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아내는 예상했던 것보다 운전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다. 복잡한 주차장에 차를 반듯하게 세워 놓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지만, 주행만큼은 초보 티를 벗어 가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족의 도전은 난도가 높아지고 이동 범위도 하루하루 넓어지고 있다. 시 외곽의 카페도 들러보고 지방에 있는 지인의 집도 찾아간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던 드라이브스루 매장 경험도 해 봤고, 주유도 세차도 성공했다.
모든 경험이 초보 운전자인 아내에게 처음인지라 약간의 긴장감과 재미난 실수들이 함께하지만, 크게 실패하거나 특별히 잘못된 적은 없다.
주유 에피소드도 그 중의 하나인데 아내는 무연 휘발유와 경유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못하고 있었다. 신중한 성격이라 다른 글자가 적힌 주유구의 차이를 의심하고 다시 확인한 후에 정상적인 주유를 하긴 했지만, 아내 아닌 다른 초보 운전자들은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셀프 주유소도 많은 편이라 우리도 리터당 가격이 저렴한 그곳을 자주 방문하는데, 경유 주유기와 휘발유 주유기는 적힌 글자만 다를 뿐 주유통의 모양도 주유기의 형태도 거의 비슷하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차량에 적합하지 않은 연료를 넣는 일은 없겠지만 잠깐의 착각으로 낭패를 보는 일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확률적으로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차량에 적합하지 않은 연료를 넣었을 때의 결과가 치명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주유구와 주유기의 모양이 모두 동일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종류의 연료가 해당 차량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데 굳이 똑같은 모양으로 기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주유구나 주유기의 모양과 크기를 연료에 따라 다르게 만들었다면 혹 착각을 하더라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어릴 적, 전자제품을 사용하던 어른들이 전압은 다르지만 플러그 모양이 같아 기기를 착각하고 콘센트에 꽂았다가 기기가 폭발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 모양과 크기도 그렇게 같을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220 V와 110 V의 플러그 모양이 다르거나 어떤 콘센트에 꽂더라도 자동으로 변압되는 시스템으로 대부분의 기기가 변화했다.
주유 방식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같은 모양이 나열된 것을 질서 있다고 말하고 무의식적으로 크기와 모양이 같은 물건들을 줄 세우는 것을 추구한다.
스킨과 로션도, 설탕과 소금도 반드시 같은 용기에 담겨 있어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지만 대부분 같은 용기에 담겨 있으므로 인해 때때로 실수를 유발한다. 샴푸와 린스가 그렇고, 헤어스프레이와 살충제를 착각하는 일도 본 적 있다. 보기에 좋고 제작하기에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긴 하겠지만 실수했을 때의 손해를 생각하면 다르게 만드는 것이 몇 배는 더 나은 선택이다.
자동 변압이 가능한 전자기기처럼 주유구에 주유기를 삽입하면 자동으로 차량에 적합한 연료가 주입된다면 모양이 같은 것이 좋겠지만,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 다른 모양 다른 크기의 주유기가 아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입 모양이 서로 다른 두루미와 여우에게 같은 모양의 그릇을 내놓는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때때로 우리에겐 같은 모양보다 다른 모양이 필요하다.
식탁에 둘러앉은 모든 이가 같은 모양의 잔과 같은 크기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은 보기에 좋을 수 있지만 나처럼 시각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내용물이 깊게 담길 수 있는 볼이 편리하다. 그것은 꼭 장애 때문이 아니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다.
같은 모양, 같은 방법으로 누구에게나 편리하게 보편적 배려가 제공될 수 있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항상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각자에게 맞는 다른 모양의 서비스가 필요하다.
다수의 학생들이 태블릿과 터치팬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더라도 일부 상황에서 불편하다면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점자교과서가 제공되는 것이 나을 수 있고 포크와 나이프로 다른 이들이 품위있는 식사를 즐길 때 나에게는 비닐장갑 하나를 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다른 크기, 다른 모양의 옷을 입고 있다. 각자에게 그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른 연료가 필요한 차량이라면 다른 모양의 주유구와 주유기를 만드는 것이 안전하다. 용도가 다른 물건이라면 모양이 다른 용기에 담는 것이 효과적이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로 줄 세우는 것이 항상 질서있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이라도 각자가 가진 상황이 다르다면 다른 모양의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모두 행복한 길일 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