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기자는 최근 수원시 세류동 쪽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세류역에서 영등포역 인근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시청각장애가 있는 기자가 누군가의 지원없이 혼자서 출퇴근할 수 있는 옵션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세류역에서 1호선을 타고 영등포역까지 한방에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류역에서 수원역까지 1호선을 탄 뒤,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까지 가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안을 감안하면 기차를 이용하는 게 좀 더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수원에서 영등포로 가는 기차는 대개 부산 등 지방에서 올라오는 경우다 보니 기차시간이 지연되는 경우와 같은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이사 후 첫 출근은 지하철을 타고 한방에 영등포까지 가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너무 붐빌 것을 감안해 일부러 일찍 출발해 오전 7시에 세류역에서 1호선을 탔다. 다행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지하철 안의 천장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다음 역이 무슨 역인지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1호선은 세류역에서 영등포역까지 16개역을 지난다. 하나하나 역 수를 세기에는 중간에 헷갈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모니터의 글씨를 보는 게 가장 편하다. 하지만 안양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이 타기 시작하면서 모니터 위의 글자를 기자의 저시력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게 되었다. 5호선이나 9호선처럼 다음 역이 무슨 역인지 알려주는 모니터가 스크린도어 바로 위에 있으면 확인하기 편할 텐데, 아쉬움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지하철이 멈춰서 사람들이 내리고 탈 때마다 카카오지하철 앱을 켜서 현재와 다음 역이 무슨 역인지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16번째 역이라고 생각된 지점에서 나비콜바우처 앱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즉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나비콜바우처 앱을 열면 현재 위치가 출발지로 뜨기 때문에 이 앱을 활용해서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 기자가 확인하고 있는 역과 일치하는지 비교해보기 위함이었다.
16번째 역은 신도림역인데 나비콜바우처에 뜨는 현재 위치도 ‘신도림’으로 시작하는 빌딩 이름이었다. 헷갈리지 않고 역 수를 잘 세알린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신도림역 바로 다음역, 즉 17번째역이라고 ‘생각했던’ 영등포역(이라고 믿었다)에 내렸다.
그런데 세류역에서 1호선을 탄 후 그 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지난 여의도에서의 탄핵집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바람에 지금 내린 지하철이 무슨 역인지 제대로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어딘가로 출근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휩쓸리다시피 하며 사람들이 가는 방향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얼마 정도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차’ 하는 느낌이 왔다. 그동안 많이 오갔던 영등포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역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서둘러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1호선은 현재 있는 역이 무슨 역인지 기자가 많이 이용했던 5호선이나 9호선처럼 큼직하게 적혀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 자리에 서서 다시 나비콜바우처 앱을 켰는데,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도림역’이었던 것이다. 얼른 지하철을 내렸던 곳으로 올라가서 다시 지하철을 탔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영등포역에서 내렸다.
그래도 무사히 영등포역에 도착한 걸 감사히 여기며 복지카드를 꺼내 개찰구에 찍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찍어도 개찰구를 막고 있는 철봉(기자는 그렇게 표현한다)이 앞으로 밀어지지 않는 거였다. 당황한 마음에 개찰구 한쪽으로 가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개찰구 쪽으로 가서 다시 찍어봤지만, 인식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세류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 개찰구에서 카드를 분명히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찍히지 않았던 것이다.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면 기자가 개찰구를 통과하려고 할 때 개찰구 양쪽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기자의 진입을 막아서 다시 찍으라는 신호라도 보내주면 좋았을 텐데, 기자가 그냥 지나가도록 개찰구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세류역에서 지하철을 많이 타야 할 텐데 걱정이다.
다행히 출근시간대라서 영등포역 개찰구 주변에 역 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개찰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가장 희망적인 요소는 신도림역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는 사실이다. 신도림역 바로 다음역이 영등포역이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난 다음 역에 내리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쉬운 점은 1호선의 스크린도어 위에 다음 역이 무슨 역인지 알려주는 모니터가 없다는 것과 세류역의 개찰구가 카드 인식을 알려주는 ‘신호’가 부실한 점, 1호선은 각 역마다 현재 있는 역이 무슨 역인지 벽에 큰 글씨로 적혀있지 않은 곳이 많다는 점이다.
수원에서 서울로의 첫 출근 신고식 제대로 한 것 같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