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사람 중에 청각장애인만 무슨 상황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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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내 전광판 사진
지하철이 고장나서 지연되는 상황이 안내방송으로는 상세히 안내되어도, 전광판에는 자세하게 지연되는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경우 청각장애인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박관찬 기자
  • 지연되는 상황 안내방송뿐만 아니라 문자도 꼭 발송해야
  •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의 정보접근에 대한 고민 필요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청각장애가 있는 혜민(가명) 씨는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이하 동대문역)에서 5호선을 타는 장소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지하철이 오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혜민 씨의 뒤로 줄을 서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갔지만, 20분이 지나도록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좌우의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하는 모습을 본 혜민은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현재 상황을 알리고 무슨 상황인지 동대문역에 문의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이 곧바로 역에 전화해보고 혜민 씨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왕십리역에서 지하철이 고장나는 바람에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혜민 씨는 “아마도 당시 지하철이 지연되는 상황을 안내방송으로 알려줬을 것 같은데, 청각장애인은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며 “탄핵 집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상황인데, 왜 지하철이 안 오는지 저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지하철 5호선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곳에는 따로 전광판이 있지만, 당시 지하철이 지연되는 상황을 자세히 전광판으로 안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안내방송 외에는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청각장애인이 알기 어렵다.

혜민 씨는 “요즘 집회가 자주 열리다 보니까 어느 역은 무정차로 지나간다는 내용의 안전문자를 종종 받게 된다”면서 “그런 내용 못지않게 지하철이 고장나서 지연된다는 내용도 문자로 꼭 발송해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의견을 냈다.

최근 경북 지역에서의 큰 산불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정보접근’과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불이 났는데 청각장애인이 화재경보 소리를 듣지 못해 대처가 늦는다거나, 휠체어 이용자가 지진이나 화재 상황에서 계단으로 인해 대피가 늦어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혜민 씨는 “특히 갑자기 발생하는 재난은 장애인이 대처하기 더욱 어려울 수 있다”면서 “각 지하철이 고장나는 상황도 마찬가지로 안내방송만으로 그치지 않고 청각장애인처럼 ‘소리’에 접근이 어려운 교통약자를 꼭 생각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확인해 본 결과, 혜민 씨가 동대문역에서 5호선을 탑승하려고 했던 3월 21일 오전 9시 20분경에는 아무런 안내 문자도 발송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지하철 탈선으로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고, 문제가 해결되어 정상 운행되고 있다는 문자가 발송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대처다.

혜민 씨의 부탁을 받고 동대문역 측에 전화로 당시 상황에 대한 문의를 했던 지인은 “20분이 넘도록 지하철이 안 오고 사람들만 계속 늘어나는데 얼마나 걱정하고 궁금했을까 싶더라”면서 “20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만큼, 이런 지하철이 고장나는 상황이 생기면 꼭 안내문자라도 발송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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