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함께 여행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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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열기구 ©조미영
▲카파도키아 열기구 ©조미영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오래전부터 모녀 여행을 계획한 딸과 7박 9일간 튀르키예(터키)를 다녀왔다. 빡빡한 일정의 패키지여행이라 살짝 겁이 났지만 행복한 기다림부터 여행의 시작이었다.

집 앞에 인천공항 가는 버스가 있어 새벽 4시에 무거운 트렁크를 끌며 현관을 나설 때는 오랜 시간 집을 비운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공항버스가 도착했고 기사가 내렸다.

“지금 좌석이 두 자리뿐인데 예약하신 분?”

어린 여성이 손을 들고는 바로 차에 올랐다. 어느 분이 더 빨리 오셨냐는 말에 어차피 우린 둘이라 탈 수가 없으니 늦게 온 청년에게 남은 한자리가 돌아갔다. 이른 시각인데 국외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음 차는 아예 도착 정보가 뜨지 않아 시내버스를 타고 수서로 이동했다. 저층 버스가 아니라 트렁크를 버스의 높은 계단으로 올리며 교통 약자를 떠올렸다. 역시 내가 경험해 봐야 타인의 불편을 알게 된다. 10여 분 지나 공항버스를 탈 수 있어 다행. 7시까지 집합 장소에 모여 인원 체크하고 단체 여행의 주의 사항을 들었다. 나 하나 때문에 30명의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인솔자는 거듭 강조했다. 누가 나와 함께 여행할 사람들인지 둘러보면서 사람 좋아하는 나는 들뜬 마음을 감추느라 입술을 앙다물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 공항까지 12시간의 비행은 편안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남편이 비즈니스석을 해 준 덕분이었다. 넓은 좌석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이라 비행기의 적절한 흔들림이 잠자기에 딱 알맞았다. 영화 보다 자고 깨면 기내식이 들어왔다. 처음 먹는 음식들이 보기에도 예뻤고 맛도 좋았다. 돈의 위력에 새삼 놀랐다. 두 배 가까운 비용 생각은 접고 내가 누리는 평온함을 즐겼다. 명품 로고가 그려진 파우치에 안대, 수면양말, 귀마개, 칫솔, 치약, 립밤 등이 들어있는 어메니티는 고급진 음식보다 더 나를 놀라게 했다. 내겐 모든 게 신기했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우릴 기다리던 관광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우리나라보다 늦은 시차 6시간은 이미 밤이었을 시간이 초저녁의 해 질 무렵이었다.

석식 괴프테(터키식 떡갈비)를 먹으며 가까이 앉은 일행들과 담소를 나눴다. 대구에서 온 엄마와 아들이 참 보기 좋았다. 말을 조분 조분 잘 해서 사교적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았던 사실, 지방에서 혼자 온 여성은 질색이란 말에 놀랐다. 너무 말이 많고 목소리가 커서 함께 있으면 기가 빨린다며 그녀를 피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작년에 남편이 폐암으로 사망하여 혼자 여행 다니는 게 외롭고 딸은 직장 때문에 함께 못 한다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이번 여행은 죄다 가족 단위라서 자신이 낄 틈이 없다고 서운해했다. 그러면서 평소 다녔던 여행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태리가 어쩌고 미국이 저쩌고 하며 터키는 볼 것 없다는 말과 음식이 맛없다고 계속 투덜댔다. 맛나게 잘 먹는 사람 옆에 두고 음식 타박하는 건 아니지 싶었다. 내게 ‘원형 탈모증이냐’고 물어서 그냥 머리숱이 없는 거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는데 딸은 되게 기분 나빠했다. 사람이 기본 예의가 없다며 어쩜 저리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냐며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도 사진 부탁하는 그녀에게 딸은 상체를 뒤로 젖혀가며 잘 찍어주었다. 그랬더니 자꾸 더 ‘엥겨’ 붙어서 나중에는 딸도 그녀를 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로움을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며 함께 하던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남은 자에겐 엄청난 고통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여행이 끝나자마자 단체 대화방에서 제일 먼저 퇴장했고 우리 모녀가 좋게 본 인솔자에 대한 악평을 홈피에 올렸다. 최악이라며 쓴 후기에 인솔자의 표정이 그려져 안타까웠다. 최선을 다하는 인솔자를 우리 모녀는 칭찬을 많이 했는데 극과 극의 느낌이었나 보다.

흑해 연안 도시 삼순에서는 비바람을 만났다. 그마저 나쁘지 않았다. 검은 바다로 생각한 흑해는 회색빛 서해보다 조금 진해 보였다. 백사장에서 파도와 장난치는 상상을 했는데 그러진 못했다.

딸 둘이 준비해서 오게 됐다는 60대 부부는 단양에서 복분자 농사를 짓는단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남편이 퇴직 후 귀향하여 소규모 농사짓고 사는데 남편은 좋다는 반면 부인은 너무 힘들다는 말에 그 집의 중심이 부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는 남편을 알뜰살뜰 챙기는 걸 보며 남편에게 함부로 하는 나를 반성했다. 생기발랄한 두 딸은 두 번이나 물건을 호텔에 두고 왔다. 한번은 유턴해서 가져왔고 한번은 너무 멀리 와서 알았기에 택시로 가져오게 했다. 거금을 날렸다면서도 환하게 웃는 가족들을 보니 어지간한 일은 저렇게 넘기니 늘 웃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나흘째 치즈와 올리브로 장식한 음식만 보다가 한식으로 저녁을 먹은 우리 일행은 김치와 육개장, 낙지볶음에 환호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맛은 없었다. 요리사도 현지인이었고 재료와 양념이 다르니 우리 고유의 맛을 낼 순 없었나 보다. 젊은 부부, 모자, 모녀 두 팀이 원형 식탁에 합석하여 식사를 했다. 작은 몸집에 귀여운 얼굴, 노란색으로 허리까지 긴 머리의 학생은 예사롭지 않은 외모에 자꾸 시선이 멈추곤 했는데 유난히 빛나던 머릿결의 비밀을 알았다. 고2 학생인데 공부보다 미용에 더 관심이 많아 그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단다. 인형 같던 그 긴 머리는 붙인 거란 말에 놀랐다. 원형탈모냐는 오해까지 받은 나와 달리 가만 내버려둬도 예쁜 머리를 더 예뻐 보이려고 인모를 붙이기까지 하다니 부지런해야 가능할 것 같았다. 이 모녀도 딸 점퍼를 호텔에 두고 오는 바람에 택시비를 5만 원 지불했다면서도 그 옷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며 웃었다. 순간의 부주의가 금전적 손해로 이어져도 아까워하기보다 다들 여유로워 보였던 건 내 기분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열기구 타는 곳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 일몰 보기에 가장 좋다는 로즈밸리에서 50대쯤 보이는 부부의 다정함은 극에 달했다.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살갑게 챙기는지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재혼인가 생각했다. 적어도 20년 이상 함께한 사람들로 보이는데 사진 찍을 때마다 남편은 ‘아, 이쁘다…’를 연발했고 아내는 흐뭇한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저분들은 참 다정해요, 재혼인가?” 혼잣말 비슷하게 한 말에 혼자 온 여성이 바로 반응했다. “난 불륜으로 보이는데? 부부가 저러기 쉽지 않아요. 필시 불륜일 거여.” 화들짝 놀란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기 생각은 그렇다며 확신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팔랑귀인 나도 그들을 볼 때마다 자꾸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의 사생활에 과도한 관심은 인권 침해라며 이 좋은 곳에 와서 왜 사람만 보냐고 딸이 나무랐다. 그래도 그들이 부부임을 알고 나서야 신경이 끊긴 나는 참 주책바가지다.

이스탄불에서 삼순, 아마시아, 카파도키아, 콘야, 파묵칼레, 에페소, 이즈미르를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와서 인천 공항까지 9일간의 여행.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도 신비로웠지만 유적지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은 감동이었다. 허름한 지프를 타고 용암층 바위와 독특한 지형을 돌아보는 사파리 투어, 300년을 살았다는 지하 도시 데린구유, 영화로만 보던 에페소의 원형 대극장, 파묵칼레의 순백색 석회붕 등 어느 곳 하나 신비롭지 않은 곳이 없던 터키였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어려운 지형지물의 명칭은 머리로 기억하고 아름다운 자연은 눈에 담았다. 함께한 여행객들의 모습은 마음에 담았던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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