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미선] 런던에서 파리로 이동할 때는 Eurostar를 이용했다. 이등석의 가격으로 일등석을 이용하고, 동반인(carer) 좌석은 무료였다. 장애인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었다. 게다가 넓어서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도 내가 보아온 기차 중 최고였던 것 같다. 물론 일등석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우리는 에이전트가 아닌 Eurostar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매하고 장애인 서비스도 신청했다. 답신도 빨리 왔을 뿐만 아니라 아주 친절하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난 Eurostar가 이번 여행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방문하게 될 스위스에서의 장애인 할인 혜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다.
국가 간 이동이 이렇게 쉬운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고 기내식도 만족스러웠다. 내 생전 이런 호강을 다 하다니!
나는 짠순이는 아니다. 이 나이에 짠순이는 별로 명예스럽지 않다. 늙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난 그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늙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난 식당에서 절대로 음료수를 시키지 않는다. 음식이 아닌 음료를 그 비싼 가격으로 마신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슈퍼에 가면 그 가격의 3분의 1도 아닌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나를 완고하게 만든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란 영향도 있겠지만 난 원래부터 물을 잘 마시는 편이다. 내가 왜 물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느냐 하면 나중 로마에서 내가 왜 수돗물을 달라고 했는데 그것에 대해 요금을 지급해야 했는지 억울해서이다.
런던공항 장애인 화장실에 갇혔던 기억이 있던 나는 이번에도 화장실 문이 잠겨 안 열리면 어쩔까 좀 불안했다. 런던 공항에 있던 그 장애인 화장실은 약간 외진 곳에 있었다. ‘여기에 왜 화장실이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기다 다른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지 않고 오직 장애인 화장실만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다행히 우리가 도와달라고 소리칠 때, 공항 직원이 그 소리를 듣고 다른 곳에 이리저리 연락을 취하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문을 열려고 시도하고 해서 한 30분 정도 뒤에 문이 열렸다. 반 시간이었지만 난 무슨 이런 지랄 같은 상황을 다 맞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것도 장애인 화장실, 그것도 공항.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싶었다.
다행히 Eurostar는 화장실 냄새도 안 나고 참 좋았다. 우리는 그 안에 갇히지도 않았다.
파리는 정말 볼거리가 많았다. 눈 돌리는 곳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우리가 파리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난 파리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것은 파리 사람들이 좀 거만하며 영어에 능숙하면서 못 알아듣는 척할 거라는 것이었다. 자기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그렇다는…. 물론 내가 연식이 좀 되다 보니 내 정보나 선입견은 이미 구닥다리다. 하지만 내가 만난 파리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했고, 그들은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영어로 소통하기는 어려웠다. 파리 다음으로 갔던 스위스와는 정말 달랐다. 스위스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스위스 정부는 국민들이 영어나 다른 외국어 배우는 것을 권장하며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파리에서는 6일 정도 머물렀는데 매일매일 마음이 조급했다. 너무 볼 게 많아서 뭐부터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 박물관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고 화려했다. 파리 사람들은 조상 덕을 톡톡히 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파리 사람들은 어찌 저리도 멋진 건물을 지었단 말인가?

난 베르사유 궁전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건물 안이 정말 화려하다는, 온갖 금으로 치장했다는 글을 읽은 다음에 더 그러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로마 바티칸 성당 안 화려함에는 견주지 못할 거 같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우리는 결국 화장실을 찾지 못했다. 직원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정원사들이 몇 명 보였는데 그 정원사들도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참으로 여기 사람들은 어찌 그리도 방광의 힘이 강한지 부러울 따름이다. 남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결국 몸을 약간 숨길 수 있는 나무 하나를 찾은 뒤 항상 휴대하던 소변 통을 꺼내어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그곳은 우리만 실례하던 지점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 명이 사용했는지 소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추운 날씨에 말이다.
파리에서도 우리는 버스만 이용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역시 안전한 방법이다. 에펠탑 근교 어딘가에서 여러 종류의 빵을 샀는데 내 평생 먹어본 빵들 중 최고였다. 내 입맛에 딱 맞는 빵이었다.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 그야말로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아마도 그 빵 가게가 맛집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런던에서처럼 우리는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다니며 파리를 구경했다. 파리에서는 영국보다 더 흡연자들이 많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여성 흡연자들이 정말 많이 보였던 거 같다. 거리는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나는 담배 연기에 엄청 약한데 목에 가래가 계속 끼어서 힘들었다.
우리는 파리를 좋아했지만 담배 연기는 아름다운 파리가 더 빛날 기회를 잃게 한 거 같다.
담배 연기가 인상적인 파리로 마무리 짓고 우리는 다음 여정을 위해 짐을 꾸렸다. 하지만 ‘빵순이, 빵돌이에게는 빵 맛 죽이는 파리’로 한 줄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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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사는 이미선(misunyi0518@gmail.com) 님이 지난 3월, 척수소뇌변성증으로 투병 중인 남편과의 자유여행을 담은 후기입니다. 비행기에서부터 도시 혹은 국가 간 기차와 시내버스 이용, 숙소 예약 등의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보내왔습니다.
