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대한민국도,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심란했던 2024년 세밑이었지만, 세초라고 해서 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안한 상황도 아니라서 그저 두 해의 연장선상에 어지럽게 내동댕이쳐진 느낌이다. 2024년을 살았는데, 한 번 더 사는 느낌이랄까.
겨울은 빼앗겼지만, 봄은 반드시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지만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흘러가더라도 내 입에 밥 떠 넣고, 약속한 것들을 지키는 삶은 내겐 여전하고 소중하다.
곳간이 말라서 인심도 마른 건지, 배울 만큼 배우고, 법을 안다는 사람들의 법 없는 행동에 상대적 박탈감과 무력감이 들어서인지 펜을 들었다 놨다 할 뿐, 글을 길어 올릴 우물도 마른 듯한 요즘이다.
쥐어짜도 장애가 소재인 삶을 사노라면, 멀리 떠나는 여행이 슬며시 그리워지곤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습관 같은 생활 패턴으로부터 거리두기 하면, 다시 일상을 견딜 의욕과 새 힘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얼마 전에 페이스북 지인을 통해 앉아서 하는 여행은 독서이고, 서서 하는 독서가 여행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크게 공감했었다. 비록 읽히지 않는 책을 붙들고만 있고, 이유가 어찌 됐든 떠나지 못하는 여행도 꿈꾸고만 있는 요즘일지언정.
배우자의 오른쪽 어깨 인대가 다 끊긴 이후로 짧거나 긴 여행도 잠시 멈췄고, 흔한 외식도 상황을 살펴야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불러주는 교육에 강사로 오가는 것 말곤 별다른 일이 없다. 그것만 신경 쓰기에도 여력이 없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고 있기에 익숙한 것들에게 느끼는 권태로움일랑 슬그머니 감춰본다.
잠시만 오롯이 나 혼자일 수 있다면…
혼자를 꿈꿀수록 혼자이기 힘든 내 몸은 날마다 다른 몸의 도움이 절실하다. 마음은 다른 마음을 돌볼 힘도 있지만, 겉사람에 갇힌 보이지 않는 속사람쯤은 무시당하기 쉬운 세상이므로.
작년 12월로 5년 가까이 함께했던 동갑내기 활동지원사와 이별하게 되었다. 이부자리에서 일으켜 앉힐 때, 옷을 입히거나 벗길 때, 생활 동작 시 손잡아 당기는 힘의 세기를 익혔던 익숙한 손을 놓자니 마음이 어려웠다.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일상이 어느새 거짓말처럼 채워져가는 것을 보면, 다 사는 길은 있는 것 같다. 1시간의 휴게시간을 빼고 꼬박 8시간을 함께하는 활동지원사와 씻고, 밥해 먹고, 청소하고, 마트 볼일까지 보고도 자투리 시간이 남을 때 우린 가끔 커피잔을 기울인다.
커피로 채우는 시간조차도 말없이 편안하긴 쉽지 않다. 곧 할 일, 해줬으면 하는 일 등에 대해 입을 열게 된다. 엉킨 감정은 풀어야 하지만, 풀지 못해서 끊어내야 하는 관계도 있다. 50이 넘으면 손절할 것도 없는 한줌 관계를 가진 인생이더라고 어떤 강사가 그랬는데, 관계를 유지만 한다고 과연 최선이라 말할 수 있을지.
내 핸드폰 연락처에 아무개 선생님이라고 활동지원사 전화번호를 저장해 둔 반면, 어느 날 우연히 활동지원사의 내 연락처는 아무개 이용자라고 저장된 걸 보았고, 이름 옆 괄호 안에 ‘지체’라는 장애유형을 표기해둔 걸 확인했을 때 그에게 나는 누구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기십, 기백 시간의 서비스 대상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나였던 것이다.
세 사람이 이어갈 뻔했던 서비스 시간을 두 사람으로 정리한 게 엊그제다. 두 사람하고만 맘을 맞추면 되는 자유를 얻었지만, 언제 또 셋이 될진 모를 일이다. 주말에만 일하기로 했던 50대 활동지원사는 일을 하기로 했다가 두 번이나 번복했다. 이해한다고 너그러운 웃음으로 보내줬지만, 이 일에 대한 다소 가벼운 태도에 맘이 상했었다.
5년 가까이 함께했다 떠나는 활동지원사도, 보내는 나도 각자 입장에서 서운한 것이 있었다. 서로의 호칭을 ‘선생님’으로 정하고, 적당한 간격에서 바람이 드나들도록 했지만, 어느 순간 처음 같지 않은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손을 놓을 때임을 직감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게 있긴 할까.
친정엄마보다 여섯 살 적은 일흔세 살 선생님이 올해부터 함께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만났던 수많은 그녀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다. 그녀는 틈만 나면 무엇인가를 노트에 적거나, 냉장고 안을 열어 봤다. 그녀의 노트엔 대체 무엇이 적혀 있을지 조금 궁금해졌다.
하루는 앞치마를 챙겨 오고, 이튿날엔 대걸레를 사 왔다. 며칠 전에 내가 낮 활동지원사와 김치와 두부, 부추와 숙주나물 그리고 당면을 다져 만두소를 만들어 두었더니 밀가루 반죽을 해서 만두를 빚어주었다. 남은 반죽으로 손칼국수까지 만들어줘서 시어머니 손칼국수 맛을 그리워하던 남편이 흡족한 한 끼를 선물 받았다.
그녀는 약속 시간에 정확히 출근하고, 퇴근한다. 며칠 전엔 내 요구로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갈 때, 바우처 중개기관 코디네이터에게 마트 다녀온다고 전화하겠다길래 제지하다시피 했다. 그 기준이라면, 음식물쓰레기 배출하러 나갈 때도 전화해야 할 것이라고, 이용인의 욕구 파악과 자립생활 지원이자, 그 가족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서비스의 목적이라고, 중개기관에 필요 이상의 충성으로 이용인이 관리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함께해야 한다고 힘주어 설명했다.
한편 현재의 바우처서비스 중개기관이 장애인활동지원 수행기관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는 활동지원사의 말에 그 말은 이용인과 활동지원사를 그만큼 괴롭혔다는 반증이기도 한 거라고 대답했더니 그 생각은 못 해봤다면서 한 수 위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바닥 생활하는 우리 집엔 컴퓨터 책상에 딸린 것 말곤 의자가 없는데, 앉았다 일어섰다 반복하기 힘들어해서 인터넷으로 접이식 의자도 서둘러 사 놓았다.
베란다 완강기에 걸려있던 통마늘을 하루하루 껍질 벗겨 찧어 납작하게 눌러 얼리고, 매일 통마늘을 까서 다시 얼리는 등 되려 우리가 좌불안석할 만큼 바지런하다.
일머리가 부족했던 처음과는 달리 이용인의 몇 가지 요구를 파악하고는 출근하자마자 앞치마를 두르고 연신 분주하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동휠체어 작동과, 리프트에서 승하차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아직도 식은땀을 흘린다. 리프트에 올라앉아 그녀가 전동휠체어를 대주고, 빼줄 때마다 긴장해서 나는 나대로 근육통과 피곤함이 쌓인다. 그래도 매일 오늘만큼 나아지고 있다. 한 달 정도 되니까 사실 신체 서비스나 음식 등의 가사 서비스는 하나도 어렵지 않으나, 기계 다루기가 힘들어서 전동휠체어 작동에 진도가 느린 것 같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또한 시간이 도와줄 부분이다.
그녀가 밀가루를 익반죽해서 손만두에 손칼국수, 엊그제는 손수제비까지 만들어주는 바람에 주말이면 즐겼던 라면도 멀리하고 있다.
2008년부터 만나왔던 대부분의 활동지원사는 요구하는 도움을 주었으나, 요구 외의 것엔 눈 돌리지 않았다. 자신의 시간과 돈에 대한 계산은 밝았으나, 이용인의 상황과 변화엔 어두운 편이었다. 사람이 바뀌자, 집안이 좀 더 깨끗해지고,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좋다.
낮 활동지원사와 하루를 꾸리고, 밤 활동지원사와 하루를 마무리하노라면, 종일 말을 쉬지 않아 허기가 느껴진다.
몸이 편하자니 맘이 불편하고, 맘이 편한 대신 몸이 불편한 게 때론 활동지원서비스이다. 일정에 변경이 없는 한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는 일본인 활동지원사와 대여섯 시간을 함께하고, 저녁에서 밤까지 또 다른 활동지원사와 함께하노라니 어깨가 아파 외출도 힘든 남편은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 무엇보다 자유로움이 없어 힘들어한다. 내가 독거 이용인이었다면 야간 서비스까지 필요한 신체적 상황이지만, 누군가와 하루를 꼬박 붙어 있기가 보통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대체공휴일에 명절 연휴의 1.5배의 시급 계산을 하면서 1월 한 달 살이를 마무리 지었는데, 2월은 주어진 시간을 야간에 활용할 수 없는 한 날려버려야 할 판이다.
미처 소비되지 못할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라고 마련된 대안이 개인예산제는 아닌 것 같다. 또 잉여 시간이 얼마 있기나 하려구.
사용하고 싶을 때, 원하는 시간대에 지원되는 서비스야말로 체계적인 인력풀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달 서비스계획서에 쓴 대로의 서비스가 아니라, 이용인이 원하는 시간에 욕구 실현이 되는 조력이 필요하다. 내가 원할 때, 보조받고 싶다.
상체에는 열을 식히려 선풍기를 틀고, 하체에는 온기를 더하려 온풍기를 켠다. 내 몸 하나도 하나의 온도로 통일이 어려운데, 각기 다른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가 어떻게 한 가지나 두 가지 색일 수 있을까.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지만, 그동안 살아온 대한민국이 지금만큼 혼란스러운 때도 없던 것 같다. 제 할 일만 잘하는 사회보다는 다른 이와 어울려 살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표준 과정의 활동지원사 교육이 시작되었고,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교육과 특수교육청의 장애이해교육도 곧 시작될 것이다. 편의시설 심층조사요원의 자리에서도, 자립생활 전문위원으로서도, 정당의 지역 장애인위원장으로서도, 지금 글을 싣고 있는 더인디고의 집필위원으로서도 그만큼의 역량과 힘으로 계속 구르고 싶은 올해이다. 드문드문 여행할 수 있는 한해살이도 기대한다, 부디.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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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편안한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의 ‘부디’라는 어휘에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댓글을 지금 봤어요.
늘 애정어린 격려와 댓글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