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법, 행정입법 부작위에 따른 국가배상책임 인정
- 모두의 1층, 장애인등편의법·시행령과 건축법 개정, UD법 제정 함께 추진해야
- 접근권 보장, 바닥면적·준공연도 폐지와 국가 책임 없이는 요원
[더인디고] 편의점 등 소규모 이용시설의 접근권을 제한한 것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정부와 국회 차원의 실질적인 이행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주심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19일, 장애인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소송에서 원고들의 국가배상청구 부분을 파기자판하고 이들에게 각 1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앞서 정부는 1998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 편의법) 시행령’을 통해 편의점 등 소매점의 편의시설 의무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바닥면적 기준 300 ㎡ 이상 시설)하다가 2022년에서야 50 ㎡ 이상으로 기준을 강화했다.
이에 장애인과 유아차를 사용하는 어머니 등 원고 3명은 2018년 4월, ‘1998년부터 장애인등편의법이 시행됐음에도 시행령의 면적기준(300 ㎡ 이상)에 따라 소규모 이용시설의 95%가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이자 ‘헌법’상 행복추구권 등이 침해됐다며 국가 등을 상대로 차별과 손해배상을 함께 청구했다.
구체적으로 소송의 쟁점은 20여 년 동안 장애인등 편의법 시행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입법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소위 ▲‘행정입법 부작위’로 볼 수 있는지, 그렇다면 ▲이를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였다.
관련해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끌어낸 법무법인 디엘지와 공익법단체 두루,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단체를 비롯해 김예지·최보윤 국민의힘 의원,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1월 2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모두의 1층을 위한 향후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판결의 의미를 살피고, 장애인의 실질적인 ‘1층 있는 삶’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과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 대법원, 접근권의 기본권 지위 부여와 국가책임 물었지만, 한계도 여전
참여 단체들은 판결에 대해, 우선 ▲‘장애인등 편의법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음으로써, 편의시설 접근권을 보장하지 못한, 즉 ‘부작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장애인의 접근권도 헌법상 기본권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는 점, ▲‘UN 장애인권리위원회(UN 위원회)의 권고를, 피고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의 위법성 인식의 근거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각각 행정법, 헌법, 국제법 측면 등에서 평가했다. 또한 ▲40년 전 고 김순석 열사의 외로운 외침에서 시작된 장애인의 접근권 및 이동권 투쟁의 결과가, 겨우 한 발짝 내디딘 결과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도 부여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용혁 디엘지 변호사는 “시설과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권 등 모든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만큼, 장애인의 접근권을 수호할 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즉 접근권을 침해하는 입법과 행정 등에 대해선 위헌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전제한 뒤, “이는 행정청이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법령, 제도, 정책 등을 추진할지 감시할 수 있게 됐다”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재량을 일탈한 위법한 행정이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부 대법관의 보충의견에 따라 이 사건 조항(편의시설 설치대상 등) 등을 개정함으로써 기존에 설치된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해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상원 두루 변호사는 “사법부가 국가배상에 있어서 피해받은 국민의 구제보다는 국가의 재정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국가배상법에 의한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제4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는 인정하지 않은 점, ▲노인, 임산부 등을 포함한 편의시설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애인등 편의법’의 목적과 달리, 원고 중 영유아를 양육하는 원고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은, 반사적 이익이라고 판결한 점은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변호사는 “하지만 기존 소규모 이용시설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바닥면적 등 규모에 따라 제한하는 장애인등 편의법 시행령과 법 자체 개정을 같이 검토하되, 법 시행(1998년 4월) 이전 건물, 즉 소급입법 금지 등 시점의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실태조사와 연구, 실익이 높지 않은 소액 배상금(10만원)에 따른 후속 소송 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시설주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 반영을 비롯해, 국가 및 지자체의 다양한 금융과 기술, 나아가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편의시설 접근권 보장 방안? 법조계·학계·장애계, 쟁점과 해법 쏟아내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여한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4년 UN 위원회의 권고와 대법원 판결에 비춰볼 때, ‘바닥면적’ 기준 자체를 없애야 온전한 접근권 보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단언한 뒤, “마찬가지로 법 시행 이전이라도 현재와 미래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건축물인 만큼 ‘준공연도’ 기준 등 소급 적용 금지만 내세운다면, 접근권은 100년이 지나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신·구축물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 종류 등을 다르게 적용하거나, 인적서비스 등 대안 등을 마련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세를 포함해 제정 당시 마련한 ‘편의시설설치촉진기금(2003년 개정 당시 폐지)’ 등을 부활시킴으로써, 이행강제금이나 편의시설 부담금을 충당할 필요가 있다”며 “나아가 모두의 1층이 되기 위해선 현행 지체, 시각, 청각장애인 중심에 더해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접근성 보장까지 포함한 법률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단순 면적 제한 개정과 모두의 1층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현재 6층 이하 건물의 경우 계단만 설치해도 편의시설로 인정하는 ‘건축법(제64조 제1항)’과 이에 따라 편의시설의 선택적 설치(장애인용 승강기, 계단, 휠체어리프트 또는 경사로 중 1개만 설치)를 용인하는 현행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별표2)’ 개정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며 “나아가 현행 공공시설 중심의 BF 인증을 민간으로 확산하는 방안과 22대 국회에서도 발의(최보윤 의원)된 ‘유니버설디자인기본법안’ 등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해, 판결 이후 후속 과제의 범위를 한 단계 높였다.
안은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과장도 “편의시설 설치 등 접근권 강화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임차인이나 임대인에게 ‘과도한 부담’이 쟁점이 되는 만큼, 국가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차별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편의시설 설치 책임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서비스 제공자인 편의점주 혹은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른 시설주인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안 개정 시 관련 대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의 “항상 고개하나 넘으면 평지가 있음을 믿고 나아가지만, 막상 고개를 하나 넘었다고 싶으면 또 하나의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는 인사말처럼, 후속 조치 역시 ‘고개’를 넘는 과정만큼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바닥면적 기준 폐지는 물론이고, 장애인등편의법의 적용 이전 준공건물까지 접근권 대상으로 할 것인지, 하더라도 이에 따른 민간과 국가의 책임이나 의무를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지 등의 과제를 안겨줬다. 또한 1층이 있는 삶은 경사로 설치만 아닌, 장애인 화장실이나 층간 이동을 위한 경사로 또는 승강기 설치 의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편의시설 접근권을 더욱 구체화하는 논의를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더인디고 THE INDIGO]
▶ 관련 기사
대법원 “접근권은 헌법상 기본권… 24년간 방치한 국가, 배상해야”
국회에선 ‘故 김순석 씨 호소’… 대법원은 ‘접근권 공개변론’
편의점 등에 장애인편의시설 설치해야… 법원 “바닥 면적 기준 시행령, 차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