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장애민족자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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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깃발이 만든 그림자 속에 휠체어 탄 시민, 목발 짚은 시민, 바닥에 누워 있는 시민, 서 있는 시민들이 있다. © 김소하
▲커다란 깃발이 만든 그림자 속에 휠체어 탄 시민, 목발 짚은 시민, 바닥에 누워 있는 시민, 서 있는 시민들이 있다. © 김소하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지난 2025년 삼일절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6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탑골공원에서 국권을 빼앗긴 조선의 백성들이 일제 폭압에 비폭력 만세 운동으로 항거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전체 인구의 12%, 200여만 명이나 참여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강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열망에 찬 단순 시위가 아니라 독립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4·19 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의 뿌리가 된다.

3·1 독립만세운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국제 정세 속에서 태동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민족자결주의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발표한 14개 조 평화 원칙에 나타나는데, 각 민족은 그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외부로부터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약소 민족의 ‘자주독립사상’이다.

윌슨은 1918년 1월 의회에서 공표한 <14개 조 평화 원칙>의 세부 내용은 “① 강화 조약의 공개와 비밀 외교의 폐지, ② 공해(公海)의 자유, ③ 공정한 국제 통상의 확립, ④ 군비 축소, ⑤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 ⑥ 프로이센으로부터의 철군과 러시아의 정치 변화에 대한 불간섭, ⑦ 벨기에의 주권 회복, ⑧ 알자스-로렌의 프랑스 반환, ⑨ 이탈리아 국경의 민족 문제 자결, 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의 여러 민족의 자결, ⑪ 발칸제국의 민족적 독립 보장, ⑫ 터키 제국 지배하의 여러 민족의 자치, ⑬ 폴란드의 재건, ⑭ 국제 연맹의 창설”이다.

공표 이후 1년 뒤인 1919년 1월 18일 열린 파리평화회의에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평화 원칙 14개 조가 채택되었지만, 그 원칙이 유럽의 폴란드·불가리아·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민족문제 처리에만 적용되었고, 한국의 독립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당시 미국 유학을 중단한 채 기회를 엿보던 신익희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놓치지 않았다. 강화 원칙 안에 ‘민족자결’에 대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 민족도 독립운동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정 임규, 고우 최린, 고하 송진우, 육당 최남선, 정노식, 창석 윤홍섭, 공민 나경석 등과 비밀리에 독립운동의 방법을 토의한다. 아울러 당대 각계 수많은 명사와 은밀히 만나 전략을 수립하고, 천도교·기독교·불교 등 종교계가 발 벗고 나서도록 뜻을 모아낸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대변곡점 3·1 혁명은 이렇게 새싹을 틔운 것이다.

일본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한국을 공식 식민지로 삼고, 이후 35년간 식민 통치를 일삼는다. 한국인의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했다. 헌병 경찰을 통한 강압적인 통치를 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3·1 운동 이후 문화 통치라는 완화된 식민 정책을 시행했지만,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계속되었다. 일본어 교육을 강화하고, 한국어 사용을 제한하며 영혼까지 차별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현실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도 평범한 시민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갈 권리’, ‘배우고 싶을 때 배울 권리’, ‘시설에서 지역사회에 나와 살아갈 권리’,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 ‘아플 때 아플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을 대하는 현실 말이다.

거대한 공권력은 폭력을 동원해 장애인들을 짐짝처럼 끌어내고, 정치는 비문명이라고 갈라치며 혐오를 조장한다. 국가를 전복하려던 내란 세력은 계엄 당시 국회에 배치된 경찰력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회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폭력 단체로 낙인찍었다. 일부 종교인들은 장애인들의 지능이 앵무새 수준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뼈가 부러질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사람을 잡아서 두들겨 팬 일본 식민 지배 계급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보다 시위 방식만 부각하여 목소리를 빼앗아 버렸다.

이 모든 상황을 외부 세력이 아닌, 같은 땅을 딛고 사는 일부 한국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수많은 장애 시민들과 함께하는 동료들은 상실감과 충격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대에 함께 차별과 억압을 겪고 있는 ‘장애 민족’과 ‘동료’들은 스스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바닥을 기며 끝까지 외칠 것이다.

장애인 차별 철폐! 장애인 독립 만세! 장애 민족이여, 일어나라!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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