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접근성②] 관객이 평가한 작품 속 접근성 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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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스〉 공연의 한 장면. 어두운 무대 위에 한쪽은 빨간색, 다른 한쪽은 파란색으로 칠해진 사다리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사다리 위에서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부는 머리에 안테나처럼 보이는 헬멧을, 다른 일부는 특정 인물의 얼굴이 인쇄된 마스크를 쓰고 있다.
▲〈걸리버스〉 극단 성북동비둘기 | 2024.10.3.~2024.10.5.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편집자 주]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스파프(SPAF))는 재작년부터 축제의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지난해도 창작진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접근성을 시도하고, 장애·비장애 관객에게 안전한 환경에서 축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축제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공유했다. 축제 접근성을 실천한 과정을 다양한 관점으로 5회에 걸쳐 연재한다.

〈걸리버스〉 공연의 한 장면. 파란 조명 아래 원숭이탈을 머리에 쓰고 양옆으로 팔을 뻗은 배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배우들이 사선으로 늘어서 있다. 왼쪽은 튀튀를 입은 배우들이 한 팔을 위로 올리고, 오른쪽에는 남자 배우들이 허리를 숙이고 두 팔을 사선으로 뻗었다.
▲〈걸리버스〉 극단 성북동비둘기 | 2024.10.3.~2024.10.5.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숨 가쁘게 성공을 위해 점차 기계화되고 감정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초상화”
(김은설 미술작가 |청각장애)

공연장 양쪽 끝에 한글 자막 모니터가 달려있었다. 안내받은 자리가 가운데에서 약간 오른쪽까지 앉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한글 자막 모니터와 무대를 함께 관람하기가 어려운 자리였다. 무대 위나 밑에 자막이 나오면 함께 관람하기가 좋을 텐데 아쉬웠다. 고개를 돌려가면서 보니 무대를 못 볼 때가 있고 자막만 보다 보니 목이 아플 때가 있다. 모니터와 자리 위치가 아쉬웠다. 대사의 템포가 빨라 한글 자막도 덩달아 템포가 느껴졌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작품은 걸리버의 약자 버전으로, 현대인의 삶을 그린다.

다양한 체구의 배우들이 똑같은 의상을 입고 절도 있는 행동을 하며, 하나라도 튀면 버려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들은 장면마다 처한 상황에 철저하게 맞추기 위해 기꺼이 도구처럼 사용되며, 때로는 치열한 전쟁을 하듯 한글 자막과 함께 호흡하면서 연출됐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데, 배우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그들은 소모품이 아님을 살짝 내비쳤지만 실패했다. 극의 끝자락에서는 관망하듯이 보는 존재들을 알면서도 제어할 수 없음을 느낀 걸리버가 그림자마저 바쁘게 뛰어다니며 끝을 맺었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 바쁘게 살아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됐다. 만약 한글 자막이 템포가 없었다면 긴장감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호흡에 맞춰서 나온 감각이 되살아난 공연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연극”
(장근영 작가 | 시각장애)

성북동비둘기의 〈걸리버스〉는 스마트폰에 빠진 청년 걸리버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문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는 스파프에서 제공한 쉬운 소개 글과 공연 사전음성안내를 통해 작품의 주된 메시지를 듣고 공연을 관람했다. 하지만 정작 본공연에서는 이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다.

극에는 여러 명의 배우가 나와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극의 전체적인 흐름은 빨랐다. 배우들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극은 전반적으로 아주 시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각 장의 내용과 전체적인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사전음성안내에서 알려준 장면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극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언젠가 다시 공연된다면, 나와 같은 관객을 위해 좀 더 쉬운 접근성을 고민해 주면 좋겠다.

〈PNO〉 공연의 한 장면. 2층으로 된 피아노 모양의 무대 세트에 한 배우가 서 있고, 아래층 중앙에는 노란색 조명 아래에서 흰색 옷을 입은 무용수 한 명이 춤을 추고 있다. 무대 왼쪽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퍼포머가, 무대 오른쪽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세 명의 퍼포머가 있다.
▲〈PNO〉 김재훈컴퍼니 | 2024.10.15.~2024.10.16.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피아노와 한순간이라도 연결된 적 있는 당신께 추천합니다.”
(김시락 다원예술 창작자 | 시각장애)

출연진들의 피아노에 관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피아노 자체의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에는 피아노를 만들 때 상아를 썼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공연은 안무가의 움직임, 줄의 형태 변화 등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폐쇄형으로 음성해설*을 해주었다. 연주되는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인상 깊었지만, 음성해설과 함께 어우러지며 무대 위 장면들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만, 음악 소리가 클 때 진행된 음성해설은 알아듣지 못하고 놓친 부분도 많았다. 연주 중 음성해설을 듣기 위해 볼륨을 높이다 보니 음악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음악 소리가 커서 결국 음성해설도 듣지 못했다.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더욱 아쉬웠다. 물론 이 문제는 이번 공연만이 아니라 큰 소리가 나는 모든 공연에 해당하는데, 아직 명쾌하게 해결한 사례를 접해 보지 못했다.

*폐쇄형 음성해설 : 송수신기를 이용해 원하는 관객만 음성해설을 듣는 방식

“음성해설로 다시 만난 PNO, 두 번의 다른 관람방식으로 더 깊게 빠져든 작품”
(장근영 작가 | 시각장애)

예전에 음성해설 없이 만났던 〈PNO〉를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음성해설과 함께 다시 만났다. 덕분에 전보다 장면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김재훈이 재창조한 〈PNO〉의 메시지를 좀 더 느낄 수 있었다. 음성해설과 함께 들으니, 그의 피아노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같은 극을 음성해설 없이 한 번 관람하고 음성해설로 한 번 더 관람하는 방식은 이번에 처음 경험해 봤는데, 괜찮았다.

해설 없이 극을 관람했을 때는 들리지 않는 장면에서 내 나름의 상상으로 극을 느꼈고, 다시 음성해설과 함께 관람할 때는 극이 실제 들려주는 이야기와 이전에 내가 상상한 그림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극에 좀 더 깊이 빠져들게 했다. 그래서 다음에 다른 공연도 이런 방식으로 관람해 보고 싶지만, 솔직히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경제적으로,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다시 경험해 보고 싶다.

〈카메라 루시다〉 공연의 한 장면. 네 명의 배우들이 어두운 무대 위에 나란히 서서 오른쪽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도트 무늬가 있는 갈색 셔츠에 갈색 반바지를 입은 남성 배우, 검은색 민소매에 치노팬츠를 입은 남성 배우, 긴소매에 검은색 탑과 검은색 레깅스를 입은 여성 배우, 분홍색 머리를 하고 분홍색 프릴이 달린 파란 티셔츠를 입은 여성 배우 순서이다. 무대 바닥 곳곳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흰색 별 모양이 있다.
▲〈카메라 루시다〉 프로젝트 이인 × 캐나다 내셔널액세스아트센터 | 2024.10.26.~2024.10.27.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객석과 무대의 경계 너머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맞잡는 공연”
(김시락 다원예술 창작자 | 시각장애)

위스퍼링 음성해설, 자막, 열린 객석 등 익숙한 접근성 외에도 다양한 이색적인 접근성이 적용된 공연이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에서 온 발달장애 무용수들이 발화할 때 영어와 한국어 자막이 함께 제공되었는데 이때 한국어 자막을 자발적으로 나선 관객이 낭독해 주었다. 관객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이런 방식으로 통역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무용수들을 위해 적용된 접근성도 있었다. 이름의 이니셜과 서로 다른 색깔의 조명으로 등장 시기를 알려주었고, 무용수들이 놀라지 않도록 그들에게 손을 내밀기 전에 먼저 말을 거는 연습을 다 같이 하기도 했다. 탄탄한 서사나 강렬한 퍼포먼스는 없었지만, 익숙한 음악에 맞춰 흥겹게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실제로 관객과 무용수들이 어우러져 함께 춤을 추는 시간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누구에게도 강압적이지 않은, 누구도 다그치지 않는 말랑 포근한 노란빛 공연이었다.

“든든하게 준비된 접근성, 모두 함께 즐겨볼까요?”
(장근영 작가 | 시각장애)

〈카메라 루시다〉는 캐나다에서 온 발달장애가 있는 네 명의 무용수 앨리샤, 멕, 제임스, 도믹스의 언어와 움직임으로 낯선 우리와 함께 즐기는 공연이었다. 공연에는 사전음성안내와 위스퍼링 음성해설*이 제공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전음성안내를 통해 공연의 의도, 무용수의 목소리와 의상을 미리 알 수 있었고, 사전프로그램을 통해 공연 중 주된 무용 동작 즉, 멕이 보여주는 ‘두 팔 니은(ㄴ)’, 도믹스가 보여주는 ‘플립앤롤’의 움직임을 배워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위스퍼링 음성해설 서비스를 통해 무대의 모습, 조명 변화, 스크린의 내용, 그리고 무용수의 움직임을 비롯해 그때그때 상황과 분위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무용 공연인 만큼 시각적인 장면이 많았지만, 다양하게 준비된 접근성으로 든든하게 그리고 즐겁게 함께할 수 있었다.

*위스퍼링 음성해설 : 공연의 시각적 정보를 관객 옆에서 속삭이듯 해설하는 방식

〈침묵 속에 기록된〉 공연의 한 장면. 투명 스크린 뒤에 퍼포머가 있다. 투명 스크린에는 어두운 배경 위에 흰색 선으로 이발소 내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려한 전등과 의자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왼쪽에는 이발소를 상징하는 빨강, 파랑, 흰색 줄무늬 회전등이 있다. 퍼포머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한쪽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중간에 있는 이발소 의자를 바라보고 있다.
▲〈침묵 속에 기록된〉 미나미무라 치사토 | 2024.10.17.~2024.10.18.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단순한 시청각적 경험을 넘어, 다양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다솔 대학생 | 청각장애)

미나미무라 치사토 농인 예술가의 퍼포먼스를 두 가지 관점에서 관람하였다. 첫 번째는 소리를 들으며 감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리의 진동을 느끼며 관람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듣는 관점에서 퍼포먼스를 감상할 때는 수어, 움직임, 춤의 경계가 모호했다. 소리에 압도되다 보니 허리나 배에 착용한 우저 스트랩(진동 벨트)의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무대 양옆에 배치된 모니터에서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 자막이 한꺼번에 나와서 퍼포먼스에 온전히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소리의 진동을 느끼는 관점에서 퍼포먼스를 관람할 때는 수어, 움직임, 춤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모니터의 자막을 보지 않아도 그녀의 표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농인들의 피해와 참혹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더욱이, 우저 스트랩의 진동을 통해 음의 높낮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소리를 들어야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귀가 들리지 않아도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오직 눈으로 봐야 감각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침묵 속 언어”
(김은설 미술작가 | 청각장애)

수어로 들려주는 원폭 피해 농인 이야기를 오감으로 느끼면서 관람할 수 있다고 사전에 안내받았다. 우저 스트랩을 착용하고 공연을 시작했을 때, 웬걸, 수어를 보여주는 방식이 단순하지 않았다. 퍼포머가 투명 스크린 뒤에서 수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위로 프로젝션 화면이 생동감 있게 변했다. 수어 하나하나에 맞춰 영어 자막이 나오고 이미지가 튀어나오면서 화면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시각적으로는 눈이 즐거웠지만, 내용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에 소리를 듣지 못해 피하지 못한 농인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증언하며, 그 후에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에 회복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픔을 전했다. 이 과정을 수어로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이미지를 만들어 함께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수어를 모르는 관객은 무대 밖에 놓여있는 양쪽 모니터에서 한글 자막을 보느라 시선이 분산될 수 있어 아쉬움을 느꼈다. 수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연출이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소리를 진동으로 전달할 때, 효과음처럼 이벤트 같은 진동이 느껴져서 오히려 몰입이 깨졌다. 조금 더 진동을 섬세하게 다뤘다면 몰입하기 좋았을 것 같다. 차라리 진동을 빼고 수어 공연에만 집중해도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구성‧정리 : 박희연 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이 기사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프로젝트 궁리가 작성하고 더인디고가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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