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시청각장애인의 프로필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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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촬영 중인 모습
시청각장애가 있어서 카메라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고 사진작가의 말을 들을 수 없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찾아내는 소통의 방법을 통해 매번 성숙해지는 프로필 사진 촬영 현장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다음달로 예정된 독주회 홍보를 위한 프로필 사진을 촬영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 특히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모델로 서 있어야 하는 위치에서 카메라까지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어디를 향해 시선을 둬야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또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든 채 요구하는 포즈와 같은 멘트를 듣지 못하기에 원활한 의사소통도 쉽지 않다.

하지만 천막사진관 오상민 대표를 알게 된 뒤 이제는 프로필 사진 촬영을 즐기고 있다. 프로필 사진 촬영 당일뿐만 아니라 당일까지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어떤 사진을 선호하는지, 이번에는 어떤 각도로 촬영하고 싶은지, 배경은 어떤 걸 원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오상민 작가님도 해를 거듭할수록 시청각장애가 있는 기자와 어떻게 하면 호흡을 더 잘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의견을 묻는 등 함께 하려는 마인드 덕분에 매번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상민 작가님의 가장 매력적인 면은 ‘다정함’인 것 같다. 천막사진관은 ‘이동형’ 사진관이기에 카메라를 비롯한 여러 촬영 장비들을 미리 예약한 스튜디오에 가져와서 세팅하는 준비시간을 거치게 된다. 이때 오상민 작가님은 여러 장비들을 세팅하느라 분주할 텐데도 기자와 활동지원사가 심심하지 않게 대화를 시도한다. 연주회 준비는 잘 되어 가는지, 활동지원사와는 어떤 인연인지 등 어찌 보면 소소한 일상적인 주제지만, 오상민 작가님이 이야기하면 자연스레 다정함이 느껴질 만큼 대화를 이끌어 가는 매력이 넘친다.

그리고 시작된 프로필 사진 촬영에서 오상민 작가님의 진가가 드러난다. 오상민 작가님은 사진을 촬영해야 하므로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다. 또 모델과의 촬영 각도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촬영 중간중간 수시로 모델에게 다가오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오상민 작가님이 하는 말을 중간중간 활동지원사가 기자에게 와서 손바닥 필담으로 통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상민 작가님이 직접 기자에게 다가와 손바닥 필담으로 소통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상민 작가님이 생각한 우리만의 ‘사인’을 만들어 촬영을 진행했다.

사진 촬영을 할 때 취하는 얼굴 표정은 크게 두 가지다. 무표정과 웃는 표정인데, 오상민 작가님은 사진 촬영 중 기자가 지어야 하는 표정을 손가락으로 사인을 만들었다. 검지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일 때는 무표정,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펼쳐 보일 때는 웃는 표정을 지으면 된다. 여러 포즈로 촬영을 할 때마다 오상민 작가님이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면 거기에 맞게 얼굴 표정을 바꾸면 된다.

얼굴표정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는 옆모습이나 새로운 구도를 위한 오상민 작가의 움직임은 열정적이다. 어떤 포즈를 취하면 되는지 본인이 직접 취해서 기자에게 보여주고, 첼로와 함께 어떤 각도와 포즈를 취하면 좋은지 카메라의 위치와 모델의 위치를 고려하여 기자의 얼굴 각도와 턱의 들고 내림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체크한다.

그런 소통이 있는 촬영을 통해 세상에 나온 사진을 받아보면 참 신기하다. 솔직히 기자의 저시력으로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오상민 작가님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위치만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그곳을 향해 손가락이 하나이면 무표정, 두 개면 웃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정확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기자를 보고 내심 감탄했다.

프로필 사진 촬영 전에 어떤 포즈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한 덕분에 가장 기대했던 컨셉이 정말 만족스럽게 연출되었다. 활을 잡은 오른손에 첼로에서 가장 멀어진 순간이 멋진 포즈라고 생각했는데, 오상민 작가가 카메라에 잘 담아냈다. ©천막사진관 오상민 작가

첼로를 연주할 때 눈을 감거나 첼로를 내려다 보고 있는 진지하면서도 첼로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사진, 첼로와 함께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 기자가 가장 선호하는 오른손으로 잡은 활이 첼로와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진 등 어느 것 하나 아쉬운 게 없는 완벽한 사진들이다. 첼로에 대한 사랑을 사진을 통해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열정적으로 촬영해 준 오상민 작가님 덕분이다.

정말이지 시청각장애인에게 프로필 사진 촬영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소통이 어려우니까 막연하게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상민 작가님과 함께 호흡한 지 어느 덧 3년째다. 호흡도 정말 괜찮고, 사진도 매년 분위기가 다르면서 성숙하게 느껴진다. 가능하면 매년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며 기자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다. 물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작가는 천막사진관 오상민 작가님이면 좋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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