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가 탈 수 있게 양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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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모습
지난 7일 여의도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관석 작가
  • 오는 지하철마다 만석인 가운데 휠체어 탈 수 있도록 시민들 배려
  • “어려운 시기지만 선결제하고 배려하는 시민들 마음에 힘낼 수 있어”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지난 3일 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후 대통령을 탄핵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대한민국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특히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여부가 결정되는 지난 7일,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는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집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에 정차하는 서울지하철 9호선은 평소 출퇴근길에 ‘지옥철’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이 많이 타면 복잡하다. 하지만 이날은 집회가 3시 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1시 경부터 국회의사당역 방면으로 가는 9호선을 타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노량진역만 해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스크린도어 앞부터 에스컬레이터까지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이 길어진 만큼 한 번에 지하철을 타지 못해서 사람들의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9호선이 일반과 급행열차 두 종류가 있는데, 국회의사당에만 정차하는 일반열차의 경우 오는 지하철마다 이미 만석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밀면서 억지로라도 몸을 ‘구겨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한 곳에서는 마음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한 시민이 긴 줄과 오는 지하철마다 사람들이 빼곡히 차 있어서 선뜻 지하철을 탈 염두를 내지 못하고 있자, 함께 줄을 서고 있던 한 시민이 휠체어를 탄 분이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나섰다.

다음 지하철이 도착하자 시민은 휠체어가 탈 수 있도록 지하철 내 공간을 확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하철에 이미 만석이라 휠체어의 진입이 불가능했는데, 시민의 요청에 지하철에 타고 있던 시민들이 하나둘 지하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자 전동휠체어가 지하철로 진입했고, 지하철에서 내렸던 사람들 중 일부만 다시 지하철에 탄 뒤 지하철이 출발했다.

국회의사당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본의 아니게 노량진역에서 하차하게 된 시민은 “지금 이 시기에 휠체어를 이용해서 지하철을 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지하철 안이 너무 복잡하다”면서, “그래도 이렇게 시민들이 나서서 장애인도 함께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하니까 뭔가 마음이 뿌듯해서 좋았다”고 했다.

이어 “추운 날씨에 집회에 참석하느라 고생한 시민들을 위해 김치찌개나 커피 등을 선결제하며 훈훈한 모습을 보여준 시민들도 많다”면서, “어려운 시기에 우리 시민들이 모두 함께 힘내서 이 시국을 잘 이겨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국회의사당역으로 갔던 시민은 “평소 출퇴근길에는 얼른 지하철 타려고 양보받기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양보를 받으니까 괜히 감동했다”면서 “지금이 어려운 시기지만, 그래도 어디에선가 이렇게 마음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시민들이 있어 힘이 난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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