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지난해 7월 칼럼에 내가 추구하는 장애인의 삶이 몸의 치유와 존재의 해방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썼다. 학교에서 통합적 소통을, 병원에서 건강한 재활을, 자조모임에서 긍정적 자부심을 즐겁고 치열하게 배웠다. 당시에는 성취와 보람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활동을 이어간 역동적인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났을 때 비로소 안심하면서 체감할 수 있었다.

이번엔 다른 측면에서 내가 이룬 서사를 나누려고 한다. 근육병으로 인한 거부할 수 없는 건강의 상실과 인간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이별의 관점에서 담담하게 풀어보고 싶다. 지속적인 상실을 삶의 바탕으로 놓고 지내면 자연스럽게 이별에서 겪는 아픈 심정과 그리운 정서와 연관시켜서 생각하게 된다.
기억나는 날부터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다. 유년과 소년, 청소년 내내 병에 대한 한 줌만 한 이해와 미래를 향한 한 가닥 희망으로 하루에 낼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쉴 새 없이 몸에 닥쳐오는 상실과 가슴에 사무치는 무력 앞에서 허무와 불안이 일으키는 쓰나미에 속절없이 무너지곤 했다.
방황하던 내게 큰 영향력을 끼친 두 어른이 계신다. 첫 번째 분은 재활의학과 교수님이다. 미국에서 호흡재활을 공부하고 한국에 개척하신 선구자로 청소년 시절부터 주치의로 뵈었다. 두 번째 분은 청년 시기부터 세례 주시고 예배로 뵌 교회 담임목사님이다.
교수님께 시한부 선고를 듣기도 했지만, 운 좋게 알맞은 시기에 호흡기를 사용하도록 처방해주셨다. 30년 넘도록 진료와 입원 치료를 받은 덕분에 심각한 후유증이나 합병증을 적게 겪어서 듀센 근육병치고는 건강을 비교적 잘 유지할 수 있었다. 여러 과를 보면서도 나타나는 모든 상태와 증상을 제일 먼저 묻고 상의하는 명의로 늘 신뢰하고 의지하는 분이다.
목사님께 신앙적 가르침에 국한되지 않고, 멘토로서 위로와 영감을 얻은 덕분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영성을 바르고 깊이 있게 기를 수 있었다. 성경 중심의 풍요로운 예배를 들으면서 묵상과 기도를 실천할 의지를 다졌고, 어머니가 너로 인해 고단할 수 있지만, 너를 통해 용기와 사랑을 내심을 잊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힘을 불어넣는 분이다. 육체의 치유와 영혼의 성숙에서 늘 진심을 쏟는 스승 역할을 자처하셨다. 생의 의미와 삶의 가치에서 이정표와 나침반으로 나아갈 길을 터주시고, 두 분의 어른다운 발걸음을 지켜보면서 진지한 중심과 겸손한 태도, 즐거운 성장을 감사와 긍정으로 갖춰갈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교수님은 올해 은퇴하셨고, 목사님은 몇 해 앞두고 계신다. 그동안 내 건강과 평안을 정갈히 관리하면서 고유한 사유와 성찰을 성실히 가꿔 존귀한 인간 개인이자 동등한 민주 시민으로 살아남은 여정을 돌이켜보면 모든 계절과 나이마다 그날에 맞게 주어진 잔잔한 행복과 든든히 예비 된 축복에 둘러싸여 충만히 채워지고 충실히 인도되었음이 와 닿는다.
그런 다채롭고 섬세한 방식으로 상실과 이별은 나를 아프고 슬프게 만들어서 파괴하는 대신에 캄캄한 절망과 막막한 불행을 온전히 끌어안는 절대적인 희망과 사랑으로 재창조했다. 건강의 상실이 담백한 형태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도록 이끌고, 관계의 이별이 진솔한 형식의 공감과 이해를 이루도록 도왔다.
두 어른은 현역에서 물러나도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아 기여하실 게 확실하다. 그리고 나 역시 근육병으로 남은 근력과 기능을 더 잃더라도 나름대로 대안을 강구하고 지원을 요청하면서 주님 부르실 날까지 신앙을 가꾸며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해 창작하고 나눌 거라고 확신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