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접근성③] 감각을 번역하고 확장하는 다양한 시도

144
〈침묵 속에 기록된〉 공연의 한 장면. 농인 예술가 미나미무라 치사토가 투명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영상은 옛날 텔레비전에 고령의 농인이 수어로 증언하고 있고, 스크린 자막에는 “My father came to pick me up on his bicycle.”라고 쓰여 있다.
▲미나미무라 치사토 〈침묵 속에 기록된〉 공연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편집자 주]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스파프(SPAF))는 재작년부터 축제의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지난해도 창작진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접근성을 시도하고, 장애·비장애 관객에게 안전한 환경에서 축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축제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공유했다. 축제 접근성을 실천한 과정을 다양한 관점으로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축제의 비전과 지향에 따라 극장의 시설 접근성뿐 아니라, 정보 접근성 등 관객의 축제 참여를 제한하는 여러 장벽을 낮추고 없애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참가단체가 음성해설, 자막, 수어통역 등 공연예술 접근성을 시도하고 작품에 반영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2023년 다섯 편의 공연에 대하여 접근성 작업을 기획‧실행하였고, 2024년에는 접근성팀과 함께 장애 당사자로 구성된 접근성 자문단을 상시로 운영하며 참가단체의 여건과 요청에 따라 적합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축제와 참가단체가 함께 만든 접근성 시도와 과정을 되짚어 본다.

소리, 음악, 효과음까지 풍성하게 : 자막해설

‘자막’은 사전적으로 ‘영화나 TV에서 관객이나 시청자가 읽을 수 있도록 화면에 비추는 글자’다. 이를테면 외국영화를 볼 때, 외국어 대사(말)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한글로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자막해설’은 누가 말하는지 발화자에 대한 정보가 표시되어야 하고, 대사 외에도 음악이나 음향 등 청각 정보가 들어간다. 공연에서 자막해설은 운영방식에 따라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나뉘는데, 개방형은 무대 상단이나 양옆 등에 자막이 나와서 모든 관객이 볼 수 있는 형태이고, 폐쇄형은 자막해설이 필요한 관객에게만 태블릿이나 단말기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폐쇄형은 단말기를 보느라 시선이 분산되어 공연에 몰입하기 어렵고, 장치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주변 관객의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는 단점이 있어서, 요즘은 대부분 개방형 자막해설을 선택한다.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처음 접근성을 시도해 보았다. 접근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음성해설, 자막해설 등 다양한 적용방식을 살피며 공연팀과 작품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고자 했다.

한정적인 시간과 예산을 고려하여 작품과 관객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알맞은 방식을 찾아 나갔다. 김현탁 연출은 무대에서 ‘걸리버’의 작은 세상이 먼저 보일 수 있게 하고 ‘스마트폰처럼 보이되 스마트폰도 현실도 아닌’ 곳에서 제3의 감각적 정보를 음악, 춤이라는 장치를 통해 더 낯설고 실험적으로 다가가고자 했는데, 이러한 감각적인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개방형 자막해설을 진행하기로 했다.

〈걸리버스〉의 자막해설은 전체적으로 소리, 음악, 효과음에서 자세한 해설이 들어가 소리 해설이 풍성해지고 어떤 분위기인지 알려줄 수 있도록 했다. 소리와 음악에는 대괄호([ ])를 사용하고, 기호가 들어가거나 따로 구분하는 방식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자막이 너무 길면 정보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한 장면에 들어가는 문장은 최대 세 줄로 구성했다. 어려운 말은 읽기 쉽도록 끊어서 구성하면서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다. 극 중에 나오는 모든 노래 가사에도 자막을 넣어, 청각장애가 있는 관객도 내용과 뜻을 알 수 있게 했다. 〈걸리버스〉 자막해설은 축제 접근성 자문단으로 참여한 김은설 작가(청각장애)가 모니터링하고 피드백해 주었다.

무대 위에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사회자, 연출가, 다섯 명의 배우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공연 중 자막해설이 진행되었던 무대 오른쪽 상단의 모니터에서는 발화자의 말이 실시간 자막으로 송출되고 있다. 무대 앞, 조명이 켜진 밝은 객석에는 여러 관객들의 뒷모습이 있다.
▲극단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관객과의 대화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상황과 감정까지 들을 수 있는 : 음성해설

‘음성해설’은 시각 정보와 모호한 청각 정보를 음성언어로 번역해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행동이나 소리를 음성으로 설명해 주는 식이다. 요즘은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나 언어를 배우는 학습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다양한 콘텐츠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공연에서 음성해설은 전달 방식에 따라 개방형과 폐쇄형이 있다. 개방형은 음성해설자의 음성이 모두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라 모든 배우와 관객이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다. 최근에는 한 명의 배우처럼 출연해 극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방식도 종종 볼 수 있다.

반면, 폐쇄형은 음성해설자가 별도의 공간에서 모니터로 무대 상황을 보면서 음성해설 대본을 낭독하거나 사전에 녹음된 음성파일을 재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관객은 FM 수신기나 별도의 단말기를 통해 객석에 앉아서 이어폰으로 들으며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PNO〉는 피아노에 대한 사회학적 시선과 고찰에서 출발한 실험적인 퍼포먼스로, 무대에는 여러 대의 피아노가 등장하고 청각적이고 음악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그래서 공연팀은 시각장애가 있는 관객을 위해 폐쇄형 음성해설을 선택했고, 국내 제1호 음성해설 작가인 서수연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대표와 함께 접근성 대본을 만들고 폐쇄형 음성해설을 진행했다.

김재훈컴퍼니 역시 이번 축제를 통해 처음 접근성 작업을 시도했다. 관객의 의견 중에는 음성해설이 극 속에 흐르는 음악의 느낌과 잘 어울리는 감성적인 언어 표현이 좋았다는 평가와 극 중 내레이션이나 음악과 음성해설과 겹치는 부분이 불편했다는 평가가 엇갈렸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공연팀의 숙제로 남겨졌다.

▲김재훈컴퍼니 〈PNO〉에 사용된 폐쇄형 음성해설을 위한 FM 수신기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대사 전달을 넘어 속뜻까지 번역하는 : 수어통역

수어는 수화언어의 준말로, 소리가 아닌 손짓을 이용해서 뜻을 전달하며 주로 농인이 사용한다. 음성언어와 마찬가지로 수어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같은 음성언어를 쓰는 나라 간에 서로 다른 수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 수어(KSL)는 2016년부터 우리나라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공연에서는 대체로 수어통역사가 무대 가장자리에서 대사를 수어로 전달했는데, 최근에는 배우 옆에서 수어로 연기하는 일명 ‘그림자 수어통역’을 하기도 하고,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는 등 수어 자체가 창작 요소로 들어간 작업도 종종 볼 수 있다.

〈침묵 속에 기록된〉은 원폭 피해 청각장애인 생존자들의 공포와 참상을 독특한 예술미학과 역사적 반성을 결합해 전하는 실험적인 1인 퍼포먼스다. 이 작품을 연출하고 출연한 미나미무라 치사토는 농인 퍼포머이자 안무가이고, 영국 수어(BSL) 예술 가이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국제적으로 창작, 공연, 교육을 해왔다. 〈침묵 속에 기록된〉은 춤, 움직임, 수어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여기에 3D 애니메이션, 영상, 사운드, 조명 등을 사용해 생존자들이 겪은 침묵의 공포와 농인의 감각적 세계를 구현한다.

미나미무라 치사토는 해외 공연을 할 때마다 그 나라의 수어를 배우고 공연에도 활용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한국 수어를 배우기 위해서 좀 더 일찍 입국했다. 청인 한국수어통역사의 수어를 보고 의미를 파악하여 농인 한국수어통역사가 다시 농인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미러 통역(mirror interpreting)으로 한국 수어를 배웠다.

이 과정에는 미나미무라 치사토 본인을 비롯하여, 영국수어통역사, 영어를 할 수 있는 청인 한국수어통역사, 그리고 농인 한국수어통역사까지 네 명과의 소통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연습 과정에서도 이러한 소통이 필요했다. 또한,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에는 모더레이터와 문자통역사, 한-영 순차 통역사까지 참여했고, 객석에서 농인 관객이 무대에 나와 수어로 질문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미나미무라 치사토는 대사의 절반 이상을 한국 수어로 진행했으며, 한글자막, 영문자막과 함께 영어로 자막을 읽어주는 음성해설이 제공되었다.

▲미나미무라 치사토 〈침묵 속에 기록된〉 관객과의 대화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이밖에도 202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참가단체가 시도한 접근성 실험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접근성 자문단의 장근영 작가(시각장애)가 사전음성해설 영상 검수를 진행했고, 공연장에서는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사전 비상 안내방송에 앞서 접근성 매니저의 위치를 안내했다. 〈걸리버스〉의 접근성 매니저는 극단 성북동비둘기 배우가 맡았는데, 처음 해보는 역할이었지만 축제 접근성팀과 긴밀하게 협의하며 더 구체적으로 접근성 작업을 챙길 수 있었다.

작품 홍보와 접근성 자문단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피드백을 이어갔다.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청각장애인 관객도 음향 효과를 비슷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일부 객석에 우저 스트랩(진동벨트)을 제공했다.

축제 전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축제 공식 포스터 3종의 음성 포스터 버전을 비롯하여 관객에게 좀 더 쉽고 재밌는 방식으로 축제와 공연을 소개하는 안내 영상들을 제작하였다. 또한 모든 공연과 창작랩, 워크숍 페스티벌 등 축제 프로그램 현장에 접근성 테이블을 비치하고 접근성 매니저가 상주했으며, 휠체어 이용자나 안내견 동반 관객의 물리적 접근성을 확보했다.

이렇게 축제를 통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실험함으로써 공연예술계 전체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구성‧정리 :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PD

이 기사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프로젝트 궁리가 작성하고 더인디고가 편집한 내용입니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