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어머니의 돌봄과 내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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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의 모습 ©언스플래시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의 모습 ©언스플래시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조카가 외할머니에게 정성으로 안마를 해주며 육아와 간병이란 돌봄의 연장으로 누적된 피로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건성으로 몇 번 주무르고 마는 게 아니라, 자못 진지하게 온 힘을 다한다. 할머니, 어디를 해줄까? 더 할까 아니면 다른 데 해줘? 구체적으로 질문을 이어가며 요청에 맞게 척척 해소해 주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이제 칠순을 앞둔 어머니는 어깨와 팔부터 허리와 무릎까지 안 아프신 곳이 없다. 연세에 비해 퇴행을 빨리 겪는 이유는 아프고 무력한 몸을 가진 아들, 바로 나를 사십 년 넘도록 돌보며 몸과 마음이 셀 수 없이 균열을 일으키고 지치셨기 때문이다. 조카는 나와 다르게 건강하고 활기차다. 투정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고, 능동적으로 지내면서 쑥쑥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육아에는 많은 관심과 사랑, 손길이 필요하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어머니라면 입히고 재우며 놀아주는 모든 도움을 능히 해내실 테지만, 문제는 난치병 환자이자 중증 장애인인 내게 에너지를 대부분 쏟기에 방전되실 때가 많다. 적극적 돌봄으로 살아가는 아들로서 감사함과 죄책감을 오가는 양가감정에 시달리는데, 어릴 적부터 동생의 사랑을 빼앗고 외로움을 안겼던 불행을 조카에게 물려준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파진다.

내게 생긴 질병과 장애가 누구의 탓도 아닌 걸 알고 있지만, 건강과 비장애 중심으로 설계된 불평등한 국가와 사회에선 그 고통과 불편을 개인의 잘못이자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만다. 일생을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 동생의 양보와 이해를 전제로 생의 자리와 삶의 자원을 나눠 받았다. 지금껏 생존하면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안정된 일상을 누리는 건 그들의 포기하지 않은 살가운 돌봄 덕분이다.

어린이집과 태권도장을 다니는 조카는 집에서 틈틈이 한글과 산수 공부에 집중한다. 아직은 어려서 곁에서 봐주는데, 내가 저만큼 작을 때 젊은 엄마에게 엄하게 혼나며 배우던 날들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너무 무섭게 한다고 한숨 쉬는 아이에게, 삼촌을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서 지금은 글을 정말 잘 쓰는 작가로 큰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옆에서 전자책으로 독서하던 나는 작은 웃음이 났다. 그 시절엔 강압적인 엄마가 너무나도 버거웠는데, 조카를 대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니깐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사랑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비장애 학생들과 친밀히 어울리며 우정을 쌓길 바라셨기에 속상함을 애써 숨기고 더 엄격하게 공부와 규율을 익히도록 눈물 쏙 빠지게 혼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프고 무력한 몸을 가졌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먼저 감각하면서 이기심과 게으름에 빠지지 않았다. 가족과 주변 누구에게도 함부로 고집부리거나 무조건 양보하지 않고, 직감과 대화를 통해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다. 엄마의 기대만큼 우등생은 되지 못해도 유연한 정신과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소통할 줄 아는 성숙한 존재가 되었다.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에는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일”이란 문장이 나온다. 그렇다면 시부모님을 봉양했고, 아픈 남편을 내조하며 장애인 아들을 간병하고, 이제는 손주까지 보살피는 엄마는 대체 몇 회차 삶을 더 체험하는 걸까.

그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하셨고, 앞으로도 그럴 분이다. 고생과 슬픔을 무겁게 안겨드려 송구하고, 무한한 믿음과 사랑에 눈물이 흐른다. 그럼에도 나보다 먼저 그리고 나란히 함께 더 살아온 어머니의 마음결이 빛이자 온기임을 고백한다. 여전히 내 하루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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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말 잘 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