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2018년 5월 29일부터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의하여 법정 의무화 교육이 된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가 되기 위해 그해 7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찾았었다.
공단의 1기 강사가 되기 위한 2일간의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당시 나와 함께하던 활동지원사는 1박 2일 교육 일정에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였다. 제시간에 출·퇴근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서 서비스하는 월급제 개념의 활동지원사들에게 필요한 시간대에 시급제로 서비스를 요구하는 이용인은 단언컨대 기피 대상 중 하나이다.
혼자 기차에 몸을 싣고 성남을 향했다. 겨우 하룻밤에 이리 비장할 일인가. 첫날 교육을 받고 돌아와 대전 집에서 자고 이튿날 다시 올라갈까도 했으나, 아침 일찍 기차로 서두른다 해도 지역 장애인 콜택시로 교육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했다. 나는 공단 근처 호텔의 편의 객실을 예약했다.
교육을 앞두고, 서울의 활동지원서비스 중개 기관을 통하여 성남시 호텔에서 함께 묵으며, 야간 서비스를 해 줄 활동지원사를 알아봐야 했다. 혼자서는 휠체어에서 침대로 이동하는 것과, 기본적인 신변 처리(돌봄 받는 몸에 모종의 낙인감을 떠안기는 표현 같음에도 상용 용어라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이지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룻밤 호텔 숙박이 어려웠다.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야간 서비스를 해 줄 활동지원사를 만나게 되었다. 육십 중반이었던 그녀는 중도 장애인인 전 국가대표 체조선수를 보조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고, 나름 터득한 수완으로 힘을 보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밤잠을 쪼개가며, 침상에서 내 체위변경을 지원하고, 야간 활동지원서비스 바우처 결제를 위해 새벽잠을 설쳤다. 그렇게 교육을 위해 호텔에서 1박을 했으나, 정작 다음날 성남시 장애인 콜택시는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녀와 나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뛰었고, 교육장까지 또 뛰었다.
공단 본사 내에 장애인 교육생을 위해 있을 법한 숙박 시설이 없었다. 관리나 운영 면에서 쉽지 않겠지만, 타 지역 장애인이 숙박업소의 편의 객실을 찾는 불편과 부담감을 덜고,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 처에서 온 교육생들과 함께 받은 몇몇 교육을 토대로 각자 교육 안을 만들어 제출하고, 인터뷰를 통과하여 나는 1기 강사가 되었고, 재위촉을 받아 가면서 지금까지 6년 동안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육 때마다 “제 이름은 ‘굳세어라 금순아’ 유금순이고, 6년근 인삼 같은 장애인식개선 교육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면, 대체로 웃음과 함께 박수를 쳐준다. 30년 전 한국방송공사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엔 김금순, 이금순, 박금순 할머니가 대거 등장했었는데, 그 할머니 같은 이름을 가진 나는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랐노라고 너스레를 떨어도 본다. 여자라는 성별과 장애, 금순이라는 이름으로 겪었던 삼중고가 있었노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삼중고를 우려먹고 산다.
1기생 이후 2기부터는 교육일수가 늘어났고, 지금은 근 일주일에 걸쳐 받아야 하는 교육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내겐 운이 따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1박 2일 함께할 활동지원사도 찾기가 힘들었는데, 6박 7일 동안 밤낮 함께해 줄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함께하겠다는 활동지원사가 있었던들 의식의 흐름대로 살았던 당시의 내겐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같은 힘이나 생명력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해마다 우후죽순처럼 양산되는 수많은 강사 가운데 고용공단 등록 교육기관 소속의 일개 강사일 뿐인 나를 발견해 주는 사업체가 있다면 그것이 더 희한한 현실을 견디고 있다.
십여 년 전 나는 대전여성장애인연대에서 인권강사로 몇 년을 활동했었다. 그것을 토대로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강사가 되고자 했으나, 소정의 온라인 교육을 미처 이수하지 못했고, 2박 3일의 특정 교육에 참여하기 어려워서 위촉받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사회에 대한 그때 나의 용기는 딱 1박 2일만큼이었고, 사회는 내게 2박 3일에 도전할 수 없도록 학습된 무력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더군다나 내겐 일정에 따라 유연성 있는 서비스를 해 줄 활동지원사가 없었고 유일한 가족원인 남편이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 때였다. 몇 가지 장애 요소들은 내가 가진 장애를 부각시켰다. 온·오프라인 교육을 수료하고, 준비돼있던 내 동료 두 명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촉 강사로 활동하는 것을 난 부럽게 지켜봤다.
그래도 여장연이라는 단체 소속 장애인권 강사로 장애인 당사자나, 시설 종사자 앞에 섰던 십여 년의 교육 경험을 가지긴 했다. 시설 경험자인 내게 시설 종사자와 인권을 주제로 마주하는 그 한두 시간은 무겁고 경직되기 일쑤였다. 저 너머에 보호와 감시를 넘나드는 카메라가 보이는 듯했고, 그들만의 공간에서 펼쳐질 인권침해도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시설이 그랬듯 당시의 나도 미숙하고 공격적인 교육 강사였던 것 같다.
장애인을 돌보고 있는 그들에게 장애를 옷 입은 강사의 교육이 뭔 대수였겠냐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시간의 흐름 속에 수년 전부터 특수교육원을 통하여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만나고, 중·고등학생과 학교 교직원을 만나고, 활동지원사와 근로지원인 교육을 하고 있다. 서로의 업무를 곁눈질하고, 저울질하는 활동지원사와 근로지원인에게 이용인의 주체적인 자립생활과, 주 업무의 능력을 가진 장애인 근로자에게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한다.
그리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동료상담가와 사례 상담가로 활동했던 경험을 자원 삼아 자립생활을 위한 체험홈의 이용인과 소통한다. 원 가족이나 시설로부터 자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달콤 쌉싸름한 자립생활을 소개하고, 자신감과 책임감을 나누노라면, 불편하고 불안해도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고 싶다고들 한다.
수년 전엔 어느 자립생활센터장의 소개로 군부대의 아들 같은 군인들에게 전동휠체어를 탄 채 꽃가마를 타듯 연단 위에 오른 적이 있다. 편의 시설에 대한 긴 설명을 지운 시간이었다. 현재 몸담은 등록 교육기관 담당자의 매칭으로 규모가 작거나 큰 사업체에서 교육하고 있다. 전화로 사전 확인했어도 막상 도착해서 예기치 않은 2 cm 이상의 단차나 80 cm의 좁은 문과 맞닥뜨릴 때 들어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그 막막함이란 매번 새롭다.
급조한 실외 교육도 해봤고, 사업체의 업무 시간 때문에 현장에서 반 토막 나는 교육 시간에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게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은 시간 같아도 눈 맞춤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한두 사람만 있으면 없던 힘도 생긴다. 김 제조 공장에선 조미김 한 박스를, 바나나맛 우유 공장에선 바나나맛 우유 한 박스를 받았다. 언젠가 타월 공장에 갔을 땐 집에 있는 낡은 타월을 교체하겠구나 기대했는데, 그 타월로 눈물을 훔치고 싶을 만큼 교육 담당자의 태도에 심한 모멸감을 느껴본 적도 있다. 어느 날부턴가 교육에 따른 주 수입보다 내심 부수입을 힐끔거리는 자신이 민망하기도 했다.
5대 법정의무화 교육을 1시간 안에 욱여넣어 10분씩 쪼개서 진액만 뽑아낼 재량 있는 자격증 보유 강사는 대다수 사업체에서 환대 받는 듯하다. 개인정보보호교육, 성희롱예방교육, 산업안전보호교육, 퇴직연금교육 그리고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교육이 그것이고, 하나를 더하자면 직장 내 괴롭힘예방교육이 있다. 이 모든 자격증을 소유하지도 교육생을 자지러지게 웃기거나 감동시킬 큰 기량도 없지만, 내 속도를 조절하면서 성실하게 이런저런 교육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더뎠지만 멈추진 않았다. 장애인이 있어 인식개선 교육이 있는 건지, 인식개선 교육이 있어 장애인이 출현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둘 다 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더 많이 흘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기관의 센터장이나 원장, 대표이거나 국장, 팀장 정도의 직함이 없이는 큰 사업체든 공공기관에서 교육 의뢰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육에 관련한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 들도록 SNS의 블로그 등을 통하여 부단한 활동의 노력을 하라고 보수교육이나 스킬업 교육 강사가 매년 일러주곤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도 집적대 봤으나, 중학교 졸업 후 멈춰버린 일기 쓰기처럼 쉽지 않았다.
얼마 전엔 지체장애인협회장의 추천으로 대전 모 구청의 400명의 공무원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구청장은 관공서 교육 경험이 많은지 물었고,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교육 경험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구청 교육 후 노인장애인과 담당자로부터 장애인위원회의 위원으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어 그러기로 했다.
모든 교육 가운데 유치원생을 만나는 시간이 가장 긴장되고 설렌다. 전동 휠체어와 함께 출현하는 순간 아이들의 이목을 끌고, 구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올라갈 수도 누울 수도 있는 이것이 내 몸이라고 하면, 마치 연예인 만난 눈빛을 발사하는 동심도 만난다.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지금과는 다를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유치원이나 학교의 1~2교시 교육에 맞추려면, 가족원이나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6시 전에 일어나서 씻고, 휠체어 탑승 후 장애인 콜택시를 접수하고 기다릴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등교나 출근, 신장 투석 등을 위한 병원행 등 장애인 콜택시의 우선 이용권을 확보한 회원들이 있어 출·퇴근 시간대에 특장차 이용은 쉽지 않다.
이동과 접근권 확보와 편의시설이 갖춰질 때, 활동지원 인력과 일자리가 있을 때 장애가 지워지고, 사람이 보이게 될 것이다. 함께하는 활동지원사는 교육하는 내 모습이 가장 생기 있고, 반짝반짝 빛난다고 말한다. 기운 없고, 힘들다가도 그 시간만큼은 쉼 없이 재잘거리고, 활기가 있다면서 그런 시간이 내게 에너지원 같다고 말이다.
교육 혹은 강의는 근거 있는 정보와 그에 따른 옳은 해석을 바탕으로 내 경험치와 사례를 잘 엮어보는 시간 같다. 세상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The world will not get better on its own;영국의 역사학자 Eric Hobsbawm)고 한다. 나다운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오늘이다. 내년도 멈추지 않고, 불러주는 곳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부디 지금만큼만 몸이 견뎌주었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2018년 이야기지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장애교육생을 위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점이 아쉽네요. 서비스 연계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원거리 교육생을 위한 시설과 지원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과거완료형의 의미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