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선생님! 시각장애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칠 때 교과서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치는 것은 힘들죠? 예를 들면 과학 시간에 현미경으로 관찰한다든지 시약을 사용해서 양파의 단면을 설명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주 곤란하겠죠?”
시각장애인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질문을 던졌다. 장애감수성 높은 친구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어오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불가능하다고 내심으로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가능하죠. 다 할 수 있어요.”
예상하지 못한 답을 들은 그녀는 어떤 신기한 방법이 있는지 한시라도 빠르게 듣고 싶다는 듯 말의 속도를 높였지만 내가 가진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난 과학 교사가 아니라서 지금 당장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보이는 것을 소리로 변환하거나 단면의 굴곡을 확대해서 만져보게 하거나…”
확신 없는 두루뭉술한 답변에 그녀는 실망하고 있었다. 그 정도의 애매한 방법들은 자신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을 터였다. 다만 그런 것들이 실제 교육에서 쓰일 만큼 유의미한 것인지 진정 가능하긴 한 것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었을 것이다.
중학교 입학 후에 실명한 나는 시각장애인인 상태로 현미경 관찰이나 양파의 단면을 쪼개어 보는 실험을 한 적은 없다. 솔직히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하더라도 비시각장애인 학생들처럼 그 세밀한 관찰이나 실험을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경험시켜 줄 방법이 현재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내 생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시각장애인 당사자이면서 교육자인 나조차 그것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생각해내거나 연구하지 못했을 뿐 방법이 없지는 않다고 고집이라도 부려야 시각장애 학생들을 포함하는 교육 방법론이 생겨나고 발달할 수 있다.
“도저히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건너뛰면 안 되는 건가요?”라고 재차 물어오는 질문에 난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명확하게 나누어진다. 현미경으로 세포를 보거나 시약을 떨어뜨려서 변하는 색과 모양을 관찰하는 것도 불가능의 영역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공교육의 범위에 포함된 내용은 어떻게든 가르칠 수 있고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교육과정에 포함된 내용이라면 다수의 전문가가 대한민국 땅에서 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라고 합의한 내용일 것이다. 각자의 학습 욕구나 의지의 차이로 덜 배우거나 열심히 하지 않을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장애를 이유로 학습할 수조차 없어서는 안 된다.
만약 지금 시각장애 학생이 교과서에 나오는 현미경 관찰을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교육과정 설계의 문제가 있었거나 교육 방법의 마련을 게을리 한 것이다.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는 단원의 교육목표가 세포의 모양을 구분하는 것이라면 촉각 교구로 대체할 수 있고 현미경이라는 도구 자체의 사용법을 가르쳐주려는 목적이었다면 시각 아닌 다른 감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현미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상상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기술이나 양자컴퓨터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을 넘어서 공상의 영역이었지만 다수의 필요와 노력으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도 언젠가 인류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기술이었겠지만 인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것은 다수의 필요와 고집스러운 연구자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우주에 어떤 큰일이 발생해서 우리의 시력이 더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깜깜한 세상이 된다면 인류는 보지 않고도 지금과 같은 편리함을 누릴 방법을 빠르게 만들어갈 것이다. 작은 세포나 양파의 단면을 구분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자동차나 비행기도 시력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낼 것이다. 지금 교과서의 내용 중 일부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시각장애 학생들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적어도 공교육 교과서의 모든 내용은 시각장애 학생들도 학습할 수 있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게 당장 해법이 없더라도 고집부리고 상상하는 것마저 멈출 수는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신기하고 놀라운 기술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간세계에서 고집과 상상이 집요하게 이어지다 보면 누군가의 연구와 나의 고집이 맞닿지 않을까?
공교육은 모든 학생을 동등하게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하루 빨리 반성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모두를 포함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우리가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