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청각장애인 조사한다면서 계속 전화로 연락 시도
- 의사소통과 통역 방법 묻지도 않고 조사원 ‘혼자’ 온다고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최근에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아래 개발원)에서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인력에 대한 조사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청각장애 당사자로서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조사를 하고 이를 데이터화하여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굉장히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태조사와 지원인력에 대한 조사 두 건 모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다고 연락했던 사람은 처음부터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개인 번호로 걸려온 전화였는데, 마침 활동지원사가 옆에 있었기에 대신 전화를 받아달라고 했다. 개발원에서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려 하는데 참여 의사를 묻는 내용이었고, 활동지원사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다.
금방 오길 기다렸던 문자는 그날 오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서야 문자가 왔다. 기자 입장에서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다면서 다짜고짜 전화를 한 것도 언짢았지만, 전화 후 바로 문자를 하지 않은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문자를 보낸 이는 “장애인개발원입니다”라고 할 뿐, 본인이 어느 부서 소속인지는 고사하고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그 뒤로 ‘장애인개발원’이라는 그와 문자를 주고받는 과정은 정말이지 개발원의 직원채용 절차를 거친 직원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상식 이하의 태도를 보였다. 보내는 문자는 오타가 종종 눈에 띄었으며, 그보다 정말 불쾌했던 건 문자를 보내놓고 기자가 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전화를 걸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받을 때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게 지금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는 건지, 제대로 알고는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조사를 진행하는 날 얼굴을 보며 말하고 싶어서 참았다.
본인도 첫 번째 전화를 건 뒤 바로 문자를 보내지 않았으면서 문자를 보내놓고 바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전화를 거는 태도가 상당히 무례하게 다가왔다. 시청각장애인이 청각장애가 있어서 전화통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조사원으로서 조사에 참여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건 조사를 하기로 한 날이 다가오면서 그와 다시 연락을 했을 때 일어났다. 조사하는 날 몇 명이 오는지 문의했는데, ‘혼자’ 온다는 것이었다.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조사를 한다면서 어떻게 의사소통하는지, 통역은 필요하지 않은지에 대해 전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혼자 온다니? 혼자 와서 어떻게 조사를 하겠다는 건가?
더구나 개발원은 2017년에도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덕분에 시청각장애에 대해서 아주 모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몰지각한 이해를 하는 사람이 조사하는 자료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싶어 2017년 당시 책임연구원이었던 박사님께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사님이 알아본 바로는 해당 조사원은 개발원 직원이 아닌 조사업체의 조사원이었다. 이번 실태조사를 하는 책임자인 박사에게 조사업체에 문제제기를 하라고 했단다. 아무튼 기자도 그를 직접 만나면 어떻게 조사를 하려는지 궁금했다.
결정적인 건 조사 당일 터졌다. 지난 19일 목요일 오전 11시에 조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문자통역을 받고자 속기사와 함께 약속장소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11시 10분이 되도록 조사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 오시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회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와서 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클레임이 들어온 걸 떠나서 안 오면 안 온다는 상황을 알려줘야 되는 게 기본 예의 아닌가? 기자뿐만 아니라 속기사까지 시간을 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자세로 조사를 하네 마네 하는 건지 정녕 이해되지 않았다.
시청각장애인의 지원인력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는 곳도 개발원인지 조사업체인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웹발신’ 문자로 조사참여 희망여부를 묻는 문자가 왔다. 희망한다고 문자를 보내니까 ‘역시’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받지 않으니까 그제야 문자로 왔는데, 문자가 온 시점은 12웛 17일이다. 이제 연말이라서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1월에 조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 달 안으로 다 진행해야 한단다. 그래서 일정을 잡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든, 개발원이든 시청각장애인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시청각장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조사를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서 당사자로서 썩 내키지 않는다. 개발원에서 조사를 조사기관에 위탁했다면 최소한 시청각장애가 어떤 장애인지, 의사소통과 통역 방법에 대한 안내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조사원은 처음에 조사시간이 30분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기자를 인터뷰하기로 했던 오전 11시 이전인 오전 9시 30분에 다른 시청각장애인 조사도 잡혀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당사자로서, 또 기자로서 경험상 ‘30분’이라는 시간적인 표현을 시청각장애인에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청각장애의 정도가 심하고 의사소통에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유형이 분명히 있다. 미국에서는 시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과 통역의 과정에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느리고 천천히 진행되는 것을 두고 ‘Deaf-Bline time’이라고 할 정도다. 오전 9시 30분에 조사하기로 한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통역에 시간이 걸린다면 기본 30분은 말할 것도 없고 1시간도 넘게 걸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시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오전에 두 건의 조사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예 조사하러 오지 않았지만, 예정대로 9시 30분에 조사를 했더라도 11시라는 지가와의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도 생각한다.
이런 막장 드라마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를 만들어가기에 아직 갈 길이 너무나 험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