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보이지 않는 내가 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은 크고 작은 물건의 위치를 고정적으로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다른 집은 설거지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컵과 접시의 위치가 변하지만 내가 사는 집에서 그런 일은 특별한 변고가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의 배치도 쉽게 바꾸지 않지만, 작은 리모컨도 사용하자마자 정해진 위치에 되돌려 놓는다.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정해진 위치에 되돌려 놓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분명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집에서마저 부딪히고 넘어지고 이런저런 물건을 찾느라 헤맬 수밖에 없다.
나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지인들이 놀러 왔을 때도 그런 이유로 되돌아갈 시간엔 사용한 물건들의 원래 위치를 나에게 확인하곤 한다. 휴대전화 충전 케이블은 책상 맨 위 서랍으로, TV 리모컨은 소파 왼쪽 스툴 의자로, 의자는 식탁으로, 스피커는 협탁으로 각자의 위치를 되찾아간다.
보일러를 틀었다면 온도는 내가 평소 사용하는 24도로 되돌려 놓고, 샴푸와 린스도 순서를 맞추고, 휴지와 쓰레기의 위치도 모두 정해진 위치를 찾아야만 모두 떠난 후에 내 마음은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결혼하자마자 아내에게 부탁한 것도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소금과 설탕의 위치는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어.”
“늘 입는 청바지와 셔츠는 왼쪽에서부터 이런 순서대로 걸려 있으면 좋겠고, 치약과 비누는 세면대 이쪽에 있으면 좋겠어.”
다행히 그런 배려를 어려워하지 않는 성정의 아내는 아주 어렵지 않다면서 내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다.
그렇지만 수십 년을 그런 루틴으로 살아온 나와 다른 아내가 그런 것들을 매번 지키기에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들었다. 요리하다 보면 편의에 따라 그릇의 위치가 바뀔 수도 있는데 그것의 원래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녀에겐 또 하나의 일이 되었다.
아기와 놀아주다 보면 바닥에 장난감들이 이리저리 놓일 수도 있는데 잠시 사용한 물건들을 매번 제자리에 두었다가 또다시 꺼내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리모컨은 멀리서도 원격으로 기기를 제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물건인데 그것마저 때마다 제 위치를 찾아야 하는 것은 꽤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따금씩 놀러 와서 물건 정리해 놓고 가는 친구들과는 그 과제의 무게가 달랐다. 한 번 놀고 나서 정리하는 것이야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건 본인의 삶의 패턴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미안하다는 말을 아내에게서 들었다.
“아 참! 비누를 거기다 두었네.”
“오빠 식탁에 뭐가 많아 잠시만!”
“아! 그걸 내가 아직 바닥에 두었네. 미안해!”
혼자 살 때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 불편함이 생기면서 때때로 속상했다. ‘제자리에 물건 하나 놓아두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하는 푸념도 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녀가 일부러 날 불편하게 할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그녀가 혼자 살았거나 나 아닌 다른 이와 결혼했다면 그런 부담은 느끼지 않았어도 되는 일이었다. 나 혼자 사는 집이라 나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추구했을 뿐 나와 같이 사는 모든 가족에게 그것이 보편적으로 편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샴푸와 린스의 위치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면 좀 더 세심하게 살피면서 혼동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소금과 설탕도 늘 같은 자리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집이지만 굳이 빠르게 걷지 않으면 바닥에 물건이 있더라도 조심히 비켜 갈 수 있었다. 아내도 최대한 나를 배려하려 노력하고 있었으므로 그 모든 상황이 매번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기에 남편이지만 아빠이지만 일방적으로 배려 받을 권리는 없었다. 나도 물건이 조금 다른 곳에 놓여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족에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배려이기도 했다.
“리모컨이 꼭 스툴 의자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 식탁에 있을 수도 있고 싱크대에 있을 수도 있지.”
크게 웃으면서 아내에게 너스레를 떤 이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장애 있는 난 보통의 상황에서 아내에게 많은 배려를 받고 산다. 느린 나를 기다려 주기도 하고 나 대신 글을 읽거나 운전을 하기도 한다. 다른 상황에 있는 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다른 역할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당연해지는 순간 함께 사는 것은 부담이 되고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
내 불편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도록 물건을 정리하는 아내가 있다면 때로는 리모컨이 냉장고에 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작은 배려도 있어야 한다. 나로 인해 화면 해설 영화를 같이 보는 아내에게 때로는 소리 없는 마임을 같이 봐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는 함께 사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제와 다른 위치에 놓인 휴대전화 충전 케이블을 보며 오늘은 이렇게 말해야겠다.
“움직이니까 케이블이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으면 이게 콘센트지 케이블이겠어. 하하”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