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혼자 있을 때 화재경보가 울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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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경보기 사진
청각장애인은 화재경보가 울려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화재경보를 소리가 아닌 시각으로 알려주는 방법이 있지만, 시청각장애인은 이를 볼 수도 없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며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지인들이 웅성거리며 걱정하는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하는 말이 기자의 핸드폰에 켜놓은 음성인식기능 어플로 변환되어 나왔다.

“지금 화재 경보가 울리고 있어요.”

지인들과 함께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 건물 어디에선가 불이 나서 경보가 울린 건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뒤, 지인들과 식사를 마치고 기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사무실이 위치한 3층 복도에 소방관 두 먕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주황색 작업복과 헬멧, 호스 등 불을 끄기 위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자의 저시력으로도 금방 ‘소방관’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지인들에게 소방관을 봤다고 이야기했다. 지인들도 화재경보 소리로 인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속 사무실에 있는 동안 소방관이 들어와서 대피하라는 등의 특별한 안내가 없이 무사히 상황은 종료된 것 같았다.

그날의 일을 계기로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지인들과 함께 있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당시 혼자 있었다면 화재경보 소리조차 듣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기자는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는 문을 잠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무실 문은 방음을 한답시고 검은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밖에서는 확인이 어렵다.

사무실 문을 열면 바로 옆에 화재경보기가 있고, 그 바로 옆에 비상계단도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3층에서 화재가 일어났는데 경보소리를 듣지 못한 채 사무실에 계속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무실 문 바로 옆에 비상계단이 있다고 해도 대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라면 대피도 하지 못하게 된다. 사무실 안에는 창문이 있지만 열고 닫을 수 없는 구조라서 창문으로 대피는 불가능하다.

청각장애로 인해 화재경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신 시각적으로 화재경보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데 기자가 또 저시력이라서 시각적인 화재경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가지 감각기관에 장애를 가지게 되면 정보접근에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자는 저시력이라서 그나마 조금은 볼 수 있지만, 시력을 모두 상실하고 전혀 들리지 않는 시청각장애인이라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시각과 청각 대신 촉가이나 후각 등 다른 감각기관으로 확인하기에는 너무 늦을 수 있다.

해마다 크고 작은 재난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재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에 대해 고민이 깊어진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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