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순의 토크백] 돌봄과 보살핌 사이

112
▲배경 위에 “혼자가 아니야”라는 글이 쓰여 있다./사진=유금순 집필위원
▲배경 위에 “혼자가 아니야”라는 글이 쓰여 있다./사진=유금순 집필위원
▲유금순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금순 더인디고 집필위원

[유금순 = 더인디고 집필위원] 피는 꽃은 해마다 새롭고, 지는 꽃을 향한 아쉬움은 해를 거듭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배인 슬픔과 아쉬움이 느껴지면서 언젠가 스러져갈 나의 삶을 비추어 본다.

꽃이 눈에 들어오나 싶더니 이미 벚꽃은 졌고, 또 다른 꽃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피고 지고, 피고 진다. 봄이다가, 봄이었다가, 봄일 것 같은 계절은 어느새 여름을 닮았다.

1월부터 4월 초까지 만나본 활동지원사가 여러 명이다. 당장이라도 일할 것 같던, 낮에 만난 그녀들은 밤새 마음을 바꿔 어떤 사정이 생겨서 못 온다고 하였다. 나를 보조할 활동지원사는 가족원인 남편이 중증장애인이라서, 남편을 보조할 활동지원사는 그 배우자인 내가 중증장애가 있어서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레 겁을 먹는 듯했다.

4월까지 눈발이 흩날렸던 날씨만큼이나 새로운 활동지원사 두 명을 만나기까지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확실한 시간을 걷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나는 대전의 두 교육기관을 오가며, 활동지원사 표준반, 전문반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생은 활동지원사를 하고 싶거나, 일단 자격증만 취득해 놓고 언젠가 활용하려는 사람들이다. 개중엔 일단 교육은 받았으나, 필드에서 이용인 만날 용기가 없어서 끝내 안 하고 마는 경우도 많다고 얻어들었다. 그래서 새 활동지원사를 구할 때마다 교육받은 이 많은 사람 가운데 나와 맞는 그 한 명을 만나기가 이다지도 어려운가 보다 생각한다.

내가 겪는 장애는 불편할 때가 있지만,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는데, 장애는 불편이라고만 듣는 교육생도 있는 것 같다.

교육은 활동지원서비스의 실제로써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이용인으로서의 경험과 상황을 바탕으로 서비스 유형과 내용 등에 대한 이용인 시점으로 이뤄지곤 한다.

나로선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등록 교육기관 소속으로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일 년 내 교육 횟수가 몇십 번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장애인고용안정협회를 통하여 ‘장애인 고용 매니저’ 교육을 함께 받았던 몇 분 강사의 활발한 활동을 부럽게 지켜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장자리 강사인 나는 우선과 차선이 따로 없는 교육에 불러줄 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내겐 생계형 강사일 수 없는 신체적 사정도 있지만, 개인적인 홍보와 역량이 부족한 점도 있다.

1년여 동안 한 달에 대여섯 번의 활동지원사 교육을 하다 보니 어느 날엔 동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어느 날엔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때론 한의원이나 버스정류장에서 교육생이었던 그들을 만나게 된다. 허름한 행색에 민낯은 덜 부끄럽지만, 그런 예기치 못한 조우는 왠지 부담되고 불편해서 얼른 피하고 싶다.

활동지원서비스의 실제에서 시작된 교육은 장애이해와 직무윤리, 장애인자립생활과 보조기기의 이해까지 이어져서 장애를 무기 삼아 얕은 지식과 정보를 덧대어 그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여러 기능이 탑재된 나의 전동휠체어는 보조기기 시간에 첨단공학기기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고, 다양한 몸에 맞춘 보조기기의 기능이 충분하면 충분할수록 사용자 자립생활의 질이 좋아짐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남자 교육생의 비중이 높아지고, 다양한 연령층의 교육생을 만나게 된다.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변화의 작은 조짐 같아서 반갑다. 문제는 어떤 직장에서 퇴직한 후 그냥 한번 해보자는 식의 다소 가벼운 접근이다.

누군가의 삶이 걸린 이 선택은 식당 일보다 쉬워 보이거나, 시간과 업무의 유연성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시작되어선 안 될 것이다.

나는 작년 12월부터 원인 모를 두드러기에 이어 이석 증세를 경험 중이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먹었던 재활의학과의 진통제 외엔 딱히 복용 약이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치과 약에 이석증 약, 잦은 체기에 내과 약, 잔뇨감으로 인한 비뇨기과 약까지 시간차를 두고 먹는 약이 늘었다.

어떤 상황이든 각오하고, 수용하리란 결심과는 다르게 오랜 사람을 보내고, 새사람을 맞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를 꽤 받았나 보다.

어느 날 교육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교육생들에게 주말에 일해 줄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하였다. 내 거주지와 서비스 요구사항을 대략 설명하고, 일요일에 시급이 1.5배 가산됨을 알렸다. 그날 저녁 무렵에 교육기관 담당자가 관심을 보인 교육생이 세 명 있다면서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들은 교육 후 10시간의 실습을 마쳐야만 한다. 우선 4년간 나와 함께하는 선임 활동지원사와 상의하여 내 집에서 실습하도록 하였다.

첫 번째 실습생은 이용인인 내게 주목하기보다는 선임 활동지원사 옆에 붙어서 그에게 집중하였다. 신체, 가사서비스를 비롯한 보조기기인 전동휠체어 다루기까지 열심히 배우는 그의 모습에 실습 후 당장 이어질 서비스를 연상했다. 실습이 끝난 후에 선임 활동지원사와 실습생인 예비 활동지원사를 격려하는 의미로 점심 자리도 기꺼이 만들었다. 그러나 이틀 후 그녀는 출, 퇴근 거리가 멀어서 못 오겠다고 했다. 두 번째 실습생에게 전화해서 실습 후 정말 일할 것인지에 대해 확답을 받았지만, 그것만 믿을 순 없어서 다른 중개기관을 통하여 또 한 명의 예비 활동지원사도 만났다.

그 사이 아무 문제 없이 4년간 함께 해온 활동지원사는 새 활동지원사에 비해 자신의 업무가 많은 것 같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4년 동안 해달라는 대로 성실하게 보조해 줬던 그녀라서 늘 고마웠는데, 하필 새사람 맞이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 들은 그 말에 고마움이 반감됐다. 4년쯤에 찾아온 권태기일까, 외국인 활동지원사라 원활한 언어소통의 부족함 때문일까, 밤잠을 설쳐가면서 자기검열을 했다.

다섯 중개기관에 활동지원사를 부탁했으나, 빨리 구해주지 않아서 시간을 갖고도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교육한 활동지원사와 오랜 시간 기다려 매칭된 또 다른 활동지원사가 인연이 됐다. 마침내 4월 중순쯤에서야 낮에서 밤으로, 주중에서 주말로 이어지는 서비스가 자리잡힌 셈이다. 만나봤던 몇 명 중엔 어이없는 제안을 하거나, 돈은 벌어야겠는데, 일은 쉽게 하고 싶은 속내를 여과 없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전동휠체어 다루기와 섬세한 신체 서비스가 어려워서 못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받는 이와 제공하는 이가 뚜렷한 돌봄보다는 같이 사는 방법이자, 서로를 보듬는 보살핌을 받고 싶다. 이용인과 제공인력이라는 계약 관계이므로 조건을 충족시키는 틀 안에서 약속을 지키되 서비스의 소비자로서 존중받고 싶다.

나 이렇게 사노라고 재미있게 수다 떨고 싶어도 실제 삶은 끊임없는 타인과의 조율이요, 눈치 보기 같아서 좀 우울하다. 그럼에도 자고 나면, 말간 얼굴로 계이름의 ‘솔’ 톤으로 살 힘을 낼 수 있으니 감사하고, 좋다. 앞으로도 얼마간 돌봄에 관한, 활동지원서비스 이야기를 하게 될 듯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장애인권강사, 동료상담 및 사례상담가로 활동하였으며 2019년 대전 무장애 관광 가이드북(무장애대전여행)을 발간(5인 공저)하였습니다. 현재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이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소속 직장내장애인인식개선교육과 활동지원사 및 근로지원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실제 교육과 보수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