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저항과 연대의 생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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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는 사람들©unsplash
▲시위하는 사람들©unsplash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보통 사람들에겐 사십 중반의 나이가 인생의 반환점인 중년에 들어서는 시기이겠지만, 희귀난치질환 듀센 근육병 환자인 내겐 그 자체만으로 기적에 가까운 생존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심장이나 호흡 문제로 20~30대 사이에 동병상련 동료들을 허망하게 잃은 경험이 가슴에 쓰리게 남아있어, 교류하는 같은 환우들과 새해에 잘 견디고 버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나누게 된다.

자폐인들이 넓은 스펙트럼 가운데 저마다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듯 근육병 카테고리엔 수많은 타입이 혼재해 각자 개별적 상태와 조건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며 일상의 맛과 멋을 조금씩 누리려고 노력한다. 적극적이고 대체가 힘든 돌봄에 기대고, 부족하고 헐거운 복지 시스템과 편견·차별로 내려보는 시선에 부대끼며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대안을 찾고 차선이라도 부여잡으려고 애쓴다.

지역에서 존중받거나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동의와 협조가 필요했다. 부모님은 부탁과 설명, 호소를 오가며 장애 심한 자식을 위한 삶의 자리를 어렵게 마련해 주셨다. 선량하고 친절한 양보와 배려가 없으면 감히 살아남지 못하는 잔인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탓하거나 분노에 휩싸이지 않고, 진심과 긍정으로 소통하고 공존하는 법을 익혔다. 다행히 나를 알아보고 마음을 내어주는 이들이 나타났고, 그들 앞에선 주눅들 필요가 없이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난치 환자이자 장애인으로 사는 건 저항이자 연대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일이다. 질병의 무서운 진행과 혐오의 무차별 공격을 수시로 받는 상황에 놓인 가련한 인생에서 자유와 평안, 행복을 챙기고 가꾸는 게 헛된 꿈이나 값비싼 사치로 느껴지는 날이면 짙어진 우울과 불안에 빠지곤 한다. 과연 기쁨과 희망이 주어지긴 할지 절망적 의심이 고개를 들고 만다.

그렇게 낙담과 억울함의 참담한 시간을 묵묵히 삼키는 슬럼프를 건너고 나면 웅크렸던 마음에 반작용처럼 오기가 불끈 솟아난다. 당연히 주어지거나 쉬이 허락되는 것들은 하나도 없었는데, 날카로운 고통과 불편, 소름 돋는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고, 부드러운 존중과 공존, 다정다감한 이해와 사랑에 연대하면서 오늘의 소소한 일상과 나만의 언어를 발견하고 터득하게 이끌어 온 삶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내 몸은 시스템에 갑자기 오류와 고장이 나고, 인터페이스와 기능이 점차로 줄어들며, 충전과 재부팅을 자주 해줘야 작동되는 낡은 전자제품을 닮았다. 자신과 주변에 골치 썩이며 삐거덕거리고, 적잖은 비용과 보조에 의존해서 고위험으로 생존한다. 하지만 한낱 기계와 다르게 존엄한 정신과 영혼을 가진 생명이자 인간이기에 적극적 돌봄과 인격적 소통, 의료·복지 지원을 매개로 경제 선진국 일원이자 민주주의 시민으로 의미를 찾고 가치를 창조한다.

모든 사람이 저항과 연대에 힘입어 역사와 현실, 미래를 열어간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경우에는 하루하루 기본적인 생존과 최소한의 사회적 참여를 위해 분투한다는 점에서 더 절박하고 간절하다. 불법적 계엄과 탄핵 시국에 폭력과 혐오, 편 가르기가 횡횡하지만, 그간 소외되고 지워졌던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응원봉으로 반짝이는 다채로운 광장에서 귀한 발언의 기회를 얻고 새로운 울림을 주는 모습에서 희망과 사랑의 가능성을 엿본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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