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호구 때문에 더 잘 안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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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복을 입고 호구를 착용한 두 사람
안 그래도 저시력으로 시각장애가 있는데, 호구를 착용하면 시야 확보가 더 어려워진다. 기본 동작을 믿고 수련해야 하는데, 더 잘 안 보이게 되어 더 잘 보려고 하는 경향 때문인지 쉽지 않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검도에 입문한 지 어느 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기본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 열심히 수련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느꼈다. 일주일에 한번은 ‘검도 수련하는 날’로 정해놓고 있는데, 마음이 무겁고 할 일이 많은 상태라도 검도 수련을 하고 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컨디션도 올라가곤 한다.

그런데 진도가 조금씩 나갈수록 마음 한켠은 편하지 않다. 어쩌면 두려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누군가와 교검을 하게 될 때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금까지 관장님만 믿고 수련해 왔고, 또 앞으로도 관장님만 믿으며 계속 수련하겠지만 내가 잘 안 보이고 안 들린다는 게 누군가와 교검을 할 때 어떻게 작용할지 선뜻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일 것 같아.

먼저 타격을 할 때는 타격하고자 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데, 안 그래도 잘 안 보이는데 호구를 착용하니 시야 확보가 더욱 어려워진다. 관장님이 바로 앞에 서 있으면 (머리치기인 경우) 정확히 관장님의 머리를 쳐야 되지만, 처음 두세 번까지 시도는 항상 머리가 아니라 허공을 치기 일쑤다.

그리고 용케 머리 부분을 정확하게 타격했더라도 그 자세 그대로 앞으로 밀고 나가야 되는데, 상대방(관장님)과 몸이 부딪칠까 염려되는 나머지 정말 무심결에 앞으로가 아니라 오른쪽 방향으로 약간 치우쳐진(1시 방향) 앞으로 밀어 나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반대로 상대방의 타격을 받아주는 위치에 서게 되면 온몸이 뻣뻣하게 얼어붙는 걸 느낀다.

머리를 치는 경우에는 타격하는 사람이 한 발 걸어나오면서 기합을 한 뒤, 머리치기를 한다. 호구를 착용하고 있으면 상대방이 머리를 치기 위해 죽도를 든 동작이 제대로 안 보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그 타이밍을 정말 집중해서 알아내야 한다. 그 느낌은 바로 상대방과 내 죽도의 가장 끝부분인 ‘선혁’이 닿을 때다. 두 죽도가 닿은 채로 상대방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게 내 죽도의 선혁으로 잘 느껴야 한다.

아직까지는 상대방이 머리치기를 할 때 받아주는 수련만 했다. 앞으로 허리와 손목치기를 받아주는 수련도 하게 될 텐데, 과연 자연스럽게 잘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머리와 허리는 둘 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뒤 타격을 한다. 죽도의 선혁으로 상대방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는 것을 느끼더라도 머리를 치려고 하는지, 허리를 치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대방은 치고자 하는 부위를 큰 기세로 기합을 넣어 어디를 칠 건지 말해주는데도 청각장애가 있으니 들을 수 없다.

또 손목을 칠 때는 머리, 허리와 다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이 없이 바로 손목을 친다. 그럼 기합소리를 못 듣더라도 죽도를 위로 들어올리는 걸 보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동작이 없으니까) 손목을 치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호구 때문에 그것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걱정하고 여러 가지 생각하는 동안 한발 옆으로 가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고, 곧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또 오른쪽으로 비껴 나아간다.

그럴 때마다 관장님은 눈으로 볼려고 하지 말고 기본자세와 죽도의 느낌을 기억하면 된다고 알려 주신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실행에 옮기는 건 참 어렵다. 한편으로는 잘 안 보이니까 더 자세히 보려는 경향 같기도 하지만, 관장님 말씀대로 꼭 상대방의 머리를 치기 위해 그의 호구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하지 않고 기본동작만 제대로 된다면 죽도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친다는 걸 알고 있다.

잘 안 보이고 안 들려서 누군가와 교검을 하는 게 참 쉽지 않을 뿐더러 두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관장님과 함께하는 이 검도 수련은 어쩌면 지금껏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청각장애인의 검도 수련, 더 나아가 교검의 과정이 새로운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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