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파면의 봄, 새로운 장애정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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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 현장
▲지난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윤석열의 파면을 결정했다. ⓒ 유튜브 장면 재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 문형배 소장 권한대행은 나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122일, 국회의 탄핵소추가 통과된 후 111일만에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는 윤 전대통령의 탄핵사유로 모두 다섯 가지 근거를 적시했다. ▲계엄 선포,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포고령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대한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 등이다. 헌재는 다섯 가지 사안들을 윤 전대통령 본인의 의견과 증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탄핵에 대한 헌법 및 법률 위반의 중대성 등을 평가한 후 전반적인 행위가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일부 재판관들의 보충의견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이들 보충의견들도 탄핵 사유에 대한 이의제기라기보다는 절차의 적법 요건이나 법적용의 엄격성 여부 등이어서 법리적 논쟁이 거의 없는 8명 전원일치 파면 결정이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지난해 12월 3일. TV를 통해 목도했던 윤 전 대통령의 비장한 표정과 음성으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던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처음에는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을 운운하기에 북한의 침공이 일어난 것이라고 짐작하고 머리칼이 쭈뼛 설 만큼 두려웠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방송 어디에서도 북한의 침공을 보도하거나 소식을 전하는 곳은 없었다. 가리사니가 잡히고 나니 TV 화면에 등장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사뭇 비장했지만 황당했고, 망국의 원흉이라는 반국가세력에 대한 증오는 치열했지만 그 대상의 모호성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이어 국회 상황이 각 방송사에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제1호 포고령이 박안수 계엄사령관 명의로 발표되었고, 헬기를 통해 계엄군이 국회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국회 본회의 청사 내부로 진입하려는 계엄군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국회 사무처 직원들 및 국회의원 보좌관들 간의 몸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와중인 다음날 새벽 01시 무렵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그러자 계엄군은 국회 청사를 철수했고 3시간이 지난 04시 26분 윤 전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이로써 약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은 완전히 종료되었고,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진행되었다. 탄핵소추안은 12월 7일 한 차례 부결되었고, 일주일 후인 12월 14일에야 비로소 가결되었고 대통령의 업무가 마침내 종료되었다.

비상계엄 선포 후 해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그리고 파면까지 4개월여 동안 나는 그동안 굳건하다고 믿어의심치 않았던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의 균열을 목도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 과정을 매일 보면서 현직 대통령의 거짓말과 이를 옹호하는 세력들의 허황한 주장에 고소를 금치 못했다. 계엄령을 통해 계몽되었다는 괴이한 변론이 아무렇지도 않게 헌법재판소에서 발표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문득 깨달았다. 1960년대 전후 세대로써 소위 엘리트로 나고 자랐던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세력들의 과도한 선민의식이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불리를 무력을 통한 통치로 대체하려는 욕망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상층부에 군림하면서 대화 대신 요구로, 타협 대신 일방의 명령으로만 살아왔던 이들의 행태는 그래서 가히 엽기적이었다.

초겨울에 시작된 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는 봄이 오고서야 마침내 끝이 났다. 4개월여 동안 나는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이 야당이었음을 알고 실소했고, 매주 광화문과 여의도를 점령했던 일군의 극우세력들의 폭력적 준동에 아연했다. 하지만 놀라움과 비웃음만으로 그동안 겪었던 깊은 내상의 고통이 치유되기에는 만무할 터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상계엄 당일 국회를 지킨 시민들과 부여된 임무를 미룬 군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다시 봄은 온다.

유난히 혹독하게 추웠던 지난 겨울을 보내고 이제 다시 새로운 대통령을 찾기 위한 민주주의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파면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장애계는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이행에 대한 명확한 최종 평가도 하지 못한 채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으로 이어졌다. 당시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대해 장애계는 ‘내실화’, ‘안정화’, ‘단계화’ 등 구체적인 목적성이 모호한 계획이었다는 지적만 했을 뿐 그나마 계획의 이행 평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흐지부지되었다. 어쩌면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도 이행여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제7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으로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예로 지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부가 새롭게 내놨던 유일한 장애정책인 개인예산제는 법적 근거 마련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시범사업 중이어서 새 정부 이후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 조차 불분명하다.

물론 그동안 장애정책의 발전 방향은 미흡하나마 꾸준하게 점진적 발전을 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생각은 없다. 이제 절반 남짓 진행되었을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또한 매년 예산을 통해 장애정책의 긍정적 변화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6월 대통령 선거 후 당선된 대통령이 새롭게 구성하게 될 제7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의 방향성을 어느 때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서의 ‘약자 복지’라는 시혜적 정책 비전 대신 인권 중심의 실효적인 정책과 이행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다. 특히, 자연증가분에 의한 예산 증가가 아닌 과감한 재정 투입, 폭넓은 정책 대상 확대와 그에 따른 인프라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달체계가 아닌 장애당사자들에 대한 촘촘하고 두터운 직접 지원을 늘려 정책의 체감도를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감한 변화만이 길 위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고자 했던 수많은 시민들의 간절함이 실현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새로운 봄이 올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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