는 아이지만 제 눈에는 엄청 발전한 모습이 보이니까요.
그렇게 울면서 적은 지원서를 제출하고도 두 달이라는 피 말리는 시간을 기다려서야 결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아직도 일반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저희 딸은 벌써 16대 1의 경쟁률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 특수학교에 TO가 생길 때마다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양천구에 살고 있습니다. 특수학교가 한 개도 없는 구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동진학교도 늦어지고 있고, 더구나 양천구는 특수학교 설립 순서도 1번이 아니더군요 ㅠㅠ. 아마 우리 딸은 특수학교 문턱도 못 밟아보고 학령기를 마칠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출산으로 문을 닫는 학교가 많아진다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저출산 속에서도 발달장애 아동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없어서 문 닫은 학교… 폐교가 된 학교부지… 그 부지를 활용해 특수학교에 가고 싶고… 가야 하지만 학교가 없어서 갈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특수학교를 더 만들어 주셔서 교육받을 권리를 지켜주시면 안 됩니까?? 제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6학년, 4학년, 3학년 세 딸아이의 엄마입니다. 이제 4학년, 3학년인 딸들은 벌써 사춘기를 시작하는지 말을 잘 듣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쁜 점은 두 아이가 언니를 잘 챙기고 무슨 일을 할 때 언니와 함께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참 잘 키웠구나 하고 흐뭇합니다.
가끔 아이들과 시댁에 갈 때마다 어른들이 비장애 동생들에게 “나중에 너희가 크고 엄마아빠가 없으면 너희가 언니를 챙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어른들은 채원이가 안쓰럽고, 걱정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저는 비장애 동생들에게 너희가 언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우는 그 말이 너무 싫습니다.
또, 얼마 전 남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남편이 몸이 좀 더 힘들더라도 월급이 더 많은 직장을 알아봐서 옮겨야겠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모아놓아야지 나중에 우리가 죽고 나서 동생들도 힘들지 않고 채원이가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얘기하더라고요.
모두 채원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인 거 잘 압니다. 저희 남편은 부모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걱정을 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생들에게 언니를 돌봐야 한다고 짐을 지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댁 어른들도, 남편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입니다. 그들의 인식 속에는 장애 가족이 있으면 나중에 남은 가족들이 장애가족의 노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게 보통의 생각입니다. 장애인도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그들이 성인이 되고, 자립해야 할 때 옆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지 끝까지 남은 가족들의 짐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식의 변화가, 환경의 변화가 빨리 이뤄지길 바라봅니다.
예전에 아이 셋을 혼자 돌보면서 번 아웃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아이 다니는 치료센터 선생님의 권유로 제가 심리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했던 다른 상담들이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상담이 있습니다.
그날은 아이들에 관한 얘기를 나눴던 거 같은 데, 아이들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얘기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큰아이는 하트, 둘째는 꽃, 셋째는 스마일이라고 답했습니다. 꽃을 좋아하고 맘이 여린 둘째, 항상 엄마를 보고 웃어주고 웃게 만들어 주는 막내라고 말씀드렸어요.
하트라는 답을 들은 선생님께서 엄마가 채원이를 특히 더 챙기고 사랑해서 그런가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대답은 저를 엄마라고 첨 불러준 큰딸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특별한 아이죠.
보통 하트는 사랑을 나타내는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저는 약간 모양이 변형된 원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움푹 파이기도 하고 뾰족한 부분도 있는 동그라미요. 파인 곳은 채워주고 뾰족한 부분은 잘 다듬어주면 예쁜 동그라미가 되지 않을까요? 채원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동글동글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예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며 잘 키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집회만 참가하고 그냥 집으로 가던 저를 챙겨주시고 제가 이곳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양천지회 회장님, 부회장님 감사합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먼저 앞장서서 길을 만들어 주신 선배 부모님들께 감사드리고 저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뭔가를 개척하지는 못하겠지만, 닦아놓으신 길은 잘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 10월 22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95회차 중에서–
[더인디고 THE INDIGO]












아무리 좋은 활동지원사도 가족만큼은 아닐겁니다.
그 사람들은 어쨋든 그게 직업이니까요.
저도 그 직업을 가진 적이 있는데 가슴 뜨겁게 일하는 사람 별로 없는게 현실입니다.
특수학교가 많이 생겨야 할거 같네요. 경쟁률이 그렇게 높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