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개인적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방이 내 손바닥에 하고싶은 말을 글로 적어서 소통하는 ‘손바닥 필담’을 가장 선호한다. 이 방법을 20년 넘게 사용하면서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가능한 장점을 더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대화의 ‘유대감’이다. 내 손바닥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대방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래서 글씨가 적히고 있는 손바닥도 집중해서 봐야 하지만, 종종 상대방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어떤 감정으로 말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손바닥에 온전히 하고싶은 말만 적는 사람도 있지만 ‘ㅋ’이나 ‘ㅎ’처럼 웃는 의사를 표현하는가 하면, ‘^^’와 같은 이모티콘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하고 긴 대화를 나눠야 할 때는 손바닥 필담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곤 한다. 상대방이 손바닥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 하고싶은 말을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적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도 계속 글자가 적히는 손바닥에 집중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많은 글자를 손바닥에 계속 적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음성인식기능 앱을 종종 활용한다.
스마트폰에 다운받아서 사용할 수 있는 이 앱은,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폰 화면에 문자로 실시간 변환해 준다. ‘박관찬’을 ‘밥반찬’으로 변환하는 등 생소한 단어는 100% 변환이 어렵지만, 일상적이거나 웬만한 내용은 거의 다 변환한다. 뿐만 아니라 무선 마이크를 폰에 연결하면 인식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
이 앱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아무리 길게 이야기해도 앱이 충실히 변환해 주기 때문에 손바닥 필담보다 훨씬 빠르고 긴 대화가 가능해진다.
음성인식기능 앱은 손바닥 필담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반대로 손바닥 필담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문자로 변환되는 폰 화면을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어떤 기분인지를 느낄 수 없으니까 대화의 감수성에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이 앱을 사용하면서 한 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앱을 사용하여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상대방에게 전화가 왔다. 상대방이 기자에게 “잠깐만요”라고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앱은 그대로 대화를 실시간으로 변환해야 하는 자기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즉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서 하는 말이 그대로 변환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폰 화면을 계속 보려니 문득 내가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청각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통화 내용을 자연스럽게 듣게 될 텐데, 이 앱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니까 괜히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또 기자를 포함해서 세 명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타고 기자는 뒤에 탔다. 무심코 앱을 켜두니까 앞좌석에 앉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게 자연스럽게 문자로 변환되었다. 굳이 안 들어도 되는 내용인데, 계속 보고 있으니까 또 엿듣는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무심코 기자에게 뭔가 질문을 했는데, 앱 덕분에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앱이 아니었다면 기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요즘은 단둘이 있을 때 상대방이 전화를 받게 되면 폰을 뒤집어 놓거나 앱을 종료시켜서 일부러 딴짓을 한다. 그냥 이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자동차에서처럼 기자 포함 세 명 이상이 있는 곳에서는 계속 앱을 켜 두는 게 맞는 건지 또 고민이 된다.
적어도 남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 들지 않는 대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