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처음부터 배웠던 초심을 유지하고 기본자세를 제대로 갖추었다면 잘 안 보이더라도 정확하게 원하는 부위를 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작이 작고 세밀해질수록 그만큼 더 ‘보려는’ 경향이 생긴다.
지난 주에 검도 승급심사를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받았던 승급심사 중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승급심사는 ‘큰 동작’으로 머리치기를 하고 연격을 한 뒤, ‘작은 동작’으로 머리, 손목, 허리를 차례로 두 번씩 치는 것이다. 그런데 큰 동작과 달리 작은 동작은 죽도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가 치는 게 아니라 스냅으로 치기 때문에 자세가 너무 익숙하지 않았다.
솔직히 승급심사 전 마지막 검도 수련 때 심사처럼 관장님을 상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심사를 받으러 가는 날에는 마음속으로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기적이 일어나서 눈이 잘 보이게 된다는 게 아니라, 관장님이 알려주신 자세를 몸과 죽도가 기억하고 완벽하게 머리부터 손목, 허리까지 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작은 동작으로 하는 두 번의 머리치기도, 손목치기도, 허리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치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호구(머리)를 치기 위한 거리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허공으로 죽도를 휘두르고야 말았다. 아직 뒤에 손목이랑 허리치기 동작이 남았는데 두 번이나 죽도가 허공을 가르고 호구의 철을 치는 느낌이 없자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손목치기를 할 때는 저시력으로 시각장애가 있으니까 심사를 볼 때 ‘장애인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할걸 그랬나 생각했다. 심사 때 상대방이 입은 도복은 네이비색이고 장갑은 검은색이다. 손목치기를 할 수 있게 손목을 내밀었는데, 도복의 소매인 네이비색과 장갑의 검은색 중 검은색 부분을 치면 되는데, 안그래도 호구를 착용하고 있는 기자의 시력으로는 어디가 도복인지, 손목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이 도복을 흰색으로 입으면 도복 흰색 소매와 장갑의 검은색을 그나마 잘 구분하고 손목을 칠 확률이 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심사 전날까지 상대방은 흰색 도복을 입고 오게 해달라고 건의할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눈으로 ‘보면서’ 치려고 하면 기자의 고개도 따라서 숙여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세만 정확하게 한다면 굳이 ‘보지 않아도’ 장갑을 낀 손목을 정확하게 쳤을 것이다.
허리치기를 할 때는 호갑을 착용한 상대의 허리를 치면 된다. 그런데 이 역시도 기자가 눈으로 ‘보면서’ 치려고 하는 고개를 숙인 자세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호갑과 도복의 색깔도 기자가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서 정확하게 ‘허리’의 위치를 눈으로 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두 번의 허리치기 모두 호갑이 아닌 허벅지 부위를 치는 대참사를 만들어냈다. 고개가 숙여지면서 덩달아 죽도도 아래로 내려갔던 것이다.
심사 후 가졌던 첫 수련에서 관장님과 심사에 대한 후기를 나누었다. 기자는 ‘잘 안 보여서’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했는데, 관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기자의 검도에 임할 때 ‘초심’이 사라졌다고. 눈으로 보면서,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검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마음이 무너지면서 자꾸 보면서 하려는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거기에 따른 잘못된 자세가 나왔다는 것이다.
관장님의 말씀에 충분히 공감한다. 이야기를 나눈 후 임했던 수련에서 기자의 자세가 얼마나 많이 흐트러져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까.
승급심사의 급수가 올라갈수록 동작도 어려워지니까 앞으로가 걱정된다. 자세를 잘 잡으면 상대와의 거리를 잘 가늠해야 하고, 거기에서 정확하게 치거나 치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동작이 작고 세밀해질수록 그런 부분들이 더 요구되는데, 그럴수록 기자는 잔존시력으로 더 ‘보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면서 애써 잡아둔 자세까지 무너졌다.
기본동작을 다시 수련하면서 원점으로 돌아왔음을 느낀다. 매일매일 기본동작만 수련해서라도 언젠가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고개를 똑바로 세운 채 원하는 부위를 자연스럽게 죽도로 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날이 오면 좋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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