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새 복지카드 이용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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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역에서 남성역까지 표시된 지하철 노선도
등촌역에서 남성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시청각장애인은 여러 가지 확인할 부분이 많다. ©네이버 캡처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지인이 추천해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게 되었는데, 미용실이 남성역 근처에 있다고 했다. 남성역은 서울에 살면서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경로로 가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는데, 우선 지하철역 노선을 살펴봤다. 남성역은 7호선인데, 7호선 역시 여태껏 타본 적이 없는 노선이었다.

등촌역에서 9호선을 탑승한 뒤 샛강역에서 하차하고 신림선을 타고 보라매역까지 간 다음, 7호선으로 갈아타고 남성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환승을 두 번 해야 하지만, 노선표를 보면 샛강역에서는 신림역이 ‘출발하는’ 역이라서 기자가 방향을 헷갈려할 필요가 없이 그냥 타면 되니까, 보라매역에서 7호선 타는 곳만 잘 구분하면 될 것 같았다.

출발하기 직전 정말 다행히 한달 전 분실하여 재발급 신청했던 복지카드가 도착했다. 지하철보다는 나비콜이나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남성역까지 이동하는 게 훨씬 편하지만, 나비콜과 장애인콜택시 모두 복지카드가 없으면 이용이 어렵다. 그랬던 복지카드가 마침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편하게 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왕 지하철 노선도 알아봤고 7호선을 한번도 타본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타볼 겸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등촌역에서 새로 발급받은 반짝반짝 빛나는 복지카드를 개찰구에 갖다댔다. 복지카드가 없어서 한달 넘게 교통카드를 이용할 때마다 나오던 파란색 불이 복지카드로 찍으니 노란색인지 연두색 비슷한, 늘 보던 익숙한 불빛이 나타났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장애인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탔다.

샛강역에서 하차한 뒤, 신림선을 타러 이동했다. 첼로 레슨하는 곳이 샛강역 근처라서 신림선 타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자주 봤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신림선을 탈 수 있었다. 신림선은 9호선과 달리 양쪽 스크린도어 위에 다음 역이 무슨 역인지 글자가 적혀 있는지 확인이 어려웠고, 좌석 중앙 윗부분에 글자가 나오는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글자라서 샛강역부터 보라매역까지의 수를 하나씩 생각하며 이동했다.

보라매역에서는 예상대로 7호선 타는 곳을 바로 찾지 못해서 조금 헤매야 했다. 일단 같이 내린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이동해서 개찰구까지 왔다. ‘7호선 갈아타는 곳’이라고 적힌 문구는 발견했는데, 그 바로 옆에 있는 문구와 색깔과 다르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즉 7호선 갈아타는 곳과 몇 번 출구를 나타내는 문구가 서로 다른 바탕의 색깔 디자인에 다른 색깔 글자로 디자인되어 있었고, 그 옆에 화살표 방향이 있어서 정확히 어디를 안내하는 건지 이해하기 애매했다.

화살표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안내판 아래에서 엉거주춤 서 있다가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이 계단으로 내려가는 걸 보고 7호선을 타려는 줄 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 내려갔다. 하지만 그곳은 7호선이 아니라 기자가 타고 왔던 신림선을 타러 가는 곳이었다. 민망해진 기분으로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왔고, 7호선 갈아타는 곳이 적힌 안내를 무시하고, 그 옆에 적힌 몇 번 출구를 안내한 표시의 화살표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화살표 방향을 통해 내려간 곳이 7호선 타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려간 곳의 양쪽으로 지하철이 모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운 기둥으로 가서 보라매역 기준으로 신대방사거리역으로 화살표가 적힌 쪽으로 가서 7호선을 탔다. 평소 검도를 배우러 갈 때 타는 5호선과 7호선이 같은 구조라는 것을 이날 처음 알았다. 스크린도어 위에 다음 역이 무슨 역인지 나오는 문구가 5호선의 그것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5호선을 탄 느낌이었기 때문에 ‘남성’이라는 글자도 금방 알아보고 편안하게 내릴 수 있었다.

남성역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오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아찔한 위험이 있었다.

우선 샛강역에서 신림선을 타기 위해 내려가는 계단은 정말 위험했다. 보통 많은 계단은 중간 부분에 아무 표시가 없더라도 계단의 시작 부분과 끝나는 부분에 어떤 표시를 해둔다. 그런데 샛강역 신림선을 타는 곳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런 표시가 있어서 계단을 다 내려온 줄 알았는데 한 칸 더 내려가야 해서 넘어질 뻔 했다. 그 계단뿐만 아니라 내려가는 내내 그런 구조여서 온 신경을 집중하며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또 보라매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는 곳을 안내하는 표지판 바로 옆에 내려가는 계단이 위치해 있어서 조금만 위치를 잘못 잡았다면 계단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특히 해당 계단은 계단이 시작하는 부분에 대해 어떠한 표시도 해두지 않아서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보기에는 ‘계단’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어려운 디자인이다.

머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야말로 백만 년 만에 나비콜을 이용했다. 만약 출발 직전에 복지카드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집으로 돌아올 때는 카카오택시를 이용할 계획이었는데, 복지카드가 좋은 타이밍에 도착해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나비콜 기사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오랜만의 나비콜 이용이라 그런지 나비콜 앱에 현재 가고 있는 경로도 정확히 나오지 않아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무사히 집에 도착하긴 했지만, 이렇게 시청각장애인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불편은 활자로 다 적어내기 쉽지 않을 만큼 크다. 이런 부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복지카드 발급은 몇 주 더 지연되는 바람에 불편함과 어려움에 더해 비용도 투자하며 이동을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무사히 집에 돌아오니 새삼 반짝이는 새 복지카드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느낀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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