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접근성⑤] (좌담) 물리적 접근성부터 다양한 감각으로 보기까지, 축제 접근성 담론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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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드는 밝은 실내 공간에 인터뷰이 세 명이 나란히 있다. 왼쪽에는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서 있고, 중앙에는 짙은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이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오른쪽에는 윤종연 전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이 앉아 미소 짓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윤종연 전)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 | 사진제공=김명집

[편집자 주]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스파프(SPAF))는 재작년부터 축제의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지난해도 창작진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접근성을 시도하고, 장애·비장애 관객에게 안전한 환경에서 축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축제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공유했다. 축제 접근성을 실천한 과정을 다양한 관점으로 5회에 걸쳐 연재한다.

공연예술축제라는 집약된 시공간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관객의 다양한 교차점과 접점을 만들고 있는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윤종연 전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4년 11월 22일 아트코리아랩에서 세 사람의 예술감독을 만나 축제에서 접근성의 의미, 확장을 위한 시도와 도전, 과제와 가능성을 짚어보고, 더 많은 이들이 장벽 없이 공연예술축제를 즐기기 위해 갖춰야 할 기반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눴다.

김진이 2023년부터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으로 함께하고 있다. 서울변방연극제는 매회 ‘변방’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 필요한 동시대 이슈나 경향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축제다. 올해는 과정프로그램으로 4~9월 목포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서울, 대전, 목포에서 축제를 개최했다.

최석규 2022년부터 5년 임기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을 맡았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연극과 무용 중심의 축제에서 확장해 다원예술과 동시대 사회적·정치적 측면에서 주제적 접근을 하며 다양한 담론을 나누는 장으로, 축제가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올해는 10월 3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아트코리아랩 등에서 공연, 창작랩, 워크숍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윤종연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예술감독으로 활동했고, 2024년 20회를 맞이하기 위해 작년과 올해 함께했다. 얼마 전부터 서울시 동대문구 문화예술축제인 ‘동대문페스티벌_이동무대’를 만들어 새롭게 판을 짜고 있다. 안산거리극축제는 도시와 시민을 연결하고 매개하는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담는 축제이다. 매년 어린이날 전후로 진행되며, 올해는 5월 3일부터 5일까지 안산문화광장 일대와 거리, 공공공간에서 펼쳐졌다.

접근성에 대한 인식 전환과 비전 공유하기

최석규 2022년 축제를 준비하면서 동료들과, 예술이 동시대를 바라보는 거울이라고 할 때 그동안 축제에서 예술의 접근성을 협소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동시대 사회 가치의 변화나 사회적 질문들을 통한 예술의 다양성이나 포용성, 평등성의 관점에서 살피며, 지금까지 축제에 오지 못한 관객에게 무엇을 기본으로 제공해야 할지 이야기 나눴다.

그래서 첫해에 ‘배리어프리’라는 협의의 관점보다는 예술 미학을 관람하기 위한 ‘접근성’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기후위기, 장애인 접근성, 넥스트 모빌리티 등 축제의 중요한 사회적 실천과제를 구성하였다. 그런데 가장 큰 도전 과제는 그러한 인식을 우리 내부 스태프, 동료들과 어떻게 공유하고 공동의 목표를 세울 것인가였다. 즉, 단순히 배리어프리를 만든다거나 장애인 관객에게 혜택을 제공한다는 태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예술의 접근성에 대한 인식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는 민간 독립 축제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재원이 부족하지만 축제의 성격에 맞게 매번 대안적 장소를 새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접근성을 동시에 고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변방연극제가 주요 의제로 다뤘던 사회 이슈나 소수자성을 이미 많은 공연예술축제와 공공극장, 주요 플랫폼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에서, 변방연극제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사회와 연결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 사실 한 공연의 접근성 제작에도 부족한 예산으로 축제를 운영했기에, 모든 프로그램에 관객 접근성 제공을 기본적으로 준비한다기보다는, 축제 전반에서 고민하며 매해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각 작업에 맞게 구현하려 노력을 했다.

또한, 새로운 공간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의미를 두고 영상을 만드는 등 장소마다 다른 시도를 했다. 현재 변방은 프로그래머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접근성 매니저를 따로 두지 않고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이 좀 더 접근성을 고민했다. 모든 업무 부담이 접근성 매니저의 몫이 되지 않도록, 각 프로그램 담당자가 접근성을 고민하고 함께 실현하는 방식으로 해나갔다.

윤종연 거리예술축제는 한정된 내부 공간이 아니라 밖으로, 거리로 나와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공유되고 관람할 수 있기를 원하는 축제다. 그런데 사실 ‘모두’가 아니라 특정 관객만 존재한다.

예를 들면, 안산이라고 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떠올리지만, 축제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거의 없다. 장애인도 보이지 않는다. 차별적으로 대상을 선택하고 있는 거다. 정말 모두에게 열린 축제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하면서 작년부터 접근성을 고민했다.

추진력이 생기려면 내부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재단이 주최하는 축제이다 보니 매뉴얼 혹은 관행에 익숙해 있어서, 설득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시작해 보는 거였다.

축제에서의 시도와 도전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도 제일 먼저 장애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장애예술가와 비장애예술가를 초청해 내부 구성원을 대상으로 인식 전환 워크숍을 했고, 그다음에는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것이 가장 핵심인 것 같다.

그리고 물리적 접근성과 미학적 접근성을 갖추고자 했다. 공연장마다 접근성을 제공하는 테이블과 수어통역사를 배치해 작품 관람을 도왔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당사자성을 토대로 하는 정보 접근성인데, 일률적으로 진행했던 장애인 관객 대상 홍보를 맞춤형으로 구성하고 ‘쉬운글’ 버전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과의 연대였다.

2022년 첫해에는 접근성 매니저 1명을 두었다면, 2023년부터는 조금다른주식회사와의 파트너십으로 접근성팀을 구성했고, 올해는 장애 당사자로 접근성 자문단을 구성하여 협력하는 체계로 진행했다.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는 2023년부터 조금씩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이동했다. 10년 전 변방연극제 작품 〈숙자 이야기〉를 통해 평택의 미군 기지촌 여성이었던 할머니들이 직접 서울에 올라와 공연했었는데, 2023년에는 관객이 그분들을 만나러 평택으로 가는 기획을 했다.

관객이 평택역에서 공연 장소까지 승합차로 이동하는 콘셉트라 승합차 안에서 배우의 퍼포먼스가 시작되는데, 휠체어를 타는 관객이 있었다. 그 관객이 승합차에 타고 휠체어만 따로 이동할 수 있게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규정상 휠체어는 화물이라 휠체어 이용자가 꼭 동승해야 이용이 가능했다. 결국 평택도시공사 지원을 일부 받기도 했지만, 따로 알아본 사설업체를 통해 휠체어만 옮기고 관객은 승합차로 함께 이동했다.

거의 3주간 이 사안을 가지고 소통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장애인 관객이 공연 보러 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축제를 이동하면서 다르게 보이는 게 있었고, 여전히 못 하는 것도 많다. 올해는 목포에서 레지던시를 하며 과정을 발표하고 서울에서 대전, 목포로 이동하는 작업을 기획했는데, 지역에서 작업하다 보니 확실히 서울만큼 접근성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공연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KTX는 그래도 휠체어 접근성이 있었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교통편, 장애인 화장실이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과 숙소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윤종연 안산국제거리극축제도 공연예술 형식의 다양성을 담기 위해 카테고리를 광장, 도시, 숲, 이동 등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사실 광장 말고는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 프로덕션 기획 단계부터 접근성에 대한 고려를 함께하면 좋겠지만, 공간이나 창작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게 되니 쉽지 않았다.

장애인 관객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는, 장애인 관객이 축제의 장에 같이 존재하고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비스나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장애 고유성과 개별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한 것처럼, 독립적인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정보 접근성부터 갖추고자 했다.

그러면서 안산의 장애인복지센터나 복지관 등과 협력하여 축제 정보를 전달하고 우리의 응대를 고민해 나갔는데, 의외로 도움을 주겠다거나 함께하려는 단체가 많았다.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아예 쉬운 의사소통을 위한 AAC(보완대체의사소통) 그림판을 만들어주었고, 축제 현장에서 안내를 맡아주기도 했다.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경우 티켓을 오픈할 때 장애인 관객을 위해 홀딩석(티켓 예매 시 일정 정도의 좌석수를 장애인 관객을 위해 보유해 두는 방식)을 잡아놓지만, 생각만큼 홀딩석 티켓이 많이 안 팔린다. 다른 축제에도 장애인 관객을 위한 홀딩석이 있는지, 어떻게 객석을 확보해 놓는지, 장애인 관객 개발이 매우 궁금하다.

윤종연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공연 예약 시 장애 관련 정보를 기입할 수 있게 했고, 장애 유형별로 응대 방안을 찾는다. 축제 전반보다는 각 공연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했다. 사실 기획과 창작 단계에서부터 접근성 작업을 한 예술가나 예술단체가 많지는 않지만, 시각장애인 혹은 발달장애인 관객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거나 함께할 부분을 축제에서도 같이 찾고자 했다. 그런데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참여하더라. 팀 자체에서 접근성 매니저를 두고 작품을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대본을 제공하는 팀도 있었다. 그림 팝업북으로 공연하는 ‘팔꿈치의 활동범위’는 아예 점자 도감을 만들었다.

김진이 변방연극제에서도 수어나 다양한 접근성이 긴밀하게 작업 안에서 미학적으로 결합하길 원하지만 아직은 축제에서 제작할 여력이 없다. 때로는 공연팀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접근성이나 반려동물 동반 입장 같은 제안도 있었지만, 하우스 운영에서 축제의 지원에 한계가 있어 고민이 많다.

인터뷰이 세 명의 상반신 사진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왼쪽의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은 검은색 단발머리에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다. 중앙에는 검은 뿔테 안경에 짙은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이 두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의 윤종연 전 안산거리극축제 감독은 검은색 가죽재킷을 입고, 오른손에 펜을 쥐어 들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윤종연 전)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 | 사진제공=김명집

드러내고 충돌하며 모색하기

최석규 김진이 감독님 얘기를 들으니, 내부의 고민을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3년 안은미 안무가와 함께 〈웰컴투유어코리아〉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동남아 이주노동자 관객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채우는 걸 봤다. 장애인 관객에게 신체적‧물리적 접근성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대 예술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을 어떻게 열어줄 것인지도 축제가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종연 동시에 고민되는 게, 축제는 활력이 중요하다 보니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대부분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다. 그러면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리플릿을 비롯한 홍보물도 노년층이나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큰글씨’를 사용하기보다는 젊은(?) 디자인을 우선시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이 젊고 건강한 몸으로만 몰리는데, 공연과 축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김진이 작년에 충남 공주에서 했던 박소희×OH명의 〈함께 살아가기 프로젝트 : ㅅㅅㅅㅅ〉는 다양한 사람이 함께한 한 달 살기의 과정공유회로, 관객이 공주까지 찾아가 관람했다. 올해는 서울연극센터 1층 로비에서 짜잔과 함께 〈월간 짜잔잼 8월〉을 오픈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짜잔’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한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예술인이 함께하는 등장 연습 워크숍이자 컨택즉흥춤 모임이다.

변방연극제는 소극장 공연이 많아서 관객 규모가 크지 않고 접근성 안내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등장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고, 장애인 창작자가 나와야 장애인 관객에게도 열린다는 생각으로 창작 측면에서의 접근성을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올해 변방연극제 합평회를 하면서, 변방연극제 사무국 멤버 중에 장애인 당사자가 있었으면 목포 유달산에 오르거나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프로그램을 기획했을까, 라는 얘기가 나왔다. 할 말이 없더라. 어쩌면 축제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이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좀 더 섬세하게 살피지 못한 것 같았다. 앞으로도 장애인 창작자, 장애 당사자와의 작업을 이어 나가려 한다.

최석규 올해 상반기에 접근성 팀과 장애 당사자로 구성된 접근성 자문단이 모여 홍보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쟁점이 있었다. 공연 정보 중 접근성 유무를 우선순위로 제공하는 것이 어떨지에 대한 의견이 있었는데, 장애 당사자로서는 접근성을 너무 강조해서 설명하게 되면 접근성이 제공되지 않는 공연은 오지 말라는 것처럼 보여 이미 차별받는 느낌이라고 하더라.

물리적으로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보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는 거다. 접근성과 관람 방식을 분류해서 잘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장애인 관객도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당사자들이 바라는 비차별적인 접근성 제고도 중요한 것 같다. 올해 쉬운글 홍보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열린 관람방식, 다양한 감각으로 보기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누가 뭐래도 접근성의 최전선에서 그것을 실천하고 만드는 이들은 창작자다. 코끼리들이 웃는다 이진엽 연출의 〈커뮤니티 대소동〉, 프로젝트 이인과 캐나다 장애 당사자의 작업 〈카메라 루시다〉, 그리고 장애 당사자인 미나미무라 치사토의 〈침묵 속에 기록된〉 등은 창작 단계부터 접근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관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안다. 축제 준비 단계에서 참가단체에 축제가 지향하는 정보 접근성이나 장애인 접근성, 지원 가능한 사항을 공유하고 참여를 제안했는데, 그러면 호기심 반 의지 반으로 해보겠다는 팀도 있고, 해보지 않은 거라 꺼리는 팀도 있고, 미학적 관점에서 방해되니 안 하겠다는 팀도 있다. 결과적으로 작품에서 접근성을 시도해 본 팀의 변화가 가장 큰 것 같다.

윤종연 축제는 사무국 외에도 많은 조직이 연결되어 있어서 접근성의 가치나 중요성을 전파하기가 더 어렵다.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를 위한 시간도 필요하고 재원도 투입되어야 하는데, 설득이 잘 안되니 내 안에 배리어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마주할 때가 많다.

그래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접근성 관련 자원봉사 팀을 조직하는 등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내용을 채우는 담론과 실천이 활성화되면 좋겠다. 축제에 참여하는 예술단체들은 자체에서 수어통역사를 두기도 하고, 접근성 매니저뿐만 아니라 접근성 영상을 제작하는 등 자발적인 움직임이 많다.

김진이 앞서 얘기한 OH명의 〈함께 살아가기 프로젝트 : ㅅㅅㅅㅅ〉는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이 노동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 담겨있다. 축제에서는 창작 배경과 발달장애인이 출연한다는 것을 관객에게 홍보나 소개글로 미리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공연팀은 관객이 장애 프레임을 가지고 보러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공연팀의 선택대로 정보를 따로 표기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관객을 만나고 나니 그 선택이 옳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관객들이 충남 공주에 직접 방문해서 한 달 살기 하며 만든 작업 전시물과 작업자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장애 당사자나 장애를 고민하는 작업을 소개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 사례였다. 우리도 공연팀과 처음 만날 때 어느 정도까지 접근성을 시도하고자 하는지 물어본다.

팀마다 작업마다 과정과 방식이 다 다르니까 물어보는 건데, 처음 참여하는 팀은 축제에서 알아서 해줄 거라고 기대했다가 생각보다 접근성 제작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을 어떻게 제안하는 게 좋을까? 가이드라는 게 과연 유효할까?

마주치고 스며들기 위하여

최석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만들어지고 나서 정책적 대응이 쏟아졌다. 그전에도 접근성을 시도하고 모색한 예술가들이 많았지만, 정책과 기금이 만들어지면서 좀 더 많아진 건 사실이다. 공급은 쏟아지는데 장애인 관객 수에서는 아직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장애인 관객 데이터를 보면, 2022년에는 초대 관객이 많았다면 올해는 유료 관객이 확실히 늘었다. 장애예술에 관심 있는 비장애인 관객이 장애인 관객보다 훨씬 많고 예매 속도도 빠르다. 200개가 넘는 장애인 관련 기관에 직접 연락하고 홍보도 하지만, 장애인 관객이 공연장에 오기까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동반자가 있어야 하거나 유료라는 점도 문턱을 높이는 요소다. 다른 대중문화보다 현대 공연예술뿐 아니라 장애예술에도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장애인 관객개발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했고, 축제에서 연대할 방법을 모색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윤종연 장애예술 작업을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섞이고 스며들 것인지를 다양하게 시도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축제나 공연 형식에서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잘 모르거나 폐쇄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만나거나 함께하는 경험이 거의 없거나 부족해서이지 않을까.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주 만나서 마주하고 존재를 기억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김진이 축제마다 지향이 다른 것 같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모두에게 열린 축제를 고민한다면, 변방연극제는 축제 타깃도 정확하고 관객 대부분이 창작자이거나 관계자다. 장애인 관객도 마찬가지로 장애인 창작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히려 접근성 미학을 좀 더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공연 예약 시 접근성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묻는 질문지를 발송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정보를 적기 어려운 관객을 만날 방법에 관한 고민이 생겼다.

최석규 축제마다 성격과 환경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장애예술 창작자들이 많아지고 접근성을 실천하는 요소가 핵심인 것 같다. 그리고 접근성 전문가 집단과 많이 연결되면 좋겠다. 윤종연 감독님이 말씀하신 내부 자원의 지속 가능성과도 맞물리는 것 같다. 축제 조직은 늘 인력이 바뀌고, 장애예술과 접근성 시도는 결국 정책과 예산이 필요한 부분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도 사실 3년간의 지원 덕분에 조금은 안정적으로 접근성을 시도해 보고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축제 내부에서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

윤종연 정말 동의한다. 물리적‧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예산이 없으면 접근성을 시도하기 어렵다.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공공지원과 제도적 장치가 있으면 많이 달라진다. 특히 축제 인력이 대부분 단기 계약직인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고민하고 설계하기 어렵다. 이런 실정에 맞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나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진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진행하게 될 때 접근성 도입이 추가 업무로 인식될 때도 있다. 그만큼의 예산과 인력을 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수많은 가치가 서로 다투는 거다. 노동권이 들어오면 접근권은 후순위가 되거나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또한 좀 더 체계적으로 축제 접근성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은데, 장애 당사자 관객이 적으니 항상 소수의 몇 분에게만 요청하게 되고 다양한 의견을 받기가 어렵다. 접근성 전문가 역시 한정된 인력풀이 전부다.

최석규 장애 감수성, 창작 접근성에는 기본적으로 예산과 인력이 따라줘야 한다. 이런 토대가 없으면 지속적으로 접근성을 활성화하기는 어렵다. 인력 특히 전문가 그룹에 대한 축제 간의 연대가 제일 시급한 것 같다. 창작에서 다양한 감각의 관점과 접근성의 다양화 측면은 변방연극제에서 잘할 수 있고, 거리예술축제의 경험치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연대해서 정책에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접근성 매니저들의 모임이 활성화되고, 매년 축제가 끝나고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공유와 담론의 장을 펼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하나는 장애예술 비평에 대한 부분이다. 장애예술 작품이 좀 더 많아지고 미학적으로 다양해지면서, 비평가와 장애 당사자의 비평이 더욱 활성화되면 좋겠다. 장애 당사자, 장애예술가들이 창작 과정에 들어와서 같이 만드는 게 중요하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도 아직 장애 당사자와 장애예술가의 창작 작업이 많지 않은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김진이 오늘 이야기는 장애 접근성이지만, 언어 접근성도 영향이 큰 것 같다. 올해 변방연극제에서 올렸던 〈암란의 방〉은 예멘 난민의 이야기인데, 아랍어 통역을 제공하니 그 언어를 사용하는 관객이 왔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과 감각을 만나는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년에는 장애예술가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고 접근성 부분에서도 변방연극제가 다르게 시도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다.

최석규 관객으로 하여금 ‘장애’를 보게 할 것인지 ‘다름’을 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중요한 지점이다. 요즘 다양한 작업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그것을 발견하는 시간인 것 같다.

윤종연 올해 보았던 〈월간 짜잔잼〉이 인상적이었고, 서울거리예술축제 예술감독으로 있을 때 초청했던 호주 레스트레스 댄스씨어터의 〈친밀한 공간〉에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은 기억이 있다. 다른 존재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어떻게 마주하게 할 것이냐가 나에게 가장 큰 숙제인데, 낯선 공간 혹은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 이질적인 몸들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 그런 마주침을 축제 형식 안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어두운 실내 공간에 중앙을 비추는 밝은 조명이 있고, 조명 아래에는 네 사람이 곳곳에 자유롭게 비치된 의자 위에 앉아 있다. 관객들은 어두운 주변 바닥에 둘러앉아 중앙에 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뒤쪽의 벽으로는 다양한 산호가 있는 바닷속 장면이 스크린에 띄워져 있다.
▲오픈 프로그램 〈월간 짜잔잼〉 (사진. 박혜정) | 사진제공=서울변방연극제
야외 공간에 두 사람이 우비를 입고, 허리까지 오는 대형 휠체어석 표지판을 들고 서 있다. 표지판은 흰색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중앙에는 파란색으로 휠체어 이용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그려져 있다. 뒤로는 잔디 밭과 나무들이 있고, 나무들 뒤로는 축제 부스로 사용되는 흰색 텐트들이 있다.
▲자원봉사자가 휠체어석 표지판을 들고 있다. | 사진제공=안산국제거리극축제
스파프 영상 추천 콘텐츠 ‘스파프펀지’의 한 장면. 과거 예능 프로그램을 패러디하였다. 칠판 일러스트 그림 위에 ‘스파프에는 네모가 있다’라고 적혀있고, 네모 안에 글자가 나타나고 있다. 오른편에는 노란색 배경 위로 수어통역사가 수어통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어통역사 위로는 검은색 글씨의 한글 자막해설이 있다. “(여러 명이 입으로 흉내낸) 빠빠빠 띠로리리~ 웅장한 분위기의 〈스펀지〉 BGM”이라고 쓰여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연 추천 영상 캡처 이미지 | 사진제공=(재)예술경영지원센터

참석자 : 김진이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윤종연 (전)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진행‧정리 :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PD
사진 : 김명집 사진작가

이 기사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프로젝트 궁리가 작성하고 더인디고가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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