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어하는 트레이너’ 최유진 씨
- “장애인이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사회로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기자는 새로운 헬스장을 찾다가 사무실에서 1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헬스장을 발견했다. 곧바로 상담 예약을 잡고 방문했다.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상담 장소로 안내했는데, 기자는 자리에 앉은 뒤 ‘청각장애가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잠깐만요’라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동안의 경험상 다시 돌아올 그 직원은 분명히 손에 펜과 종이를 들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음성인식기능 앱으로 소통하면 괜찮을 텐데. 생각하고 있는데 기자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앞서 안내했던 직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기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 사람이 인사하는 걸 본 기자는 깜짝 놀랐다.
‘말’이 아닌 ‘수어’로 인사했기 때문이다.
수어하는 트레이너
최유진 트레이너는 영등포 지역 최대 규모(1,000평대)의 짐콩고 피트니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피트니스에서는 재활 쪽을 특정해서 수업하고 있는데, 특수체육을 지도한 경력도 있다. 기자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상담 전에 따로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수어를 하는 트레이너가 바로 연결될 수 있었는지부터 질문했다.
“저는 가족 중에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수어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함께 소통하기 위해서 배우다 보니까 저한테는 수어 자체가 익숙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가족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자연스럽게 수어를 습득한 최유진 트레이너는 특수체육, 재활운동을 지도하는 과정에서도 수어를 종종 활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기자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제스처에 바로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청각장애가 있다고 해서 바로 문자나 수어통역이 이뤄지는 게 일상적으로 인식되어야 하지만, 특히 장애인이 운동하는 것에 대한 아쉬운 인식이 큰 우리 사회에서 최유진 트레이너의 존재는 크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장애인이 운동을 한다는 것
‘특수체육’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오직 청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최유진 트레이너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체육과 재활운동을 지도하면서 장애인의 운동, 더 나아가 건강 관리에 대해 고민한 게 있을 것 같았다.
“발달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청각장애인들과는 다른 의미로 소통이 잘 되지 않다 보니까 그분들을 지도할 때는 움직임 관점으로 하게 됐어요. 이를 통해 그분들이 느끼는 반응을 말로 전달을 받기보다는 몸에서 표현하는 반응들을 캐치하려고 노력을 했었어요. 그런 과정들이 지금 제가 트레이너로서 수업을 지도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기자도 20년 가까이 헬스장을 다니며 운동했지만, 최유진 트레이너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다. 장애인이 운동하려고 하면 다친다. 위험하다. 사고난다 등과 같은 걱정과 우려부터 할 뿐, 어떻게 하면 장애인이 운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최유진 트레이너도 단순히 운동을 지도하는 맥락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지도하는 방식이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하는 체육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과 병행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많이 없다고 했다.
“제가 특수체육단체에서 발달장애인들을 지도했을 때 대부분의 발달장애인들은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고 어떻게 보면 그들의 표현 방식이 비장애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좀 폭력적인 경우도 있고, 그렇다보니까 지도강사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상사도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장애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지도하려다 보니까 발달장애인과의 어떤 감정이 교류된다는 경험을 처음 느껴봤거든요.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지만 제가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지도하면서 안 되는 동작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서 지도했어요. 이런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저의 진심이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비장애인 주류사회에서 이렇게 장애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최유진 트레이너의 마인드가 참 모범이 된다. 잘 살펴보면 장애인이 무료로 이용가능하거나 50% 할인되는 공공체육시설조차도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하려고 하면 환영받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운동하려면 보호자나 동행인이 반드시 함께 와서 같이 운동해야 한다고 하거나, 심지어 회원등록할 때 작성하는 계약서에 면책조항을 수기로 작성하게 하기도 한다. 면책조항의 내용은 ‘운동하다가 사고나면 헬스장 측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장애인’이라서 면책조항을 쓰게 하는 것이야말로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다.
최유진 트레이너에게 수어의 의미
‘수어하는 트레이너’에 굳이 주목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 운동하기에 여전히 불편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유진 트레이너의 존재가 반갑고, 또 앞으로의 활동에 많은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트레이너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수어’는 최유진 트레이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한테 수어는 단순한 언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절된 소통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또 수어를 사용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할 때 말이 중요한 것처럼 제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각도 많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방법은 트레이너로서 회원님들을 지도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한테 수어가 주는 의미는 언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가 짐콩고 피트니스에 회원등록을 하기 위해 최유진 트레이너가 상담을 진행하고 피트니스 내부를 안내할 때, 최유진 트레이너는 그 어떤 직원보다 친절하게 임했다. 뿐만 아니라 상담 중에도 종종 지나가는 회원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과 태도 하나하나에 회원들의 입장을 생각하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런 좋은 마인드를 가진 최유진 트레이너는 앞으로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아무래도 제가 지금 다루고 있는 운동도, 지도하고 있는 운동도 어떻게 보면 재활에 완전히 특화되어서 하기 때문에 정말 병원에서도 치료가 안 되는 분들을 헬스장에서 운동을 지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경험들을 하다보면 발달장애인이나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을 지도하는 운동도 들어가는 깊이가 조금 다를 뿐이지 결국에는 같은 맥락의 운동이 아닐까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경험이 좀 더 많아지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쪽으로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꼭 장애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돌아보게 된다. 또 장애인의 건강관리가 쉽지 않은 요즘 헬스장과 같은 체육시설에 최유진 트레이너와 같은 장애 감수성을 가진 인력이 많이 나타나길 바래본다. 그런 사회가 되는 과정에 최유진 트레이너의 활동이 선한 영향력이 미치길.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박관찬 기자님 좋은 기사 잘 읽고 있습니다.
수어가 가능한 트레이너라는 소재가 신선합니다.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충실히 살아가는 장애인의 가족의 기사를 많이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