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장애정상회의, 새로운 국제적 논의 플랫폼으로 부상
- DiDAK, 글로벌IT챌린지·접근성 사례들며 디지털리터러시와 국제협력 강조
- 3차 정상회의 성과, 한국 정부와 장애계 숙제로 남아!
지난 4월 2일과 3일, 독일 스테이션 베를린(STATION Berlin)에서 ‘2025 세계장애정상회의(Global Disability Summit, GDS)’가 개최됐다. GDS는 정부, 다자기구, 민간,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체이다. 2018년 영국 런던과 2022년 노르웨이 오슬로(비대면)에 이어 세 번째 정상회의다. 앞서 1일에는 ‘시민사회포럼’이 열렸다.
이번 3차 GDS는 독일과 요르단 정부, 국제장애연합(IDA)이 공동 주최했으며, 149개국 1074개 기관 3000여 명이 참가했다. 한국에선 ‘KOICA’의 지원으로 국제개발협력연대 장애분과(DiDAK) 사무국인 한국장애인재활협회(RI Korea)를 비롯해 밀알복지재단, 엔젤스헤이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컨텐츠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연맹 등 7개 단체와 오준 KOICA 자문위원장(전 UNCRPD 당사국회의 의장)과 김미연 UN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다. [더인디고]는 베를린에서 열린 사흘 간 회의 성과와 과제를 RI Korea 보도자료를 기반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더인디고] 이번 세계장애정상회의에 참가한 DiDAK 회원 단체들은 주제세션 발표와 좌담회 등을 통해 ‘포괄적 접근성과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알렸다. 지난해 12월, ‘접근권을 헌법적 기본권’이라고 한 국내 대법원 판결, 산업 등 전 분야로 확대되는 ‘유니버설디자인’의 중요성, 그리고 디지털시대의 접근성과 양질의 일자리 등은 앞으로 국제개발협력 활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3차 정상회의 플랫폼과 성과는 국내 이행 문제와 더불어 향후 장애계가 국제협력 및 정책 활동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공적 의사결정 참여 역시 ‘접근성’이 전제 돼야!
관련해 오준 코이카 자문위원장은 3일 열린 ‘공직과 의사결정에서의 장애인 참여와 대표성’이라는 주제세션에서 “정치와 공직에 대한 장애인 참여를 대폭 강화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접근성(물리적, 제도적, 인식적)이 보장되어야 한다”면서 “장애 당사자 관점에서의 물리적 접근성, 여성의 경우와 같이 사회적 약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적용, 국회의원 비례대표 장애인 할당 등 제도적 접근성,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차별적 인식 해소 등 사회적 통합을 위한 인식적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10년 전 유엔 주재 한국 대사로 활동 당시의 일화를 들었다. 오 위원장은 “당시 20억 달러를 들여 유엔 본부 전면 개보수를 했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두 명의 동료 대사는 모든 회의실 책상에 설치된 3개의 버튼(지지, 반대, 기권)에 점자 표시가 부착되어 있지 않아 비밀투표에서도 옆 사람의 도움 없이 제대로 투표할 수 없었다”고 언급한 뒤, “이는 건물 전체는 뉴욕시 건축법에 맞추어 장애 친화적 요건들을 적용했지만, 유엔 본부 자체가 국제회의를 위한 장소이고 대표단 중에는 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는 기본적 대전제를 고려하지 못한 결과”라며 “그래서 장애 당사자 관점에서의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이카가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장애인 국회의원 등을 위한 국회 디지털 접근성을 강화하고 공공 의사결정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한 국제개발사업을 하는 것은 좋은 예가 된다”고 덧붙였다.

■ 디지털 시대는 장애인에게 위기인가, 사회참여와 일자리 창출의 기회인가?
3일, 코이카-재활협회(RI Korea)가 공동 주최한 ‘좌담회(fireside-chat)’에서는 김미연 위원장과 이리나 RI Korea 대외전략국장, 인마쿨라다 포레로(Ms. Inmaculada Porrero)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장애 및 포용 선임전문가이자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스테판 트로멜(Mr. Stefan Tromel) 국제노동기구(ILO) 장애 선임전문가 등이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와 양질의 일자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LG가 매년 각 국가를 순회하며 주최하는 ‘글로벌장애청소년IT챌린지’ 사례를 통해, 심화되는 디지털 격차와 이에 따른 ICT를 통한 사회참여 , 나아가 노동시장에서의 디지털 포용 및 그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김미연 위원장은 “장애인권리협약 제27조(노동과 고용)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할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AI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이 접근 가능해야 하고, 장애인이 직장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인사를 전하며, “새로운 시대에는 문해력을 넘어 디지털리터러시 강화가 필수인 사회”라고 강조했다.
포레로 위원은 ‘유럽 접근성 법’을 예로 들면서 “유럽에서 제조하거나 유럽에 수출하는 모든 제품은 디지털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며, “이에 따라 장애인이 기본적으로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통해 고용뿐 아니라 누구나 즐기는 게임 등 일상생활에서의 향유 또한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디지털 포용성을 강조했다.
트로멜 선임 전문가는 “디지털시대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언급한 뒤, “기본적인 접근성이 부재할 시 디지털 격차는 심화되는 위험을 야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관련 고용시장의 확대로 인하여 디지털 기술을 획득한 장애인의 고용이 증가할 수 있다”며 “그런만큼 디지털 역량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암만-베를린 선언, 이후가 관건… 국내 이행 방안 구체화와 해야!
2018년부터 세 차례의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DiDAK 등 국내 장애계가 정상회의 무대에서 한국의 경험과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국내 장애계의 국제협력 활동 범위와 역량은 그만큼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다만, 시민사회 및 정부 차원 결의문의 성안 과정까지 참여하는 것은 앞으로 국내외적으로 어떤 역할과 책임을 나눌 것인가의 문제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결의문이 비록 법적 효력은 없더라도 한국 내 이행 방안을 구체화하되, 빠를 수록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리나 국장은 “ODA예산 삭감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럴수록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결의문이 국내 차원에서 이행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고 지속적인 이행 촉진이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장애주류화를 강화하기 위해선, 각 부처 혹은 분야별 일반 예산 내에서 장애인이 포함될 수 있도록 세부 내용을 보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사자나 단체 등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역량강화 프로그램’과 동료그룹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의 참가를 계기로 국내 장애인단체들의 국제협력 활동의 다양화와 한국 정부의 책임성이 기대된다.
그동안 장애인단체 국제협력은 세계재활협회(RI)와 국제장애인연맹(DPI) 등 국제 민간조직 기반 활동이거나, UN 장애인권리협약 제정 과정과 모니터링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 회의와 달리, 정상회의는 포괄적 국제협력 중심으로 공유국과 수여국, 국제기구,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국제회의 메커니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인다.
김동호 한국장총 정책위원장은 “이번 회의는 모든 장애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높은 수준의 대표성을 가지고 대규모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통상적인 장애 관련 국제회의와 성격을 달리했다”면서 “앞으로 국제적인 의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논의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유럽에 이어 요르단, 카타르 등 중동국가와 시민단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반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정부나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관심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DiDAK 등 장애계–시민사회가 향후 전략적 연대와 국내외 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갈지도 관심이다.
DiDAK은 지난 2015년 장애분야 ODA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RI Korea와 DPI Korea가 중심이 돼 결성한 연대단체다. 지난 2018년 코이카와 ‘장애포괄적 개발협력사업 이행 및 성과관리 가이드라인’ 제정 등에 앞장섰지만, 이후 코로나 등으로 주춤했다. 하지만 2023년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면서 현재 장애인단체와 공공기관 및 기업 등 12개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협약이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그리고 암만-베를린 선은 등을 토대로 국내에서 이행할 과제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2028년까지 모든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의 15%는 장애포괄개발을 증진할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한국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호한 15%’ 역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도 마찬가지다.
한편, DiDAK 회원단체들이 이번 GDS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KOICA의 지원이 컸다. KOICA는 장애인단체 등의 국제역량과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앞서 열린 아시아장애정상회의(2.14~15) 참가도 지원한 바 있다.
정은주 코이카(KOICA) 디지털보건사회개발팀 과장은 “한국 장애단체,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DAK 장애분과 구성원들이 GDS 참석을 계기로 글로벌 장애의제 형성에 기여하고, 장애포괄적 개발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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