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생활체육 강사들이 센터로부터 받는 강사료가 6대 4, 우린 7대 3 정도를 원하거든. 근데 국가대표 출신들이 양반이라 아무도 센터에 말을 안 해.”
“그럼 데모 하셔요. 강사님들 의견을 전달할 필요는 있잖아요.”
“아유, 데모 그런 거 하지 마요. 우리나라 사람들 뻑 하면 데모야. 대화로 해결하면 되지 왜들 그러나 몰라.”
동네 스포츠센터의 탁구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데 강사료가 짜다는 강사의 말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데모를 언급했다. 옆에 있던 지인이 깜짝 놀라며 데모하지 말라 해서 나는 아차 싶었다.
“○○ 씨는 곱게 자라서 데모라는 말에 경기하는구나. 데모가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약자들 의사 표현 방법인데…”
내 말에 ○○ 씨는 그래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도리질을 했다. 하다하다 안 되니까 단체 행동으로 옮기는 거라 말해도 그 일에 관련 없는 사람들이 입는 피해를 들먹이며 될 때까지 점잖게 해야 한단다. 나는 세상 일이 다 얽혀 있고 사회적 이슈는 특정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소리내어 말하진 못했다. 가볍지 않은 말을 툭 던지면 그 가치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만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약자를 위해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는 삶. 삭발과 단식, 길바닥 농성까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약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사는 이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할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지금 20대 후반 아들이 내게 오기 전까지 나도 그랬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지상 최대의 관심이었다. 조금이라도 불이익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고 공익적인 면은 풍요롭게 사는 이들의 몫이라 여겼다. 티브이를 보다가도 어려운 이웃이나 장애인이 나오면 재빨리 채널을 돌렸다. 타인의 고됨과 불행을 보는 게 불편했고 그들의 삶에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라고 외면했다.
그랬던 내가 자폐인 아들을 키우면서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내게 주어진 현실에만 급급하여 모든 기준은 아들이었다. 세상은 아들을 좋아해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곳으로 감사와 증오의 두 가지 감정만 키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어 아들이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 다녔다. 맹모삼천지교는 장애 자녀 부모들의 필수 항목이었다. 맹자 엄마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받아줄 학교를 찾아야만 했다. 학교에서 만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사는 엄마들이 의기투합하여 송파장애인통합부모회를 만들었다. 지역사회 안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부모들이 만들자며 시작한 장애 부모 운동. 사실은 내 아이를 위한 것일지라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움직였다. 따지고 보면 나의 관심이 우리들의 관심이었다. 장애 유형에 따라 지원의 방법이 다르지만 보조교사와 활동지원사는 장애인 모두의 바람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만 움직이다가 서울 전체를 아우르는 서울장애인부모연대에서 활동했다. 문서만으로 일하는 공무원에게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면 묵살되기 일쑤였다. 살림만 하던 연약한 엄마들이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숙 농성으로 밤을 새며 길바닥에서 잠을 자고 삭발투쟁에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우리의 단체 행동이 장애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제도로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열 번 발을 떼면 한 발 앞으로 전진하는 작은 변화들이 부모된 이들의 투쟁 열기에 힘을 실어줬다.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가 되었고 연대와 투쟁 없이 문서와 대화로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때로는 깊숙이, 때로는 주변에서 장애 부모 운동을 하고 보면서 나는 많은 활동가들을 만났다. 나처럼 다들 가족 누군가가 장애인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어떤 동기로 사회 운동을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공익적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며 나는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눈앞의 내 일에만 몰두하다가 타인의 삶을 알게 되면서 나의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세월호와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분들과 교류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희석시켰다. 행동으로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는 후원으로 연대하는데 한 풀 꺾인 나의 활동에 늘 미안하고 죄책감마저 들기도 한다. 나의 미안함이 자꾸 엷어져 세상 바라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요즘이다.
○○ 씨처럼 대화로 해결하라는 말을 하는 이웃에게 데모는 진보된 민주시민들의 정의로운 절차라는 걸 알리는 것도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동참은 차치하고 마음으로나마 응원하는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길 바란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세상보다 약자의 삶을 응원하고 함께하는 시끄러운 세상, 소음 속의 고요를 소망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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