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주사위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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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진 주사위 ⓒunsplash
▲던져진 주사위 ⓒunsplash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정육면체 주사위의 면의 개수는 6개이다. 각각의 면에는 1부터 6까지의 자연수가 각각 하나씩 적혀 있고 각 면은 모두 모양과 크기가 같으므로 주사위를 한 번 던졌을 때 그중 하나의 숫자가 나올 확률은 6분의 1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학적 확률은 그렇다.

산술적으로는 6번 던졌을 때 1, 2, 3, 4, 5, 6이 한 번씩 나와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결과는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은 주사위 몇 번 던져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 수 있다. 6이 나오기를 바라고 던지면 5가 나오고 1이 나오기를 바라고 던지면 3이 나오는 보드게임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내가 원하는 숫자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주사위까지 가지 않고 홀짝 게임만 생각해 봐도 내 승률은 수학적 확률인 50%를 훨씬 밑돈다. 누군가는 기분 탓이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기억의 착각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건대 확률은 나의 편이 아닌 것 같다.

교과서에서는 그 원인을 시행의 수가 적기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6번 던졌을 때 6은 한 번도 나오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6번 모두 나올 수 있지만 600번 던지면 나오는 횟수는 100번에 가까워지고 6000번 60000번 6억 번으로 그 시행의 수를 늘리면 반드시 사건의 확률은 6분의 1로 수렴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계적 확률이라고 부르고 내가 해석하건대 그건 다른 의미로 현실이다.

우리가 살면서 주사위를 몇억 번씩 던질 일은 거의 없겠지만 무작위 숫자를 출력하는 컴퓨터의 난수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면 교과서의 기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적 확률의 유의미성을 증명하는 ‘큰 수의 법칙’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잘 생각해 보면 이따금씩 보드게임에서 내가 원하는 숫자가 나온 적은 분명히 있었다. 행사에 참가했을 때 자주 경험하게 되는 행운권 추첨도 나의 번호만 교묘하게 비켜가는 것 같았지만 나이가 들고 그 경험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내가 뽑은 숫자가 당첨번호로 불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시행을 늘려가면서 수학적 확률이 통계적 확률과 동기화되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달력을 세어보니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지 어느새 16000일 정도가 되었다. 24시간의 삶을 한 번의 시행이라고 여기면 16000번의 시행을 반복한 것이다. 아팠던 날도 있고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웠던 날도 있고 기쁜 날도 있고 무너질 듯 괴로웠던 날도 있었다. 이래도 되나 느낄 만큼 과하게 행복한 날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생각할 만큼 우울했던 적도 있었다. 어릴 적엔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라고 자책하고 원망한 적도 많았는데 시행의 숫자가 조금 커진 요즘은 원치 않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전보다는 초연해지고 있다.

삶은 노력하는 자의 편이라는 말도 있지만 난 사람들의 삶이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만큼은 누구보다 관대한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리가 없다. 다만 어떤 이에게는 운 좋게 기회가 주어지고 결과도 주어지고 또 어떤 이에겐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삶은 매우 많은 면이 있는 주사위를 매일 던지는 것과 같다. 오늘 던진 주사위의 면은 성공을 향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내일 던질 주사위의 면은 가정이 화목해지는 면을 향했으면 좋겠지만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정육면체 주사위 면, 심지어는 동전의 앞뒷면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 삶의 주사위가 뜻대로 원하는 대로 그 결과를 바로바로 내어놓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교과서는 분명히 시행을 늘리면 그 확률은 통계적 확률을 따른다고 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난수표 제조기로도 확인했다.

종교 있는 나의 입장에서 조물주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와 권리를 준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똑같은 주사위를 매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원하는 숫자와 마주하지 못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시행을 반복하면 바라는 숫자가 연속으로 나올 날도 분명히 있다.

종교가 없는 이라면 평등한 주사위가 주어졌다는 전제부터 의심할 수 있겠으나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구들과 가족들의 삶을 보더라도 내 삶의 주사위의 통계적 확률은 대체로 평등하다.

누군가를 격하게 부러워한 날도 있었지만 그 또한 내게 그런 감정을 느낀 날이 있다. 위로받은 날이 있는가 하면 위로한 날도 있다. 아직은 그 시행의 숫자가 충분히 크지 않은 어린 나이라 내 주장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하는 이도 있겠으나 나보다 더 많이 인생을 산 선배들의 주사위나 내 곁에 있는 많은 지인의 시행을 합쳐본 값이라는 면에서 그 타당도는 꽤 믿을만하다.

다만 그 결과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의지적으로 주사위를 다시 던져야 한다. 좋은 결과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주사위 한 번 던지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다.

보드게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어제 졌지만 오늘 또다시 했기 때문이고 주사위 눈이 6을 표시했던 것은 다른 숫자가 나왔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던졌기 때문이다. 계속 던지다 보면 원하는 숫자는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남들만큼은 나온다. 16000번 정도 던져보니 그렇다.

많은 사람이 통계적 확률을 믿고 매일매일 착실히 주사위를 던졌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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