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식물을 닮아가는 푸른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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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넝쿨 /사진=픽사베이
▲담쟁이넝쿨 /사진=픽사베이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근육병의 최중증 상태를 목전에 두고, 인공호흡기란 생존 장치에 연결된 채로 중요한 5월의 진료와 11월의 정기입원, 큰맘 먹고 봄과 가을에 공원 나들이 나오는 걸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활을 익숙하고 편안한 집안에서 부모님께 살가운 돌봄을 받으며 보낸다.

온실 안에 손을 타는 예민한 화초와 닮아있다. 공기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며, 하루 사분의 삼 넘게 방 안에 누워 지내는 단조로운 정주의 삶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등에 업히고, 수동휠체어와 차로 이동했던 제한적인 자유가 눈물 나게 그립다. 풍경과 사람들에게 닿아 소통하던 날들이 마음속에서 봄날을 풍요롭게 이룬다.

광릉 수목원에서 새파란 하늘을 향해 높다랗게 솟아난 전나무 숲에 묻혀있던 때가 떠오른다. 쭉쭉 뻗어 오르는 성장력과 피톤치드를 뿜는 정화력으로 작고 병약한 내 몸에 생명과 영성이 차오르는 저희의 맑고 푸르른 숨결을 조건 없이 불어 넣었다. 그 진실한 연결이 생태적인 치유로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이십 대에 학교 동창들과 영화관에 가고, 장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며, 교회 청년부에서 환대 받았던 추억이 애틋하다. 든든하고 친밀한 편인 친구와 동료, 어른들은 낮고 외로운 내 맘에 신뢰와 영혼이 담겨있는 저들의 밝고 포근한 애정을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그 진정한 소통이 유연한 존재로 나를 이끌었다.

지구를 뒤덮은 다채로운 식물은 제 의지로 여행하거나 이주할 수 있는 이동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자연 가운데 광합성 활동을 펼쳐서 산소와 양분을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다른 모든 생명이 속한 역동적인 생태계를 살리고 유지시키는 귀한 연결과 소통의 시작점이다.

내가 특별히 감정이입되는 녹색 친구는 친숙한 담쟁이넝쿨이다. 나무처럼 올곧게 자라거나 봄꽃처럼 화려하게 꽃 피우며, 줄기로 온전히 버티지 못하는 풍경이 침상에 머물러 살가운 존재에 기대어 작고 낮은 하루를 소박하게 이어가는 나의 실존과 신기하게 닮았다.

누군가를 만나는 실제적 대면과 어딘가로 떠나는 물리적 이동의 측면에선 닫혀 있어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핍과 한계를 정갈한 언어로 뛰어넘고, 시공간을 넘는 온라인 세계에 접속해서 나름대로 채우고 해소한다. 그런 점에서 비대면 소통과 간접 경험만으로 배우고 어울리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건 인간으로서 받는 큰 축복이다.

마음속에서 동물적인 삶이 여전히 그립고 간절할 때가 생긴다. 그럼에도 폭력과 이기심에서 멀어진 식물적인 생을 누려서 감사하다. 걸어 다닐 튼튼한 다리나 날아오를 날렵한 날개를 가지고 대지와 하늘을 가를 수는 없어도 햇살과 공기, 물에 활짝 열려서 모든 걸 품고 자기와 지구를 아우르는 상생의 의미와 가치를 피우고 맺을 줄 아는 존재란 얼마나 크고 멋진가.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는 담장을 타고 오른 담쟁이에 작은 이파리를 그려 넣은 것만으로 한 사람이 희망을 꺾지 않고 회복될 내일을 꿈꾸며, 고통의 자리에 웅크린 오늘을 버티는 장면이 담담하게 묘사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산소로 전환하는 식물들의 능동적인 활동이 우리를 살리듯 나의 고독과 슬픔을 머금어 투명한 감사가 푸르른 긍정으로 승화되어 세상과 나누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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