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건강은 생명 연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에 다다르는 것이 아닐는지.
이미 나의 삶이 된 장애야 끌어안고 살아간다지만, 장애에 질병을 더한 채 천수를 누릴 만한 이 사회는 아닌 듯하여 씁쓸하고 안타깝다.
장애와 관련한 우리 사이에서야 장애 그 자체의 힘듦과 불행이 아닌, 이 사회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과 차별이라고 이구동성이지만, 사회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고 두텁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나의 경우 심한 척추측만증이나, 골격의 변형과 구축 등으로 인한 통증을 겪는 상황이기에 삶의 질이 떨어지는 장수는 망설임 없이 손사래를 치고 싶다.
질병의 조기 발견이 목적이라는 국가건강검진은 국가가 비용 지원을 하여 생년 기준으로 격년(홀짝제 적용)마다 점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장, 체중, 허리둘레, 시력, 청력, 혈압, 피검사, 소변검사, 흉부방사선촬영, 구강질환 검사와 채변을 통한 대변검사까지 나열하고 보니 제법 체계적이고 촘촘해 보인다. 나도 격년의 국가건강검진을 받고 있지만, 매번 신장과 체중 같은 기본적인 측정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라서 솔직히 내용 없는 형식처럼 느껴진다.
병원에 있는 체중계에 올라갈 수 없어서 집에서 전자식 체중계에 오르길 시도해 봤다. 나지막한 전자식 체중계에 어찌저찌 올라가도 엉덩이와 두 다리를 모두 올려놓고 정확히 체중을 잴 수가 없다. 불균형하게 후들거리는 몸을 가눌 길 없어 식은땀만 흘리다가 체중은 예상치로 어림잡곤 했다. 방법이라면 누군가 나를 안고 체중계에 올라서 자신의 몸무게를 뺀 나머지 무게를 확인해 주면 될 일이지만 말이다. 임신했을 때 그 누군가가 나를 안고 체중계에 올라가 준 적이 있었다. 일전에는 서울 여의도의 이룸센터에서 휠체어 무게를 재는 저울에 전동휠체어를 탄 채로 올라가서 전체에서 휠체어 무게를 뺀 것으로 내 몸무게를 확인했던 적도 있었다. 그 몸무게를 기억하여 지금까지 내 체중으로 삼고 있다.
신장은 줄자로 대략 재서 검사진의 질문에 답하는 상황이니 뭐 하나 정확한 게 없다. 소변검사 역시 전날에 병원에서 소변 컵을 받아뒀다가 검사 당일 아침 소변을 받아 가는 식이었다. 소변을 옮겨 담는 과정과 지체되는 시간 때문에 오염될 소지도 다분하다. 과연 나의 질병이 조기 발견되기는 할까?
아니 발견된다 한들 생명체의 존엄성을 지키며 시의적절하고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는 있을까. 기본적인 시작이 이러하니 검사 또한 설렁설렁하다 싶고, 신뢰할 만한 결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흉부 방사선 촬영을 위한 환복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브래지어를 안 하고 헐렁한 옷차림으로 내원하는 등 기계와 사람의 도움이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건강검진을 밀린 숙제 해치우듯 등 떠밀려 해왔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지난번에도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활동지원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침대 위로 올려주었다. 한 간호사가 나를 모로 누여놓고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며 내 얼굴을 어찌나 찍어 누르는지 위내시경 검사를 하기도 전에 지레 죽을 맛이었다. 모르긴 해도 장애가 있는 환자를 몇 번 대응해 본 듯한 그녀의 자신감은 다른 개인차를 가진 내겐 아주 불편한 것이었다. 구역질과 트림을 겨우 참아가며 마친 검사 결과에 위염 소견이 있었지만, 별다른 치료 없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장암 검사는 채변 후 이상 소견 시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고, 조직 검사를 하게 된다지만 아무래도 이 검사만큼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유방암 검사는 또 어떤가. 휠체어에 앉아서 압박 촬영(맘모그래피)이 어렵다는 주변 경험담을 듣고, 초음파검사를 해야지 하던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살았다. 자궁경부암 검사 역시 검사대로 접근과 이동이 어렵고, 검사대 구조 역시 다양한 신체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모양새라서 불편하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피검사 하나는 오류가 없지 싶다. 구강검사는 말해 뭐 하나. 그럼에도 나는 코로나 동안에 한두 번 건강검진을 걸렀을 뿐, 때마다 거의 검진을 받았던 것 같다. 마치 아무도 돌보지 않는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처럼.
그렇게 국가건강검진은 겨우 받아왔지만, 병원에 건강검진 비용을 지불하고, 나의 건강 상태를 체계적으로 점검받기 위해 선택적으로 받는 종합건강검진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나에게는 출산의 경험이 있기에 더욱 필요성을 느꼈지만, 따로 초음파검사를 해야 하는 부담감과 비용 부담 등으로 그 또한 미루고 있었다.
남편이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던 OO 대학교병원의 외과에 보호자로 드나들면서 담당 교수가 주는 왠지 모를 믿음에 끌리게 됐다. 건강검진을 통해 유방암 검사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해서 검진을 받고 싶다고 상담했더니 생각보다 빠르게 날짜가 잡혀서 활동지원사와 함께 외과를 찾았다.
검사를 앞두고 소변을 재차 봤건만, 긴장 때문인지 요의가 빨리 느껴져서 한층 초조했다. 간호사가 교수라 부르는 의사가 초음파실에 앉아있다가 상체를 틀어 나를 바라봤다. 의사가 여성이어서 순간 안심이 되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전동휠체어의 기능(틸팅, 리클라이닝, 엘리베이팅)을 설명한 후 휠체어에 앉은 채로 검사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듣던 그녀의 입가에 옅은 실소가 번지는 듯하더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이은 그녀의 한숨 소리에 나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검사 기계를 쳐다보았다.
검사 기계에서 진료 침대가 가장 좋은 접근성임을 말하는 의사를 쳐다보면서 검사를 포기할지 말지 속으로 잠시 갈등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읽었는지 의사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간호사에게 바퀴 달린 침대를 앞으로 당기라 하고, 붙박이장 같던 초음파검사기기도 앞으로 끌어당기게 했다. 초음파기기에도 바퀴가 있었다. 모든 바퀴는 구르고,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융통성을 갖는다.
검사실에는 오로지 교수만이 융통성이 없는 듯했다. 사실 그녀는 내가 한 다음 말에 의해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이 외과에서 제 남편 OOO 씨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의 보호자인데, 유방암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어 외과 교수님에게 검사 의뢰를 했었습니다.”
비로소 그녀는 태도 전환을 했고, 검사해 줄 결심을 했다.
검사받을 준비가 된 나는 말해두었던 전동휠체어의 옵션 기능을 십분 활용하기 시작했다. 초음파검사를 위해 엘리베이팅과 틸팅, 리클라이닝으로 각도를 맞추고, 휠체어 팔걸이 스윙 기능까지 총동원하니 검사 침대와 얼추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사노라면 사람과 상황에 따라 각도와 자세를 낮추거나 맞춰야 할 때가 있음을 나만큼은 산 듯 보이는 교수도 모를 리 없겠지만, 그 순간 떠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하라는 대로 나는 고분고분 상의도 탈의했다. 활동지원사의 조력으로 만세 자세를 한 후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이왕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힌 교수는 한 번 검사하기도 힘들고, 나이도 있는 환자니까 가슴뿐 아니라 겨드랑이와 목도 살펴보자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까 땅이 꺼져라 한숨 쉬던 그녀가 맞나 싶을 만큼 다른 태도에 어리둥절했다.
아무튼 이제 나와 유사한 장애 유형의 환자를 만나면, 그녀의 마음은 자동문처럼 스르륵 열릴 것만 같았다.
입은 앙 다물고, 눈은 질끈 감은 채 난생 첫 유방 검사를 마치자, 교수가 내친김에 옆방으로 이동해서 맘모그래피 촬영도 해보자고 권하길래 내부 문을 통하여 이동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촬영할 수 있었으나, 그 또한 각도와 자세를 잘 맞춰야 했다. 부끄러움과 아픔의 시간을 통과하자, 교수는 6개월 후에 한 번 더 초음파검사를 해보자고 하였다.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6개월 후에 뭔가가 나온들 수술 같은 건 하기 어려울 거라고 속단하면서 병원을 빠져나왔다. 질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 건강검진을 한다지만, 질병이 발견되더라도 수술뿐 아니라, 수술 후 회복 과정과 회복력에 있어 비장애인과 같지 않은 상황을 헤아려봐야 한다.
어깨 통증으로 재활의학과를 찾았다가 갑상선암을 발견하고 수술받은 남편은 1년 가까이 회복 중이지만, 이젠 어깨 인대가 끊어져서 인공인대 삽입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 조기 발견도 늦었지만, 중증장애가 있는 우리 부부에겐 수술 후의 재활 과정이 더 우려스럽다. 현재의 바닥 생활로부터 침대와 휠체어 생활로 바뀌어야 할 것이고, 활동지원서비스 시간도 더 확보해야 할 것이다. 활동지원서비스가 못 미치는 시간에 나를 일으키고, 돌보았던 남편의 기울어진 오른쪽 어깨가 가엾고 가슴 아픈 요즘이다.
편의시설이 장애를 지우고, 아플 권리와 치료받을 권리가 환부를 아물게 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장애보다는 개인의 성별, 나이, 필요, 비용 등 다양한 조건을 우선하여 회복력과 생명력을 갖게 하는 사회에서 살맛 나는 삶을 살고 싶다.
남은 삶은 그렇게 살 수 있으려나.
[더인디고 THE INDIGO]

이런 어려움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참 슬픈고 어려운 건강검진이네요.ㅠㅠ
조금씩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 경험을 토대로 써본 글이예요.
관심과 공감 감사합니다^^
여의사분의 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만큼 자세와 태도가 달라졌다고 봅니다. 분명 다음번 환자분은 좀더 편안하게 진료를 볼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우리 작가님은 바다의 얼음을 깨고 길을 내는 쇄빙선을 닮았습니다.
쇄빙선 같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으나, 왠지 더욱 주먹 불끈, 결연해지는 마음이 듭니다^^;;
얼음을 깨부수기보다는 녹이는 사람이 되고싶은데, 상황과 상대에 따라 달라지더라구요.
공감과 응원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