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휠체어 유럽여행기] ① 비행기 안에 앉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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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권 ©이미선
▲호주 여권 ©이미선

[기고 이미선] 나에게 유럽여행은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어쩌면 약간은 우쭐해지는 그런 부류의 느낌을 주기 위한 여행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남편의 우울증이 극에 달하고 호주의 VAD(Voluntary Assisted Dying)에 이미 확인 도장을 받은 상태라 오늘 전화를 걸면 당장 내일이라도 달려올 듯 설쳐대는 그곳 직원들의 상태를 일찌감치 확인했던 터라, 소위 남편의 미친 듯이 널 뛰는 그의 우울 상태를 피해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남편이 하루라도 더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제 거의 6년째 접어드는 척수소뇌변성증 환자다. 연애할 때만 해도 거의 표가 나지 않던 그의 걸음걸이가 2년쯤 지나니 마주 오던 어린애들이 고개를 돌려 다시 쳐다볼 만큼 심해져 버렸다. 환자마다 다르겠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속도로 병마가 덮치고 있다. 그나마 이곳 성인들은 배려심이 많아 우리를 당황하게 할 만큼 뚫어져라 쳐다본 적은 없다. 술 취한 듯 걷는 그를 그냥 무심히 지나쳐 갔으니 그나마 환자나 환자 가족에게는 안심이 된다. 하긴 우리가 사는 이곳은 그렇게 많이 걸을 일이 없다. 다 차를 타고 이동하고 쇼핑센터에서는 카트를 밀다 보면 그의 걸음걸이가 별로 표가 나지 않는 장점도 있다.

혹시나 가지 않겠다고 할까 봐 가슴을 졸이며 유럽여행을 물었는데 남편은 의외로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의 결심은 마지막 여행, 추억을 선물하기 위한 배려였다.

2025년 3월 14일, 천신만고 끝에 우리는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난 천신만고의 뜻을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나이쯤 되면 이런 사자성어를 많이 쓰게 된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들 모진 인생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눈물, 콧물 빼가면서 살아가니까.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까지 내가 유럽여행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어려움들이 이 사자성어에 적합하리라 생각한다. 비행기 예약 후 항공사에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해서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하고 또 확인하고. 숙소를 예약하면서 계단이나 턱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중교통 시스템을 검색하고 때로는 전화를 직접 걸어 확인도 했다.

▲전동 휠체어
▲전동 휠체어 ©이미선

남편의 휠체어는 수동식이거나 작은 전동이 아니라 정확히 198kg의 휠체어다. 물론 많은 휠체어 이동 보조 장치들이 350kg까지라고는 하지만 198kg의 휠체어는 항공사들도 경험이 많이 없는지 여러 부서를 전전한 끝에 서비스 확인 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이 확인 메일도 돌아오는 같은 항공사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너무 무거운 탓에 또다시 자기네들끼리 연락을 취하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한 시간 동안을 다른 승객들의 체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어야 했다. 물론 남편은 그나마 휠체어에 앉아 있었으니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항공편에서는 예약된 비행기가 아니라 다른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우리는 항상 최소 5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고 체크인 게이트 번호가 뜨자마자 체크인하는 편이다.

비행기에 앉는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국으로의 비행은 그래도 이제 베테랑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작은 전동 휠체어를 가져갔기 때문에 배터리를 빼서 기내 가방에 넣으면 별문제가 없었다.

남편은 이제 거의 혼자서 걷기가 어려운 상태고, 손을 잡아준다 해도 글쎄 한 5m도 못 걸을 정도다.

그래서 이번 유럽여행에는 꼭 좋은 전동 휠체어를 가져가겠다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나도 가끔 그의 전동 휠체어를 몰아야 한다. 엉덩이를 쭉 빼고 발을 바퀴에서 멀어지게 한 뒤, 손을 뻗어 운전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전동 휠체어가 얼마나 예민한지 살짝만 건드려도 낭랑 18세처럼 반응한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예 휠체어 시트에 앉아서 주차한다. 휠체어 주차도 할 수 있고 동시에 혼자서도 걸을 수 있다는 묘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휠체어만 타야 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이 안 된다. 남편은 휠체어 운전을 정말 잘한다. 이 큰 전동 휠체어는 작년 4월경부터 소유하게 되었는데 물론 1년의 시간도 있었지만 앞으로 휠체어가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 아닐까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이 글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사는 이미선(misunyi0518@gmail.com) 님이 지난 3월, 척수소뇌변성증으로 투병 중인 남편과의 자유여행을 담은 후기입니다. 비행기에서부터 도시 혹은 국가 간 기차와 시내버스 이용, 숙소 예약 등의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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