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스파프(SPAF))는 재작년부터 축제의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지난해도 창작진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접근성을 시도하고, 장애·비장애 관객에게 안전한 환경에서 축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축제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공유했다. 축제 접근성을 실천한 과정을 다양한 관점으로 5회에 걸쳐 연재한다.
- 발달장애인 관객의 축제 탐방기 : OH명
- 친밀함과 환대로 충만한, 경계를 뛰어넘는 공연 관람법
“소정아. 일하러 가자!”
소정의 사회생활은 “나도 일하고 싶어!”라는 말로부터 시작됐다. 대안공간에서 세 번, 극장에서 한 번 공연을 하며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본인을 배우로 인식하고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프로젝트 이인과 캐나다 내셔널액세스아트센터가 협업한 〈카메라 루시다〉 공연 관람과 축제 탐방에 함께할 것을 제안받고 소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공연에 관해 설명하자 귀찮다는 둥, 서울은 너무 멀다는 둥 투정을 부렸지만,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고 목소리엔 흥분이 서려 있었다. 나는 소정이 신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네가 꼭 가야 한다고, 함께 해 달라 졸랐다.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알겠어. 내가 가야지” 하고 제안을 승낙했다.
공연 당일, 그 사이 소정은 가벼운 감기에 걸렸고 나는 그런 소정의 컨디션을 살핀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소정은 전전긍긍하는 나와 달리 “일은 해야지!”라며 코를 킁킁대면서도 씩씩하게 말했다.
혹여나 공연을 보기 전 무리가 될까 싶어 택시를 타고 아르코예술극장에 가기로 했다. 소정은 택시 타는 걸 좋아한다. 대중교통은 편마비가 있어 보행이 불편한 소정에게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공간이기도 하고, 종종 원치 않은 친절을 베풀며 동정의 시선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영 좋아하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한껏 기분이 좋아 보이는 소정에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러 가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소희 : 우리가 지금 보러 가는 공연은 외국인 발달장애인 네 명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공연이야. 춤을 추는 건 무용이라고 해.
소정 : 발달장애인? 소정이도 발달장애잖아. 소정이는 팔도 아픈데.
소희 : 맞아. 소정이도 그렇지. 소정이는 연극을 하잖아. 이 사람들은 춤을 춰.
소정 : 나도 춤 잘 추는데.
소희 : 근데 이번엔 소정이는 배우 아니고 관객이야. 무대에 서는 사람은 배우이고, 의자에 앉아서 공연 보는 사람은 관객이잖아. 오늘 할 일은 관객이 되는 거야.
소정 : 나는 왜 배우 안 해?
소희 : 이번엔 안 해. 지금은 공연을 보는 게 일인 거야. 그리고 언니는 소정이랑 공연 보고 글을 쓸 거야.
소정 : 나도 그럼 글 쓸래.
소정은 배우들한테 편지를 쓰겠다며 한참 동안 종알거렸다. 나는 그런 소정에게 일단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공연을 보기 전 사전 문자로 받은 관람 안내 메시지를 읽어주고, 〈카메라 루시다〉의 쉬운 소개 영상을 함께 봤다.
영상을 꼼꼼히 봤음에도 공연에 대한 정보를 다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소개 문구 중 ‘장애가 있는 몸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공연을 보고 몸으로 느껴보자는 말로 어물쩍 넘어갔다.
쉬운 말로 설명되어도 정보를 인지하는 정도에 따라 이해도가 다를 수밖에 없어서다. 영상의 내용을 더 쉬운 말로 해석하는 것을 반복하며 열띤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극장에 도착해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니 때마침 보슬비가 내렸다.

소정과 극장에 갈 때면 묘한 긴장감이 생긴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몇 번의 공연 관람의 잔상 때문일 수도 있다. 빨간 벽돌길을 따라 아르코예술극장에 들어서니 접근성 매니저님이 환하게 우리를 반겨주었고 덩달아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간략히 인사를 나누고 티켓 부스에 가서 각자 이름으로 티켓을 받았다. 소정은 그새 티켓 매니저님이 좋아졌다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나는 뒤에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소정의 대화를 충분히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종종 소정의 속도를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할 때가 있다. 핑계를 대보자면 공공장소의 보편적인 속도감을 깨고 싶지 않기도 했고, 눈치 주는 사람이 없어도 눈치를 보게 됐다.
그런데 이 극장에 들어온 순간만큼은 천천히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곳곳에서 접근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있었고, 소정 말고도 다양한 장애 유형의 사람들이 보였다. 당연한 것을 당연히 모두와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소정의 속도로 함께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티켓을 받은 후 접근성 매니저님께 「카메라 루시다 공연 가이드」 책자를 받았다. 이 책자에는 공연 내용과 무용수 소개, 공연에서 사용하는 기호에 대한 설명, 무대와 객석, 조명과 음악, 접근성, 극장 위치에 대한 설명이 쉬운 말로 적혀 있었다.
공연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었기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책자 속 내용을 소정이 평소 자주 쓰는 언어로 재해석해 읽어주었다. 특히 무용수의 사진과 특징이 적혀 있는 부분을 좋아해 무용수 소개를 반복해서 일러주었는데, 소정만의 방식으로 무용수를 미리 만나는 과정인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책자를 붙들고 대화를 나누다 입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연장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마름모꼴의 정사각형으로 된 무대의 각 면을 따라 관객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관객이 듬성듬성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각 면의 관객석 정중앙엔 책자에서 봤던 무용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헤드셋을 끼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소정은 무용수를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낯선 극장 분위기에 긴장한 듯 보였다. 우리는 관객석을 한 바퀴 돌아보며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소정은 공연 시작을 기다리면서 가이드 책자를 다시 한번 열었다. 아무래도 책자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들과 책자의 설명을 비교해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무용수, 무대의 모양, 자막 위치 등을 곱씹어 관찰하다 보니 경직됐던 마음이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소정은 본인은 무대에 나갈 수 없냐고 물었다. 책자에서 관객 참여에 대한 부분을 봤었기에 공연에 관객도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고 기회가 되면 무대에 나가자고 말했지만, 배우의 욕망이 가득한 소정은 성에 차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런 소정의 모습에 이유 없이 웃음이 터졌지만, 혹여나 무대에 나가지 못하면 아쉬움이 생길까 싶어 오늘의 일은 ‘관객으로서 공연을 보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웃음 터진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천천히 조명이 어두워졌고 극장이 조용해졌다. 우리도 웃음을 거두고 조용히 무대를 바라봤다.
먼저 재난 시 대피로에 대한 설명이 우리말과 영어로 안내되었다. 보편적으로 외국 공연에서 외국인의 말이 한글 자막으로 전달되는 걸 생각했을 때, 소정이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점에 걱정이 앞섰다. 우리의 친구가 된 「카메라 루시다 공연 가이드」에서 자막 없이도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문구를 봤지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없어 초조해졌다.
짧은 순간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은 내가 걱정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대비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각자의 긴장을 어루만졌다.

무대에는 각 무용수를 상징하는 색깔 조명이 있었다. 무용수들은 그 색을 보고 본인의 차례를 인식한 후 무대로 나왔고 등장 순서 또한 늘 동일했다.
소정과 나는 「카메라 루시다 공연 가이드」를 보며 각 무용수의 상징색과 순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시작을 알릴 무용수를 기다렸다. 첫 주자인 앨리샤는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관객과 함께 한국어 음성 설명을 진행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앨리샤가 영어로 말하고 한국어 자막이 나오면 관객이 무대로 나와 자막을 읽는 식이었다.
한글 자막을 읽을 수 없는 소정이 공연을 보며 소외당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도, 이 공연은 관객과 함께 언어를 넘나들며 극을 만들어 나갔다. 서비스 측면의 딱딱한 음성 설명이 아닌 극의 요소로 작용한 관객 참여형 한국어 음성 설명은 자연스럽게 배우와 관객,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국경을 뛰어넘은 공연 관람법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무용수들은 앨리샤, 멕, 제임스, 도믹스 순서로 등장하여 자기만의 스타일로 주어진 시간을 꽉꽉 채워나갔다. 앨리샤는 공연의 첫 스타트를 든든하게 끊어주었고, 멕은 처음엔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롭게 움직임을 이어갔다. 제임스는 여유롭게 무대를 즐기며 틈틈이 다른 무용수를 챙겼고, 도믹스는 노래를 부르며 거침없는 움직임을 펼쳤다.
소정은 공연을 보는 내내 내게 말을 걸었다. 공연을 볼 때 내가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조용히 해야 한다며 안절부절못할 행동이지만, 이 공연만큼은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소정의 말소리가 조금 큰 편인 것 같아 신경이 쓰였지만, 내 주위 관객들을 보니 아무도 눈치를 주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극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소정이 “우와~ 춤 잘 춘다”라고 말하자 주변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겼다.

1부 공연이 끝나고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2부가 시작됐다.
앨리샤는 휴식시간부터 2부가 시작될 때까지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소정은 앨리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잘 돈다”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나도 소정의 귀에 대고 “그러게. 잘 돈다”라고 말해주었다.
2부는 조금 더 천천히 묵직하게 진행되었다. 소정은 그새 무용수들과 친밀감이 생겼는지 분홍 머리를 한 앨리샤에게 ‘딸기 언니’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딸기 언니 잘한다~”라며 응원했다.
소정은 공연 중에도 가이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사진 속 무용수를 짚어가며 이름과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책자 속 무용수들의 특징을 보고 그들의 움직임을 해석하며 공연을 관람했다. 마지막 장면으로 네 명의 무용수가 무겁고 진중한 음악에 맞춰 군무를 췄다. 관객들도 덩달아 조용하고 진지하게 공연을 관람했는데, 조잘대기 바쁘던 소정도 이 순간만큼은 조용히 무대 위 무용수를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내 귀에 대고 “딸기 언니 귀엽다”라고 말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준비된 무대가 끝나고 무용수들이 무대로 나와 커튼콜을 했다. 소정은 커튼콜 사진을 찍고 싶다며 내 핸드폰을 가져갔다. 사진이 조금 흔들렸지만, 프레임 밖 소정은 꽤 행복해 보였다. 관객들이 공연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고 우리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하지만 소정은 딸기 언니(앨리샤)에게 인사하고 싶다며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극장이 한산해진 틈을 타 앨리샤에게 인사를 했다. ‘딸기 언니’라는 별명을 지었다고 전해주며 너무 재밌게 봤다는 말을 더했다. 앨리샤는 고맙다며 소정의 손을 잡아줬다.
소정은 한참을 “딸기 언니 멋져!”라고 말한 뒤 아쉬운 듯 공연장 밖으로 나왔다. 나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소정이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극장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온 대학로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소정 : 딸기 언니는 집에 잘 갔을까?
소희 : 그러지 않았을까? 근데 집은 비행기 타고 가야 해. 오늘 공연 어땠어?
소정 : 재밌어! 딸기 언니 너무 대단해. 빙글빙글 도는 거! 또 만나고 싶어! 언제 볼 수 있어?
집에 가는 길에도 소정의 〈카메라 루시다〉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사전 문자로 받은 공연 안내 영상을 다시 봤다. 공연을 보기 전 설명하지 못했던 ‘장애가 있는 몸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새롭게 보였다.
여전히 쉬운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공연을 보고 난 후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 문구를 이해하고 있었다. 소정은 최근까지도 “딸기 언니는 잘 사나?”라며 안부를 묻곤 한다. 아마도 우린 꽤 오랫동안 딸기 언니를 찾게 될 것 같다.
소정 : “딸기 언니 잘 있지?”

∙인스타그램 @p_thgml(https://www.instagram.com/p_thgml/)

진행‧편집 :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PD
이 기사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프로젝트 궁리가 작성하고 더인디고가 편집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